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푸른 꽃무늬 잠옷에 담긴 약속
[프롤로그] 엇갈린 질주
삶은 때로 잔인할 만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동료의 슬픔을 위로하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던 장거리 질주가 끝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급박한 고열 소식이었다. 새벽 0시 40분, 불 꺼진 현관문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4월 1일 (수) 비겁한 손끝과 하트 악수
벚꽃 잎에 흩뿌린 눈물
오늘 하루는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폭풍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침 정적을 깨는 요양원의 다급한 전화, 귀를 찢는 듯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중환자실 앞 차가운 대기실에서 연명 치료 거부 서류에 내 이름을 적어 넣을 때, 내 손끝은 비겁하리만큼 떨렸다.
심폐소생술 거부, 관 삽입 거부. 항목마다 X표를 그려 넣던 그 시간은 너무나 길고 괴로웠다. 작년 3월, 심정지 상태의 아버지를 붙들고 교수님께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읍소했던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때의 간절함이 오히려 아버지께 고통의 시간을 연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지난 1년 나를 짓눌렀다. 관 삽입을 하지 않겠다는 항목에 표시를 하며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내가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가늠할 수 없어 너무나 무섭다.
하지만 마주한 아버지는 나의 공포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건하셨다. "아버지, 제 이름 기억하세요?"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당신의 성함, 나이, 군번, 그리고 나의 이름. 그 맑은 눈망울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거대한 돌덩이가 일시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으로 '하트 악수'를 나누며 약속했다. 꼭 다시 건강해지기로.
지난주 토요일 약속했던 60수 면 소재의 BYC 블루색 꽃무늬 잠옷. 그 보드랍고 환한 옷을 꼭 아버지께 직접 입혀드려야 한다.
그 옷이 주인을 찾아가지 못할까 봐 내 두려움은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결국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집 근처 벚꽃길을 미친 듯이 달렸다.
엉엉 울며 달리고 또 달려 발등이 다 까졌지만, 내 지독한 슬픔과 죄책감도 조금은 함께 날아갔기를 바랄 뿐이다.
4월 2일 (목) 무너진 제방, 그리고 곁을 지켜준 온기
애써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자리를 지키려 다짐했건만, 결국 마음의 둑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실장님의 "아버지 좀 어떠시냐"는 따뜻한 안부 한마디에 꾹꾹 눌러 담았던 서러움이 울컥 차올라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곁에 있던 동그리 주무관님이 나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본인의 꿈에 내가 나타났었다며, 이미 내 힘겨움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그 토닥임에 나는 더 크게 엉엉 울고 말았다. 함께 있던 유 주무관님도 "괜찮아요"라며 따스한 말을 건네주었고, 연 주무관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은 힘내라며 귀한 케이크와 응원글을 주셨다.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곁에서 함께 아파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숨을 쉴 용기를 얻는다. 정말 고생 많았다, 나 자신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아버님을 마주하자.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오후 9시 16분,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는 거대한 공포였다. 아버님이 스스로 콧줄을 빼버리셔서 두 손을 결박해야 한다는 통보. 누군가 내 머리를 둔기로 내리친 것 같았다. 묶여 계실 아버님의 마른 손목을 떠올리니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4월 3일 (금) 따스한 꽃물결과 더 따뜻한 음성
이정표가 되어준 지혜로운 격려
오후 4시 10분, 출장길
길가에 마주한 꽃화원이 발길을 오래 붙잡는다. 만개한 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인사를 건네는 풍경 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확인한다.
꽃들의 생명력에 취해있을 때, 반가운 이름이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분이다.
"순옥 선생님, 고민하던 일은 잘 해결됐나요?" 행여 마음고생이라도 더 하고 있을까 염려되어 전화를 주셨단다. 지난번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일러주신 현명한 대처 방식은 내게 큰 이정표가 되었다.
비록 길을 찾느라 고민의 시간은 조금 길어졌지만, 알려주신 해결책대로 차근차근 매듭을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잘하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진심 어린 격려와 토닥임에 마음속 응어리가 녹아내린다.
기린마을 프로젝트, 악플 세탁소를 알려주셨다.
특히 곁에 있는 동료를 언급하시며, 참 좋은 분이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협조하며 의지하라는 세심한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호쾌하게 웃어주시는 그 웃음소리에 내 마음에도 봄꽃이 만개한다.
귀한 인연 덕분에 오늘도 나는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4월 4일 (토) 찰나의 마주침, 그리고 무거운 눈물
아버지가 기억하는 세상
아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중환자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아버지는 기적처럼 나를 알아보셨다.
결박된 손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아버지는 명료하셨다. "소 밥 줬냐", "면허증은 찾아왔냐" 물으시는 아버지는 여전히 가장이셨다.
아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 잘 살아야 한다, 엄마 말 잘 들어라" 말씀하시는 목소리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군번부터 집 주소, 통장 비밀번호까지 하나하나 읊으시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홀로 지켜온 기억의 무게를 느꼈다.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참아왔던 제방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보여준 그 명료한 기억들이 오히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오늘 마주한 아버지의 기억력은 나를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의지였을 것이다. 명단에서 본 그들의 이름에 마음 쓰지 않기로 한다.
나는 당당히 아버지의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흘린 눈물은 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다.
4월 5일 (일): 다시 찾아온 고향집의 평온
생명이 돋아나는 자리에서
지금 나는 고향집 침대에 누워 있다. 폭풍 같던 며칠이 지나고 찾아온 이 시간이 그저 잠시 평온하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마당 한편에 파 심은 자리를 보니, 불과 며칠 사이 오 센티미터는 족히 자란 듯하다. 대견한 생명력이다. 마당 곳곳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 향기롭다.
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셨던 이 집의 봄은 여전히 찬란하게 흐르고 있다.
이 평온한 풍경이, 그리고 새로 돋아나는 새순의 기운이 병상의 아버지에게도 닿아 다시 환한 미소를 되찾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작가님의 말
아버지가 병상에서 읊조린 그 수많은 번호와 이름들은 단순히 뇌리에 남은 정보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남겨질 자식들과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지켜온 '사랑의 지도'였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되뇌었던 그 처절한 기억의 무게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아버지의 맑은 눈동자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야윈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오늘 내가 쏟아낸 눈물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깊고 단단한 사랑의 증명이자, 아버지가 삶으로 보여준 무게를 기꺼이 나누어지겠다는 자식의 뜨거운 약속이다.
다음 편 예고
드디어 정성스레 준비했던 푸른 꽃무늬 잠옷을 가방에 챙겨 병원길에 오른다.
그 보드라운 감촉이 아버지의 살결에 닿을 때, 당신이 지어 보일 환한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 그저 그러고 싶은 간절한 희망으로 중환자실의 육중한 문을 연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별의 예행연습, 그리고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혹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벼랑 끝 같은 시험대 위에서 내가 끝내 놓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꽃무늬 잠옷 위로 번지는 눈물과 희망, 그 못다 한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