혼전관계와 사랑에 대한 날것의 생각들

레드북과 잭더리퍼 리뷰 겸사겸사 적어보는

by 꼬지보리

나는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번에 돌싱특집 22기 5화에서 현숙님이 데이트 상대에게 물어볼 여러 가지 리스트 중 '잠자리' 항목이 포함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에 관해 철학적으로 깊이 나솔을 리뷰하는 황관장님 채널을 보다가 남성성, 여성성 등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따라 또 다른 존경하는 유튜버 Sound Sound님의 '혼전 순결과 정조 개념이 결혼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영상을 보고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여 글을 써보고자 한다.

사실 레드필 이론을 접하고 나서부터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진화론적으로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택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지금까지는 제도적으로 또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일부일처제가 지켜졌다면 현대에 와서 많은 것이 붕괴된 것이 사실이다. 이 영상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를 잘 비교했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들이 정조를 지키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서의 장점은 혼외정사 등이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성녀'와 '창녀'의 구분이 명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을 하는 일반적인 순결한 여성 '성녀'와 매춘부 '창녀'가 관념적으로 강하게 구분되었기에 혼외정사의 대상인 창녀와 접촉하는 것은 단순한 배설의 용도로 여겨지며 지금처럼 controversial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뭔가 아직은 보다 날것의 글을 쓰기가 조심스러워서 많은 것을 생략하고 말하겠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 영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이 계산적으로 변한 현대 사회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했다고 주장되는 레드필 이론이 일부 남성들을 상대로 횡행하면서 혼전 관계가 개방된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처녀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퍼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 원인에 대해 혼전 관계의 문제는 zero sum게임인데 '하이퍼가미'에 의해 일부 알파메일이 그 기회를 독식하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주장이 틀린 이유가 사랑 없는 관계를 전제로 하기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진화심리학자, 레드필 학자들은 인류의 관계를 동물의 번식, 생식과 같은 선상에서 본다. 즉, 동물행동학에서 나타나는 번식의 거래 행위가 인간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먹버', '퐁퐁남' 이런 자극적인 키워드가 실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런 거래성 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이 사랑해서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두 뮤지컬 잭더리퍼와 레드북을 예시로 들고자 한다. 물론 픽션을 예시로 드는 것이 모순적이기는 하나 어차피 내 생각을 적는 글이니 두 뮤지컬의 리뷰처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잭더리퍼에서 상류층 의사 다니엘은 매춘부인 글로리아에게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 병에 걸린 글로리아를 살리기 위해 이식할 장기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레드북에서 안나는 어린 시절 겪은 자신의 첫사랑 스토리를 잡지에 펴내는데 육체적인 사랑에 관해서도 노골적으로 표현하여 많은 논란에 휩싸인다. '창녀'와의 정신적 사랑에 빠진 다니엘, '성녀'임에도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한 안나 모두 당시 시대정신의 금기를 어긴 것이다. 그럼에도 안나는 당시 고위층 변호사 브라운과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비록 글로리아는 잘못되었지만 글로리아와 다니엘의 사랑은 절절했음을 뮤지컬에서 알 수 있다. 결국 두 뮤지컬 모두 시대적 관념을 넘은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만약 다니엘과 브라운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니엘은 의사고 브라운은 변호사로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렇게 극찬받는 전문직 남성이다. '어린 처녀'와 결혼해야 한다는 관념이 퍼진 레드필러들은 아마 매춘부인 글로리아, 과거 성경험이 있는 안나와 결혼한 이들을 설거지 당한 퐁퐁남이라고 바라보지 않았을까? 여기서 던질 질문은 21세기 한국의 다니엘, 브라운이 더 행복할까 아니면 레드필러들이 더 행복할까 이다. 나는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니엘과 브라운은 상대 여성과의 충분한 정신적 교류를 통한 진정한 사랑에 도달했으나 레드필러들은 남녀관계를 단순히 거래라고 단정지으므로 자신이 사랑을 느낄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했다. 이 말은 정말 이런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관통하는 말 같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은 모두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행복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