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요즘 저도 '더글로리'를 심심하거나 시간이 날 때 보려고 아껴서 조금씩 보고 있었는데, 굳이 제가 보지 않아도 너무 장안의 화제라 여기저기서 결말이 보이는 스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젠장)
극중 박연진이 로얄샬루트의 병을 들고 손명오의 대ㄱㅏㄹ....ㅣ 아니 머리를 강하게 내려쳐서 저세상으로 보내버리는 씬이 나오는데, 연진이의 풀스윙의 파워가 약했는지 한 번으로는 죽지 않아서 두 번에 내리쳐서 보내버리죠,
그러던 중 저는 무의식적으로 '으이그 조니워커 블루 모서리 부분으로 후렸으면 원샷인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사실 한 번에 죽었으면 좀 아쉬웠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두 번에 죽였겠지만, 저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드라마나 혹은 영화에 술이 나오는 것을 유독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째서 감독은 왜 하필이면 저 술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조니워커 블루는 목이 짧기 때문에 잡기 어려워서 목이 길고 거꾸로 잡아서 후려치기 좋은 그립감 때문에 로얄 샬루트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1人)
로얄 샬루트, 조니워커 블루, 발렌타인 30년의 공통점은 각종 영화에서 '부'를 상징하는 술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나쁜 놈, 즉 악역들이 즐겨마시는 술로 주로 나오고는 합니다.
특히 8,90년대 배경의 영화에서는 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생각해 보면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수입되는 위스키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도 글렌피딕, 글렌리벳, 맥켈란 정말 딱 이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국내 최고의 고오급 위스키는 단연 조니워커 블루와 로얄 샬루트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바텐더를 시작하고 맛이 너무 궁금했었는데 한참 지난 후에야 조니워커 블루를 다 마시고 간 테이블의 병을 거꾸로 탈탈 털어서 몇 방울 정도 감질나게 맛을 본 게 전부였습니다.
로얄 샬루트나 조니워커 블루는 가격도 가격인데, 비싼 만큼이나 일단 병 디자인에서부터 절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90년대에는 조니워커 블루의 바틀 디자인이 그렇게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는데, 현재는 병도 더 두꺼워지고 고급스러운 퍼런색을 더 해서 영롱한 블루 컬러를 내뿜습니다.
워낙에 8,90년대부터 너무 감사한 분께 선물하는 선물용 고급 위스키로 많이들 알려져 있고 지금도 명절에 마트나 백화점에 가보면 한 쪽 고오급 양주 쪽에 조니워커 블루와 로얄 샬루트, 발렌타인 30년은 빠지지 않습니다.
발렌타인 30년은 주인이 30번 바뀌어야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물 받은 사람이 안 마시고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1년에 두어번씩 주인이 바뀌어 주인이 30번 바뀌면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고급 위스키 라인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블렌디드 위스키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구입하는 이유는 이 술이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움의 이미지와 마시기 편한 맛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에 고급 호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호텔 바도 생겼고 룸살롱 같은 유흥 문화들도 이때를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 고급 위스키들을 수입하거나 원액을 수입하여 병입하는 방식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고급 위스키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격을 떠나서 고연산 블렌디드 위스키의 가장 큰 매력은 '부드러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마셔도 마시기가 부담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단점은 이게 너무 부드러워서 한번 오픈을 한 뒤에 파라 필름으로 최대한 공기의 유입을 막아주지 않으면 한 2~3개월 뒤에 오픈해 보면 부드럽다 못해 뭔가 맹....합니다. 뭔가 술에다 물을 탄 거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고 연산일수록 아끼지 말고 오픈하면 다 마셔버리는 편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로얄 샬루트 38년을 처음 마셔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뭔가 '밍밍하다' 였습니다.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맛이 너무 맹하고 목에서 너무 부드럽게 넘어가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맛이 부드럽다는 것은 맛에서 엄청나게 미세하고 섬세한 맛이 스며들어있다는 것입니다.
10년 정도의 저 연산 엔트리급은 향이나 맛이 직관적이고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표현이 확실하나 고 연산의 향을 맡아보면 직관적인 향보다는 코를 강하게 자극하지 않는 부드러운 미세한 여러 가지 향들이 섞여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 연산 숙성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실 때에는 저는 절대 얼음을 넣어서 마시질 않는데, 뭐 물론 마시는 취향마다 다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맛 자체가 부드러워서 얼음까지 섞으면 물이 녹아 나와 술이 금세 더 맹해지기 때문에 온전히 그 술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고연산 위스키는 얼음 없이 노징 글라스에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예전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위스키 바에 가서 같이 간 일행이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주문했다가 바텐더에게 '너는 왜 우리의 이렇게 훌륭한 위스키를 얼음에 넣어서 마시려고 하지????'라며 정색하며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함;)
글을 마치며 한 마디만 더 보태자면 더 글로리에 나왔던 이 술은 로얄 샬루트 병을 모티브로 극 중에 자체 제작된 병입니다. 62년산이 실제로 있긴 하지만 라벨 디자인이 다릅니다, 정말로 사용했다가는 추후에 생길 수 있는 법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듯 아니듯 일단 로얄 샬루트 병으로 보이는 것은 빼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로얄 샬루트 보다는 글렌모렌지 시그넷 공병이 둔기로는 더 적합...하.....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