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된 이해는 이별을 부르고 강요 된 이해는 상처를 만든다.
2006년, 80여 명의 사람들이 아스팔트 땅에 붙어있길 자처했다. 서울 노들섬에서였다.
그들은 없는 다리와 저는 다리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바닥을 기었다. 오후 2시 15분부터 저녁 7시 50분까지 약 6시간에 걸쳐 도착한 몸의 걸음은 1m에 1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이들이 아픈 몸을 드러내어 바닥에 부딪히는 동안 한강로는 퇴근길과 겹쳐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고 한다. 아마 많은 짜증과 화와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80여 명의 장애인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는 서울시에서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활동 지원금을 삭감해서였다. 일상생활이 힘든 중증장애인들은 활동 보조가 없으면 하루가 힘들어 진다. 그 중요한 예산을 삭감했다는 건 그들에게 일상을 누리지 말 것을 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와중에 서울시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 발표했고 예산은 무려 7천억 원이었다. 몇 시간의 교통체증이 부른 화보다 더한 분노가 차올랐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온몸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결국 노들섬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지어지지 못했다. 시위 덕분이냐 물으면 아니다. 교통체증에 대한 걱정과 막대한 예산이 부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그들의 몸짓은 장애인의 생존과 생활의 불편함을 알리는 데 조금의 도움은 됐을 것이다. 몸으로 하는 저항은 당사자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게 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이고 강렬하기에 보는 이들에겐 명확한 기억으로 남을 거고 몇몇 사람들은 잠시나마 장애인의 삶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 생각은 관계 성립이나 금전적, 정신적 지원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라는 위로의 마음가짐은 가질 수 있게 만든다. 몇몇에겐 말이다.
장애인 시위라는 극단적 예시를 꺼낸 이유는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이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아스팔트를 기기 시작한 것은 하루를 보장받기 위해, 주어진 삶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지친 퇴근길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화만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불합리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이 앞서는 게 사람으로서 이상한 건 아니지만 좀 더 부드러울 필요는 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와 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나는 사람 좋아 인간이어서 무분별하게 이해하고 무분별한 이해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이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버거움의 연속이었으며 잦은 트러블과 흘러가는 시간만큼 쌓이는 경험덕에 나조차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해는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한 일이 되었다. 무분별하게 벌려놓은 인간관계와 감정의 모양은 꽤 복잡하게 섞여 자르지 않고서는 답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해를 주고받는 상호 관계는 소수의 몇 명만 두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 외 다수에겐 나라는 사람의 이해를 바라지 않은 채 가식이 없는 선에서 부드럽거나 밝은 친절을 베푼다.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이해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탈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억지 된 이해는 이별을 부르고 강요 된 이해는 상처를 만든다. 상호화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당한 친절과 예의를 위한 마음가짐을 노력해야 한다. 완전하거나 어렴풋한 이해는 없더라도 누군가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봐줄 순 있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