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술에 취했다. 막 취한 건 아니고 적당히 취했다. 술을 끊겠다 자연스레 마음먹고 상당한 개월이 넘어가던 참이었다. 이성보다 감정이 감정보다 감성이 감성보다 걱정이 앞다투어 나를 장악하려 했다. 오랜만에 취한 그때는 걱정이 힘이 센 날이었던 것 같다.
걱정의 방향은 한 친구를 향할 뿐이었는데 낮에 받았던 메시지에서 그 애의 고단이 묻어나서 그랬다. 걱정만큼 정이 많은 나보다 더한 그 친구의 삶은 자신보다 남을 챙기는데 익숙했다. 남을 챙기는데 바라는 건 없었지만 기대보다 바닥을 치는 인간의 본성에 울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손가락 끝까지 가득 찬 걱정의 무게는 술기운을 타고 휴대폰 자판을 눌렀다. 투둑투둑하고 쳐진 몇 가지 문장이 전달된 후 휴대폰을 끄고 누웠다. 괜히 오버 하나 싶어 또 몽글몽글하게 움직이게 만든 취기가 미워졌다. 사실 취기가 아니라 술을 먹고 취해버린 내가 미웠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딸려왔다. 낯간지럽게 느껴질 수 있는 카톡을 받고 친구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었다.
술을 먹으면 몇 가지 감이 풍부해지는데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생각하는 감정에 애정이 넘치고 애정을 뿜어내는 감성의 양은 넉넉해져서 소위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곧잘 하곤 했다. 그런 간지러운 말을 하면 어색해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는데 마음을 전하는 말을 하는 게 왜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싶었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에 유난 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해져 술을 멀리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유난이었나 싶었던 다음날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괜찮다는 내용이었고 그다음 날엔 힘내보겠다는 연락이 하나 더 왔다. 취했던 날의 걱정만큼 기뻤다. 그래서 취했던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가끔 다시 취해서 애정을 마구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받아주는 만큼 받아주는 이가 있어서 생겨난 아주 사소한 용기였다. 나도 그 애에게 사소한 의미를 주어야지, 했다. 카톡 스크롤을 올리면 보이는 죽을 때까지 네 편이라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