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농촌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책을 막 끝낸 현재시간 새벽 1시 반. 내일은 평일. 얼른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내일 출근이 괴로워질 걸 알면서도 벅차오르는 마음을 일단 어디든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브런치를 열었다.
한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위탁가정을 떠돌며 자란 18살 소녀였고 아빠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었다. 평생을 위태롭게 살아온 엄마는 중독과 회복을 힘겹게 오간다. 아이는 아침마다 엄마를 깨워 출근을 시키고 술에 취해 쓰러진 엄마의 구토를 치우며 자란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둘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니까.
그러던 아이가 11살이 되던 날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다. 언젠가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엄마가 살아있을 때도 미미했지만, 나약한 엄마라도 있던 세상과 그마저도 없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저를 스스로 키우며 사는 아이는 오로지 생존하는 것만이 목표다. 그것만 하기도 벅차다. 아이에게 좋은 어른은 없다.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굶기거나 아니면 외면하는 어른들이 있을 뿐.
그 아이의 이름은 데이먼 Damon, 그렇지만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디먼 Demon이라고 부른다. (애가 못돼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동네 네이밍 시스템이 그렇다. 멀쩡한 이름을 두고 별명을 붙여 부른다.)
어린 시절 디먼의 투쟁이 의식주에 관한 것이었다면 조금 자란 디먼의 투쟁은 약물과의 전쟁이다.
과거에는 평온한 농경지였을 미국 버지니아주 리 카운티. 탄광이 발견되고 광산회사들이 마을의 땅을 사들이고, 자기 땅을 일구던 사람들은 남의 땅이 된 그곳 지하에서 먼지를 마시며 일하는 광부가 된다. 그나마 그때는 먹고 살만 했는데 광산업이 쇠퇴하면서 마을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이 되었다. 땅은 더 이상 그들을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탄광이 성하던 시절 이미 뒷전에 내팽개쳐진 교육시설과 의료시설은 광산업이 사라지며 더더욱 피폐해졌다. 실업자가 된 광부의 자손들 - 그들은 교육은커녕 부모의 보살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니 가난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어쩌다 있는 똘똘한 자손들은 개천의 용이 으레 그러하듯 마을을 떠나고, 떠나지 못한 자들만 남은 곳이 리 카운티 같은 곳이다. 그곳에 오피오이드가 들어온다면? 이미 무기력해진 그들은 싸울 힘도, 아니 싸울 생각도 없다. 디먼의 경우, 의사가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다 심각한 약물중독에 빠지게 되지만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대부분의 리 카운티의 청소년들에게 약물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처음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읽기가 힘들었다. (특히 책의 첫 1/3이 힘들었다. 나는 어린아이가 고통받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주인공의 상황이 좀 좋아져서 안도했다가 점점 나빠지는 주인공의 상태에 또 좌절했다가.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인생에 볕 들 날이 안 올 것 같은데... 그런데도 "This is no hill for a climber"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되뇌는 주인공이 너무 가여워서 제발 이 아이가 행복해지길 빌며 끝까지 읽게 된다.
실은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GPT에게 물어봤다. 스포는 하지 말고 해피엔딩인지만 알려달라고. 희망적인 엔딩이라는 GPT의 답을 듣지 않았다면 완독을 포기했을 거다. (고전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현재의 미국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 책을 읽었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만 읽어본 적 없는 책이라 엔딩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읽고 난 지금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고통을 그렸지만 결국 이 건 희망과 끈질긴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 끝의 디먼의 뒷모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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