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가 그리울 때

by 아나스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할 한국 사람의 Pool 자체가 적기도 하고, 나이를 먹고 취향과 지향이 짙어지다 보니 굳이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내 취향이나 생각을 꺼내어 보여주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 편이 서로 부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가끔 아이 친구 엄마라던가, 회사 사람들, 건너 건너 누구를 만나 점심 한 끼, 커피 한 잔을 해도 여간해서는 '수다'라는 걸 떨 일이 없다. 그저 아주 가끔, 나를 꺼내 보여줘도 실례가 아닌, 서로 부담 없고 편한 옛 동료나 친구가 싱가포르에 찾아올 때, 참 반갑다. 그제야 나는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몇 시간씩 하는 수다쟁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문득 이런 수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저 지나치거나 간혹 글을 쓰거나 하는 걸로 풀어왔는데, 최근에 유튜브에서 몇몇 채널을 발견하고 수다의 대체제로 잘 활용 중이다. 어쩌다 알고리즘에 뜬 걸 몇 번 보다 보니, 이런 게 내가 원하던 대화였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의 엄마로서, 누구의 무엇으로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인간이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과 나라는 인간의 쓸데없는 상상과, 나라는 인간이 겪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쓸데없는 고민 같은 것들을 늘어놓는, 약간은 지적이고, 약간은 쓸데없는 그런 대화들.


누군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간혹 그런 대화의 대체제가 되어줄 수 있는, 이 채널들을 소개하고 싶다.



#1.

적수다 by 사피엔스 스튜디오

익숙한 단어. 낯선 질문.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해 무한대로 펼쳐지는 이적의 '인문학 수다 팟캐스트'


> 특정 단어를 키워드 삼아 거기서 이어지는 생각들을 나누는 수다 토크쇼로,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수다 한 판인데, 보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이런 대화가 그립다. 이 에피소드에서 처음 뵙는 코미디언 원소윤 님의 툭툭 던지는 듯한 이야기들이 특히 그랬다. 알고 보니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계신 분인데, 소설도 쓰신 작가 겸 코미디언이라고 한다. 세상에 자기만의 길을 일구어가는 사람은 많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발자취가 다른 이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아래 링크해둔 '다정'에 관한 토크 중, 인상적이었던 것들.

- '다정'에도 '발산하는 다정'과 '수렴하는 다정'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함구'해줄 줄 아는, 기다려 줄줄 아는, 그런 수렴하는 다정이 필요하다.

- 나의 약함을 친절로 오해하지 말라.

- 다정은 체력이다. 이동진, "바쁜 것은 '악'인 것 같다.'(착한 사마리아인 실험), 다정의 공식?

- 이슬아 작가의 말 중, '날마다 상냥하다는 것은 뿌리 깊게 강하다는 것'


https://youtu.be/nkc8tVCxZKM?si=PPlgctZBWJRamM5T



2.

토킹 헤즈 by 머니그라피 Moneygraphy

접점 없는 사람들의 접점 있는 대화 | 강지영과 함께하는 지식교양 토크쇼


> 머니그라피 채널에서 하는 'B주류 경제학' 시리즈는 좀 더 '경제'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강지영 님이 진행하는 이 '토킹 헤즈'는 다른 분야에서 온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아무렇게나 떠드는 '수다'에 좀 더 가깝다.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는 '취향'에 관한 에피소드.(아래 링크)

회계사 이재용 님, 민음사 마케터 조아란 님, 편집숍 대표 박지수 님, 유튜버 육식맨님이 패널로 나오는 회차다. 유행과 취향, 대중성과 홍대병, 온라인(알고리즘)과 오프라인, 돈이 없어도 취향을 쌓을 수 있는지 등등, '취향'이라는 키워드로 수다가 이어진다.


특히 '돈'과 '취향'에 관한 얘기는 생각해봄직 했다. 여기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빈부격차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경험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시대인데, 가난할수록 '온라인'의 경험에 치중하게 되고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오프라인'의 경험을 더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등의 얘기를 본 적 있다. 결국 경험이 취향을 만든다고 하면 취향을 쌓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자원 자체에서 이미 격차가 벌어져있는 것 아닌가 싶고.


그 외, 다른 회차들도 가볍게 같이 수다 떠는 느낌으로 듣기 좋다.


https://youtu.be/6zrcYELKybg?si=vGlO6Yda_31oTGYl


3.

라플위클리 by LIFEPLUS TV :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이동진, 궤도, 안현모가 직접 거르고 걸러 추천하는 진짜 콘텐츠 큐레이션 ‘라플위클리’


> 통역가 안현모 님과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 과학 유튜버 괴도님이 진행하는 토크쇼로, 특정 키워드와 그와 연관된 여러 콘텐츠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끔은 게스트도 나오는 것 같은데, 세 분이 수다의 주파수가 적절하게 맞아서 세 분이 그냥 떠드는 얘기 듣는 것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아래는 '직장인'과 관련된 영화, 웹툰, 드라마, 그리고 저 세 분의 경험담을 풀어낸 에피소드. 소소하게 재미있다.


https://youtu.be/gfOlZuFGjVQ?si=YQnV-8Ffan2LF8l3


4.

덕후초대석 by 이종범의 스토리캠프

다양한 덕후들과 함께 콘텐츠 수다 한바탕


> 사실 '덕후초대석'에서는 민음사 편집자 김민경 님이 나온 에피소드가 너무 재밌었어서 그저 강추. 책덕후 김민경 님과 웹툰 작가 이종범 님의 티키타카가 너무 재밌다. 그야말로 덕후들이 둘만의 세계에서 벌이는 티키타카.


나는 덕후는 아니지만 나름 덕후 친화적(?)인 사람인데, 중고등학교때부터 만화와 (당시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대학원에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공부하고 IT 업계('게임'을 곁들인...)에서 일하면서 의도치 않게 다양한 덕후들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게임, 만화, 영화, 뮤지컬, 아이돌.... 분야의 다양한 덕후들. 겉핥는 식으로는 그들과 대화도 가능하지만, 차마 심연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덕후 친화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이 분들은 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저 대화에 낄 수는 없겠지만, 찐덕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덕질하는 즐거움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https://youtu.be/gVXQxeLQekA?si=k4V7z4HdwtxiYz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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