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운동하러 나오니 바람이 선선했다. 얇은 운동복에 바람이 부벼져 기분 좋은 차가움이 살에 닿았다. 오늘 반의 반나절을 함께 보낸 이가 한 말이 생각나 하늘을 올려다 봤다.
“오늘 하늘이 진짜 예쁘네요. 정말 높아진 것 같아요. 왜, 가을엔 하늘이 높다고 하잖아요.”
여름내 무럭무럭 자라난 하늘은 진짜 높아진 것만 같았다. 햇빛을 먹고 자라는 건 사람과 식물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요 근래 근력운동에 재미를 붙였다. 특히 상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멋진 이두와 삼두와 광배와 등근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며칠 열심히 했다고 잘 잡힌 조명 밑에서 아주 조금 팔뚝에 그림자가 졌다. 근육이 하나도 없던 터라 예전보다 딱딱해지기도 했다. 몸 좋은 애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슬쩍 웃다가 유난을 부리고 싶어졌다. 반의 반나절을 함께 보낸 이와 나눈 대화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저 유난 떠는 거 진짜 좋아해요. 맛있는 디저트 먹고 난리 치면서 리액션 하는 그런 거 진짜 너무 좋아요.“
내가 한 말이었다. 행복하면 행복을 티내고 슬프면 슬픔을 티내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손짓 발짓 얼굴짓을 하는 유난스러운 애인 나는 또 눈치도 보는 편이라 당황해하는 상대들을 보며 자제하는 법을 알았다. 오늘 함께했던 이는 유난스러움을 같이 부려주는 사람이었다. 누가 앞에 있건 그 사람다움을 끌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난스러운 애처럼 보이기 싫은 소심한 마음을 흐름타듯 고백해버렸다.
“그 유난스러움을 글로 적는 건 어때요? 공감하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유난스러운 마음을 유난 떨 듯 말했는데 같이 유난해하며 유난스러운 글을 적으라 말하다니. 나 같은 애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 이렇게 글을 적고 있다.
운동을 끝낸 후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팔에 힘을 줘봤다. 밋밋한 조명을 받은 팔뚝엔 근육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근육으로는 유난을 떨 수 없게 됐지만 높은 하늘에서 불어온 선선한 바람과 오랜만에 글을 쓰게 만든 좋은 대화는 진짜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보통의 하늘과 바람과 대화였을 텐데 말이다.
근데 있잖아요, 오늘 제가 운동을 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