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하나, 바람 둘, 그리움 셋
나의 고향
연천 고향집 마당엔
곧 가을을 맞이할 다래 덩굴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담벼락을 타고 푸르게 뻗어가는 그 덩굴을 바라보면,
나는 어느새,
그 시절의 나를 조용히 꺼내어 보게 됩니다.
낮은 평상 위에 앉아
턱을 괴고 먼 산을 바라보던 어린 날.
들판 너머 넘실대던 논바람,
소슬하게 스며들던 풀내음이
아직도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곤 합니다.
그곳엔 시끄러운 소음도,
급하게 내달리던 걸음도 없었습니다.
아침이면 닭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저녁이면 개울물 소리에 하루를 마무리했지요.
그 고요한 풍경 속,
이름 모를 풀꽃들이 조용히 피어나 있었습니다.
아무런 꾸밈도 없이
자기 자리에 고요히 피어 있던 풀꽃들.
그 작고 여린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사람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는지요.
바람이 스치면
씨앗들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그 흩날림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이 자랍니다.
풀꽃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도 삶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도 나는
고요한 오후, 고향집 마당 끝
작은 평상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햇살에 반짝이던 들판,
그 사이에서 조용히 피어난 풀꽃 하나.
그 꽃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엄마의 부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고 장독대 위 햇살 속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풀꽃을 떠올리면
고향도 함께 떠오릅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정겨운,
흙냄새와 볕내음이 가득했던 곳.
그리고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그 자연의 품.
살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무언가를 계속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향집 풀꽃을 떠올립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며
햇살 따라 피어나는 그 풀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풀꽃은 작지만 강인 합니다.
사람들 발길에 밟히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시 피어납니다.
그 강인함 속의 순수함,
나는 그게 참 좋습니다.
이 가을,
고향의 풀꽃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조용한 따뜻함이 피어나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고향 마당에서
진짜 풀꽃과 마주 앉을 수 있기를
그날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한 줄을 적어봅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며
햇살 따라 피어나는 그 풀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풀꽃 하나,
바람 둘,
그리움 셋.
시간은 흘러도
고향의 풍경은 마음에 남아,
그곳에서 나도
조용히 피어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