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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y Jun 12. 2021

내가 바에서 칵테일을 잘 마시지 않는 이유.

바텐더.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얼마전부터 4개월 만에 드디어 영업을 하게 되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일은 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업장에서 새로운 칵테일 메뉴 개발에 착수하였는데, 아이디어를 고민한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우쳐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개월 전부터 새로운 칵테일 메뉴를 어느 정도 초안을 잡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코로나를 계기로 그동안 잡아놨던 초안을 다 날리고 새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최근에 주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전에 구상해놓은 레시피들은 지금의 현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베이스 + 리큐르 + 주스 + 시럽' 이런 구성이 아마 대부분일 것인데, 이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비슷한 맛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다른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시지는 않습니다.


뭔가 색다른 맛을 기대할 수 있는 곳에서는 메뉴에 기재되어 있는 재료들의 조합이 독특하거나 흥미가 생기면 그 업장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셔보는 편입니다.


메뉴에 기재되어 있는 재료의 조합을 보면 "내가 아는 그 맛"이라고 생각이 되면 굳이 주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주문을 해서 마시면 제가 예상했던 그 맛에 가깝더군요.


물론 제가 재료의 조합에 대해서 굉장히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어지간한 칵테일에 쓰이는 기법에 대해서는 거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저도 연구해보고 도전해봤던 것들이죠,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칵테일 같은 경우는 보통 '스피릿+리큐르+주스+시럽'의 조합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칵테일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 바로 '클래식 칵테일'입니다.


예전에는 이 클래식 칵테일에 참 많은 돈을 쓰면서 부지런히 많은 바에 다니면서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가서도 거의 마시질 않습니다. 저는 사실 제가 만드는 칵테일이 제일 제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 잘 만든 클래식 칵테일이라고 할지언정 저한테는 그렇게 큰 감동은 이제 느끼기 어렵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장인 바텐더의 마티니도 마셔봤고 뉴욕이나 런던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텐더들의 칵테일도 마셔봤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 너무나도 훌륭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입맛으로 평가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종이 한 장의 근소한 차이'라는 것과 '클래식 칵테일이 낼 수 있는 맛의 한계가 있다'입니다.


떡볶이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봐야 떡볶이로써 낼 수 있는 맛의 한계가 있듯이, 클래식 칵테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맛의 한계를 느끼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너무나도 많은 바에서 어디에서나 누구나 낼 수 있는 비슷한 맛의 칵테일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반인과 칵테일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바텐더가 만드는 것에 대한 차이와 바텐더들 분명히 크겠지만, 그 차이를 얼마나 크게 와닿게 느끼는 것과 소비자가 바를 찾는 빈도수는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으로 예를 들자면 내가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는데, 김치찌개 전문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 먹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드는 것보다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은데 돈을 주고 사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고 고민을 해보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고 볼 수 있죠.


이제는 어지간한 칵테일은 AI 로봇이 복사해서 찍어내듯이 높은 퀄리티의 칵테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바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라임 같은 과일은 대형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편의점에만 가도 보드카, 진, 럼, 리큐어들은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죠. 또 한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만드는 방법까지 너무나 친절하게 잘 나와있죠,


제가 대만에 갔을 때 굉장히 놀랐던 점은 수준 높은 칵테일의 퀄리티와 그 나라의 물가에 비해 꽤 높게 칵테일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만에서 정말 많은 칵테일을 마셨었는데 거의 모든 칵테일이 꽤나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바들은 칵테일의 만드는 기법과 장비와 시설에 상당한 투자를 했더군요.


사실 조금 부러웠습니다.

바에는 술을 제외하고 그곳의 분위기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방문을 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바에 가장 큰 특성인 '술'만 생각해 봤을 때, 요즘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집에 즐길 수 있는 홈술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주류들에 대해서 '가성비'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소비자들도 눈높이에 맞춰서 칵테일의 수준과 방법도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칵테일을 다른 바에서 잘 마시지 않는 이런 이유를 소비자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지,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저도 그래서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들로 칵테일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다음번에 더욱 자세하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9살이나 된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 고양이가 막 젖을 떼고 2개월째에 제가 바로 데려와서 키웠었는데, 전 세계 고양이들이 환장하는 '그 간식' 바로 '츄르'를 짜서 줬었는데, 이 아기 고양이가 츄르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ㅜㅅㅜ <-- 이렇게...(진짜 과장 없이 이렇게 울었음)

나중에 수의사분께 물어보니 생애 처음 경험해보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뇌 신경을 자극해서 진짜 단지 '너무 맛있어서' 우는 거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울 수가 있다니...

그래서 그 다음부터 츄르를 항상 주고는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츄르를 먹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더군요, 굉장히 의아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경험해본 맛'이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울지 않는 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로 어떤 바에서 특정 칵테일을 경험해보았을 때 '우와-!!!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저도 느껴본 경험이 있으나 그 다음부터는 경험해봤던 그 맛보다 맛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감동을 느끼기 어렵더군요...

최고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선 같은 종류의 칵테일을 적어도 최소한 100잔 정도 마셔보면 아마도 생애 최고의 칵테일을 마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이제까지 마셔봤던 칵테일 중에 바텐더님의 칵테일이 제일 맛있어요"라는 칭찬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실 "잘생겼어요" 혹은 "동안 같아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클래식 칵테일보다 조금 더 다채로운 플레이버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그리고 클래식보다는 과일이나 시럽을 쓰는 칵테일을 제가 더욱 잘 만들기도 합니다. 모든 칵테일의 기본은 클래식 칵테일이고 기본을 이해해야 그다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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