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에서 파생된 용기가 친근한 예술이 되기를 '대화'

by 김현아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 ‘회색인간’에 나오는 구절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줄을 그어두었다. 지금이야 예술이 대중화되었다지만 먼 옛날엔 부유층의 취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을 행하는 예술인은 가난했는데 말이다.


인생은 짓궂다. 그래서 겪는 궂은 일,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을 만드는 빈곤 앞에서 사람은 바닥을 보인다. 당장의 고단함을 해결할 것들에 온 세포의 힘을 써야 하니 예술이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자신의 쓸모를 예술로 만들었다. 아마 타고나기를 그것이 아니면 사는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빈곤을 해결하는 물질적인 행복보다 그 이상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예술은 우리의 삶 속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아주 생각보다 더 말이다. 24시간 붙어있는 핸드폰의 디자인, 술과 커피를 마시는 공간 인테리어, 장거리 이동 시 필수로 듣는 음악, 혹은 이보다 더 사소한 것들조차도. 다들 알면서 사는 게 바빠 신경쓰려 하지 않는다. 예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더 알고자 한다면 질 높은 삶을 사는 또 다른 방법임을 알 수 있을텐데.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으로 책이 제격이고, 하나의 이유를 파고들어 나누는 깊은 철학적 대화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거.


그러기 위해선 예술은 지구 안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예술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부담되고 어려운 비주류의 존재가 아닌 친근한 것으로써. 이 문제는 특히 서울 대비 문화적 교류의 힘이 약한 지방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다.




다혜 : 지방은 특히나 그들(연극인)만의 세계가 너무 뚜렷해서 서로에게만 밀집되어 있는 느낌도 있어요. 그걸 깨는 게 우선인 것 같고 좀 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거, 친절한 거.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유호 : 더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에 엄청 공감을 하고요. 제 생각에 부산의 음악판은 오히려 각자 너무 흩어져있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물살을 탈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정인 : 미술도요, 아는 작가님에게 들은 건데 미술계도 각자 너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해요. 부산의 대중이 서울과 많이 달라서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고요. 그래야 받아들이는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아서,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친절하게.



해당 문제에 대해 친절을 강조한 세 사람은 지방인 부산에서 ‘대화’라는 이름의 비영리 예술팀을 운영하고 있다. 다혜는 연기를 하고 유호는 노래를 부르며 정인은 그림을 그린다. 세 사람은 지인을 통해 우연히 모이게 되었으며 리허설도 없던 첫 합동 공연을 만족스럽게 끝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모이게 되었다고 했다. 지인소개는 인위적인 만남이라 친해지기 쉽지 않았을텐데, 라는 내 말에 자기들도 신기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워크까지 잘 맞는다고 웃었다.



유호 : 그 날 공연하는 내내 관객들이랑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화를 하는 것 같다’는 글을 SNS에 올렸거든요. 그게 바로 팀 이름이 되었어요. 다들 너무 좋아해주더라고요.


정인 : 우연히 만나게 된 팀이지만 각자의 역할이 확실해서 너무 좋아요. 전시쪽과 필요한 디자인은 제가 담당하고 유호와 다혜가 공연의 전반적인 기획, 창작을 맡고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3인체제가 딱 좋은 것 같아요.


다혜 : 그리고 너무 웃긴게 세명 다 중국 쪽에서 유학을 했다는 거에요. 저는 홍콩, 정인언니는 상하이, 유호씨는 대만! 그래서 더 통하는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녀들은 인터뷰 내내 서로를 아낌없이 칭찬했고 진행하는 나에게도 다정하려 노력했다. 사소한 말에도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크고 작은 리액션을 잊지 않았다. 대중이 예술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친절해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예의를 잃지 않으려 신경 썼다. 그들은 공연 방식 또한 대중에 맞췄다.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장소를 카페로 정했고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않으려 했다. 그 이상을 넘기면 지루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 시간 안에 연기와 노래는 물론 플로리스트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초대해 공연을 펼쳤다. 카페 곳곳엔 그림과 사진 작품을 걸어두어 즐길 수 있는 예술은 다 담으려 노력했다.





처음 대화팀을 알게 된 것도 종종 가는 카페 SNS에 공연 포스터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대화팀의 소식은 자주 눈에 띄었다. 내가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작전은 통했다. 결국 그 공연을 보러 갔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현아 : 예술을 하는데 부산에 남은 이유가 궁금해요. 부산에서 예술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실력 없는 사람들이 지방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정인 : 실력 없는 사람이 지방에 남는다는 말 어느 정도는 동의해요. 저는 두세달 마다 서울로 가요. 가면 전시도 좀 보고 지인들도 만나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태도가 달라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울은 속도가 빠르니까요. 그 빠른 게 그냥 빠른게 아니라 이미 농축된 것들이 더 성장하는 거예요. 그런 문화를 느끼고 사는데 어떻게 실력이 늘지 않겠어요. 분명 지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림의 미학도 있지만 속도에서 오는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실력 없는 사람이 지방에, 그 말이 100% 맞다 안 맞다는 없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정인은 해외에 더 있고 싶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고향인 부산에 올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정인 : 사실 한국에 돌아온 것 자체가 저에겐 실패였어요. 하지만 요즘 SNS 덕분에 세계적인 콘텐츠와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요즘엔 서울이냐 부산이냐의 구분이 아니라 그냥 한국과 해외의 차이만 생각해요.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 부산일 뿐이라고요.


다혜 : 부산이기 때문에 더 이 악물고 준비하는 것도 있어요. 이 악물고 트렌드를 따라가려 하고 이 악물고 뒤처지지 않는 미감을 보여주려고 해요.


유호 : 저는 영감을 자연에서 얻는 편이에요. 그래서 도시와 맞지 않고, 자연과 가까운 부산에 있어야 나만의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화팀은 앞서 말했다시피 외부 예술인들을 초청해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60분 안에 어떤 분야를 어떻게 담아내어 거부감 없이, 친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래서 예술의 기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도 말했다. 예전보다는 나름 대중화 된 덕에 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무분별하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아 : 예술의 기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예술가라고 말하는 사람 중, 과연 충분한 지식과 실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활동한다해서 예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요.


다혜 :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같이 해야 하니까. 어떤 아티스트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같은 내용인 것 같아요.


유호 : 한 번은 SNS에 함께 할 분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올렸어요. 지원자는 많았지만 막상 아무 경력이나 작품이 없는 분들이 많았어요. 정말 난감했었죠..


다혜 : 맞아요. 공연을 같이 기획하는 게 유호씨와 저다 보니까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창작물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맞죠?


유호 : 네, 그런데 그냥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고유의 세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음악 쪽으로 보면 커버곡만 있어서는 안 돼요.


다혜 : 연기 쪽으로 보면 짧은 공연이더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전부 다 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인 : 직관적으로 예뻐야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예쁘다는 건 대중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센스를 가졌다는 거요. 그리고 사실 저는 ‘내가 어디 가서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될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 기준에 대해 명확히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기엔 조심스럽죠.



하지만 하나의 예외는 있다고 말했다. 어린 꿈나무들에 대해서였다.


다혜 : 그런데 저희가 재미있는 게, 그런 기준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와 함께하고 있다는 거예요. 특히 초등학생들은 창작물이 없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이유는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명확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거요. 공연을 하는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관객들이 느끼는 게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초등학생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거,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유호 : 초등학생이 피아노 공연을 한 날, 어떤 관객은 그 연주가 대화 팀의 정체성 같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오프닝 무대였는데 말이에요.






셋이 만들어가는 작은 공연에 마음을 열고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터뷰 몇 주 전 있던 공연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좁은 카페 안에 이정도의 사람이 들어올 수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꽤 많은 인원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들도 덕분에 부산이라는 도시는 가능성이 큰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도 말했다.



정인 : 팀 이름이 대화잖아요. 계속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소통이 계속되면 궁금해지는 게 있거든요.


지속된 소통은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적당한 선을 지키며 무심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는 용기, 그 용기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친절일 것이다. 다혜도 같은 생각임을 표현했다.


다혜 : 소통한다는 건 친절하게 다가간다는 걸 이야기하기도 해요. 대중들에게 좀 더 맞춰진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엄청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유호 :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사랑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수학교 수업을 나가는데 까다로운 학생이 있었어요. 참 힘들다, 밉다 생각하다가도 저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저에게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하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은 다를 것이 없고 사랑으로 다가가면 마음은 열린다는 걸요.



어느 팀이든 꼭 하나의 정체성이 있기 마련이다. 대화팀은 자주 언급했던 친절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친절한 태도를 지켰다. 그 태도야말로 본인을 지키고 본인을 지킴으로써 예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고, 지금도 바라고 있다. 친절에서 파생된 사랑과 용기가 거창한 예술이 아닌 친근한 예술로써 풀어지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삶 속 가까이 자리잡히기를. 그로 인해 서로는 물론 자기와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