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집 근처 클라이밍장을 알아보고 다음 날 오후로 체험 강습을 예약하는 일은 일사천리였다.
편한 운동복을 입고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클라이밍장에 도착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클라이밍 중에 사고가 나거나 부상을 당해도 개인의 책임이다'라는 등의 위험 고지와 면책 내용이 담긴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암벽화를 빌렸다.
안내받은 강습 장소로 갔더니 그 시간에 체험 강습을 신청한 사람이 나 하나였는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어 당황하던 차에 강사님이 오셨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제일 먼저 배운 건 낙법이다. 강사님이 클라이밍은 부상 위험이 큰 운동이고 인공 암벽(이하 '암벽')에서 잘못 떨어지면 손이나 팔다리 등이 골절될 수 있기 때문에 낙법이 아주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참고로 내가 배운 낙법은 다음과 같다.
(1) 암벽에서 매트로 뛰면서 두 발로 착지한다. 매트에 발이 닿을 때 소리가 나지 않게 착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2)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상체를 살짝 말고, 무릎을 접고, 팔은 가슴 앞에서 X자로 교차하거나 무릎을 끌어안으면서 투명한 의자에 앉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진다. 이때 손으로 매트를 짚으려고 하면 손가락이나 손목이 부러질 수 있다고 한다.
(3) 낙법이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한다.
매트에서 연습을 할 때는 쉬웠는데 처음으로 암벽에 매달렸다가 떨어지려니 방금 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정확한 자세로 떨어지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낙법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클라이밍의 기본이 되는 삼지점 자세*를 배웠다.
*삼지점 자세: 손과 발의 위치가 삼각형 형태를 이루도록 해서 안정적인 무게 중심을 유지하는 자세인데, 손으로 암벽의 홀드(자연 암벽의 바위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손으로 잡거나 발로 밟고 올라가는 물체)를 잡고 양발로 홀드를 하나씩 밟은 후 쪼그려 앉아서 팔을 쭉 펴면 된다.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V자로 벌리고 앉는 자세는 스쿼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직 이동 방법도 배웠다. 암벽에서 옆으로 이동을 할 때는 이동 방향에 있는 손을 먼저 이동하고 이동 방향의 반대쪽에 있는 발을 옮긴 후 남은 발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게 '손-발-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가 강사님과 낙법과 삼지점 자세, 이동 방법을 연습한 벽은 여러 가지 색의 홀드가 가로세로로 박혀 있는 벽(일명 '지구력벽')인데 이 벽에서 클라이밍에 필요한 지구력을 단련할 수 있다.
출처: 더클라임 홈페이지
2.
연습이 끝나고 드디어 지구력벽 체험을 시작했다. 강사님이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는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밟으며 옆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는 걸 몇 번 반복했더니 금방 숨이 차고 팔이 후들거렸다.몇 년간의 운동으로 근력도 제법 세지고 체력도 많이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수차례의 왕복 후강사님이 지금부터는손으로 특정한 색깔의 홀드만 잡되 발로는 아무 홀드나 밟으면서알아서 옆으로 갔다가 돌아와 보라고 하셨다. 중간에 조금 헤맸기는 했지만혼자 힘으로 지구력벽 왕복을 끝냈을 때는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다!
3.
체험 강습의 마지막 단계로 마침내 내가 기대했던볼더링*을 해볼 수 있었다.
*볼더링: 클라이밍의 한 종류로, 별도의 장비 없이 암벽을 등반하는 것
볼더링용 암벽의 난이도는 시작 홀드*와 탑 홀드** 옆이나 아래 붙은 스티커의 색깔로 구분한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클라이밍장에 따라 난이도별 색깔 표시가 같은 곳도 있고 다른 곳도 있어서 새로운 클라이밍장에 가면 난이도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시작 홀드: 볼더링을 시작할 때 손으로 잡아야 하는 홀드로, 스티커가 붙은 홀드가 하나면 양손으로 하나의 홀드를 잡고 두 개면 왼손과 오른손으로 하나씩 잡는다. 시작 홀드와 같은 색깔의 홀드만 사용해서 탑 홀드까지 가야 하며 홀드 대신 벽을 밟는 것도 허용된다.
**탑 홀드: 문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홀드로, 탑 홀드를 양손으로 잡고 3초를 버텨야 문제를 완료한 것으로 간주한다.
내가 체험 강습을 받은 곳은 직관적으로 무지개색을 사용해서 난이도를 표시했다. 즉,빨간색이 제일 쉽고 보라색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보라색 다음에는 가장 어려운 난이도를 나타내는 흰색도 있었다.
나는 빨간색·주황색·노란색 스티커가 붙은 문제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지구력벽에서 연습할 때처럼 강사님이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는 홀드를 사용했고 나중에는 시작 홀드에서 시작해서 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탑 홀드까지 갔는데, 강사님이 루트를 알려줄 때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갑자기 어렵게 느껴졌다.
손과 발 이동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되는대로 팔을 뻗으면서 멀리 있는 홀드를 잡고 팔로 힘껏 몸을 당기면서 이동했다. 발로는 뭘 밟는 게 좋을지 몰라서 정해진 색깔의 홀드 중에서 대충 밟을 수 있는 홀드를 밟았다. 당연히 손-발-발이라는 이동 순서를 지키지도 않았다.태어나서 처음 나무에 올라간 원숭이가 이런 모습일까?나는 말 그대로 암벽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탑 홀드까지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던 강사님이 "원래 지금 발 위치에서 갈 수 없는 홀드인데... 팔힘으로 억지로 당겨서 이동하신 거예요..."라고 하셨고, 나는 속으로 "와, 내 팔힘이 이 정도라고? 팔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뿌듯해할 일이 아니었는데!
사실 이동 방법을 배울 때 강사님이 암벽에서 수평/수직 이동을 할 때는 그냥 팔만 뻗는 게 아니라 이동하려는 방향과 반대되는쪽의 발을 밀면서 다리를 펴거나, 일어서서 내가 잡으려는 홀드와 내 손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 무리하게 팔힘을 쓰지 않아도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설명도 해주셨었는데, 나는일단정해진 색깔의 홀드를 손으로 잡고 내가 발로 밟을 수 있는 홀드를 찾느라 바빠서 하체를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무식하게 팔힘으로만 이동을 했으니 금방 팔이 아파올 수밖에!내가 생각한 클라이밍은 팔힘이 세야 좋은 운동이었는데,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팔힘이 센 것보다는 하체를 요령껏 잘 쓸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몇 번의 볼더링 연습을 끝으로 체험 강습이 끝났다. 체험 강습에 참여한 학생이 나 혼자라 강사님의 밀착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영업 종료 전까지 자유롭게 클라이밍을 해도 된다는데 전완근이 너무 아파서 문제를 더 풀 힘이 없었지만 이대로 집에 가기는 아쉬워서 주황색과 노란색 문제에 몇 번 더 도전했다.
4.
강사님과 볼더링 체험을 할 때 성공한 문제와 같은 난이도인데 혼자 몇 번을 시도해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여기만 지나면 탑 홀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특정 구간에서 막히는 게 어찌나 답답하던지. 이제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 이 문제를 못 풀고 가면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마침 근처에 클라이밍을 능숙하게 잘하는 분이 계시길래 실례가 안 된다면 저 문제를 한 번만 풀어주실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흔쾌히 시범을 보여주셨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쉽고 빠르게 탑 홀드에 도달하는 그분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서 언젠가는 저렇게 멋지게 암벽을 탈 수 있는 클라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루트 파인딩*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는데, 체력을 아끼면서 볼더링을 잘하려면 나처럼 일단 암벽에 붙은 후에 막무가내로 눈에 보이는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밟으며 올라가는 게 아니라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시작 홀드에서 탑 홀드까지 어떤 홀드를 사용해서 어떻게 올라갈지 충분히 고민을 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본 후에 클라이밍을 시작해야 하는 거였다.
다른 분들이 한참 동안 암벽을 바라보고 계시던 이유가 있었다!
*루트 파인딩: 클라이밍 전이나 도중에 루트를 보면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기술
인생 첫 클라이밍을 마치고 나니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잔뜩 생기고 팔이 욱신거렸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고 집까지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