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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그림일기 Jan 25. 2023

30대의 연애.  연애가 아니라 사람이 재밌다.

[생각]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보고

남 여 (copyright - @hjkdrawing)


    설날 연휴를 맞이하여 ‘연애 빠진 로맨스’라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손석구와 전종서가 주연인 이 영화는 유튜브 숏츠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운 20대의 연애가 아니라 거침없이 솔직한 ‘으른’들의 영화라는 점에서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연애의 참견'도 즐겨보고 연애 유튜버들의 콘텐츠도 즐겨봤는데, 요새는 사실 뭔가 다 재미가 없었다. 넷플릭스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봤을 정도였을 난데, 이제는 뒷이야기가 빤히 보이는 반복되는 지루한 레파토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꽃보다 남자’보단 ‘신사의 품격이’ ‘키싱부스’ 보단 '연애 빠진 로맨스'같은 30대의 연애에 더 끌리는것이.


    사실 생각해보면 30대 남녀의 연애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온 고유한 인생 스토리로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20대때도 이미 다 해본 꽁냥꽁냥한 연애 '행위'가 재밌는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러 나온 두 사람이 재밌는 것이다.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만난 20대의 남녀와는 달리 30대의 남녀에겐 저마다의 특별한 인생스토리가 있다. 각자 들려줄 이야기도 5년전, 10년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양할 뿐 아니라,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개성있는 말투와 표정은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또, 그간의 경험치와 짬밥은 관심있는 상대 앞에서도 굳이 엄청나게 잘보이려 하지도, 기를 쓰고 웃기려 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게 해준다. 이미 내가 나 다울때 가장 매력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30대들은 그게 소개팅이든, 선 자리든, 취미 모임이든 ‘이성’에게 다가간다는 느낌 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인지 30대의 로맨스는 서로에게 빠져드는 레파토리도 모두 다른 듯 하다. 뭐 한 다리 건너 듣는 이야기로는 엇비슷해보일 수 있겠지만 막상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주제도, 공감 포인트도, 서로에게 빠져드는 매력도 다 다르다. 30년간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촘촘하게 쌓아올린 취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박우리와 함자영처럼 서로의 고유한 취향과 성격이 맞물리는 것을 발견했을때 나오는 캐미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관조하는 제 3자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20대 때는 사람과 사람간의 캐미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거니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있어 캐미가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아직 나라는 사람의 독특한 무늬도, 패턴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다른사람이 짜놓은 배경에서 튀어보이는 사람이 되지 않고자 나를 드러내는 연애가 아닌, 나를 감추는 연애를 해왔던 것 같다.  


    그러니 나를 스스럼 없이 드러낼 수 있게된 30대에는 연애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 훨씬 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특별히 우스운 농담을 던지거나 유행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냥 내 앞에있는 이 사람이 살아온 삶 자체가 재밌다. 학창시절 이후 생성된 수많은 고유한 이야기들이 나와 달라서 즐겁고, 그래서 탄생한 현재 이 사람이라는 결과물도 참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이 나온다.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기 위한 가식적인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공감하고 즐거운 마음을 담은 웃음 말이다. 또, '이번에 만나면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줄었는데, 이쯤되면 각자 들려줄 이야기가 수십가지는 되고, 나는 적절히 이야기가 터져나올 수 있는 키워드만 던져주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친구'라고 칭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 예전같으면 오빠라서, 선배라서, 언니라서 살짝 벽을 두었을 것 같은 관계도 이제는 3-5살 정도의 시덥잖은 나이차이쯤은 각자 살아온 짬밥으러 티안나게 메꾼다. 나이 차이가 좀 나더라도, 또 굳이 좋은 직장과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오히려 나와 다른 세계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서 더 끌린다. 또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완성이기에. 이 사실을 아는 매력적인 두 사람이 만나 나누는 시덥잖은 대화는 꾸며내지 않아서 더 진솔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연애에서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들은 남아있는가 보다. 다시 영화로 되돌아가 예를 들자면, 상대 여성의 동의 없이 섹스칼럼을 쓰다 발각돼 실직한 박우리와, 수익모델이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실버 팟캐스트를 창업한 함자영의 데이트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지. 과연 육체적 이끌림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가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등 등의 문제 말이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내내 단 한번도 스킵하지 않고 재밌게 본 영화이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러한 의문들이 머릿속에 남은건 단순히 나를 잘 알고, 타인과 좀 더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나은 연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미리 알려준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예상한 결말은 1.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거나, 2. 잦은 섹스로 애가 먼저 생겨 결혼했거나 두 가지 였을것 같긴 한데.. 보다 성숙해진 만큼 해피앤딩을 해피앤딩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적인 면모도 30대를 앞 둔 이들에게 찾아오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글/그림: 줄리

- 인스타: @hjkdrawing

- 메일: juliekim26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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