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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바텐더 Jan 26. 2016

근본 없는 바텐더 #3

바를 떠나는 손님, #1

바에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 많은 사람들이 바에 오고, 바에 정을 붙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바를 떠난다. 


"그럼 다음에 내가 마실 걸 들고 올 테니 카바차지만 받아."

보통은 가게에서 볼 수 없는 60대 중반, 염색한 흑발이 자라나  흰머리 뿌리가 보이는 노인이 어느 날 바에 들어섰다. '커치샥'이니 '발렌타인' '임페리얼' 같은 것들을 연거푸 찾았고, 그런 것은 아쉽게도 없다고 대답하자 병으로 마실 양주 뭐 없냐고 물었다. 애초에 병으로 팔지를 않아서 난감해하자, 노인은 저 말을 남기고 가게를 떠났다. 노인이 다시 가게에 등장한 것은 몇 달 후였다. 

"이거 아주 좋은 술이야. 이런 거 못 마셔 봤지?"

노인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임페리얼 퀀텀이었다. 마트 진열장 자물쇠 안에서 볼 수 있긴 하지만 썩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 위스키. 마셔 본 적도 없고, 사실 가게에 두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술이었다.  들고 오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노인은 이 술은 연예인이 마시는 아주 좋은 거라고 했다. 맡겨 놓고 마시면 원래 가게에 '카바차지(1)'를 주는 거라며 노인은 삼만 원을 냈다. 가게에는 같이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물과 간식으로 사 둔 초콜릿, 치즈를 조금 주었다. 노인은 나의 신상을 캐묻고 한참 위 띠동갑이라며 반갑다고 술을 권했지만 근무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을 했더니, 혼자만 술을 세 잔 먹고 일어났다. 권할 때 눈동자가 흔들리던 것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다. 두 번 권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하하. 

노인이 세 잔을 먹고 일어나는 데에는 더 드시면 안 되겠다고 보낸 나의 흉악한 눈초리도  한몫을 했겠지만, 전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온 노인은 계산을 하며,  다음 방문에는 치즈 말고 뻥튀기를 달라고 했다. 그것도 내 간식이었는데요.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1) '카바차지'라기보단 코키지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노인의 말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네 번째 방문이었다. 노인의 염색한 머리는 이제 백색이었다. 몇 번을 방문하는 사이에 나는 노인이 근처의 시계방 주인이라는 것과 딸과 아들이 있다는 것, 과거에 한 골목을 주름잡던 술고래 망나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적으로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랬다. 뻥튀기는 없었고, 노인은 만 원을 내고 자기 술을 마셨다.

노인은 딸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들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옛날에 엄청나게 마시고 다닐 때 그렇게 석 잔만 마시라고 딸이 말렸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말 안 듣고 몸 상하고 나서야 덜 먹게 된다는 이야기도 몇 번이나 하며 허허거리는 품이 딱히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던 사실을 반성하고 계신 것 같지 않아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바텐더의 일은 그런 것이다. 노인의 말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딸이 공무원 시험을 뭐 해준 것도 없는데 붙었다고, 원래 머리가 좋았다고 자랑하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집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며 못됐다고 투덜거리다가. 아무튼 잘 마셨던 시절은 옛 일이 되었으니, 노인은 그 날도 했던 말(딸이 석 잔을...)을 또 하며 슬슬 일어나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 날 마감 청소를 했더니, 백발이 많이 나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선반을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내려가지 않은 주면(酒面)의 병을 보았다. 노인은 술을 마시고 나면 마신 데까지 물백묵으로 금을 그어 달라고 했다. 세 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선반 아래쪽 안쪽에 조용히 넣어 두었다. 나중에 와서 술병에 먼지가 쌓였다고 잔소리를 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처음에 마신 데까지 금을 그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나 손님이 마시지도 않을 텐데 왜? 하고. 그리고 그런 종류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는 다시 노인을 떠올렸다.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고. 연이어 언젠가 오시겠지, 언제 오시려나, 다음에 오시면 뻥이요라도 사다 드려야겠다-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외의 시간 동안에는 역시나 거의 노인을 잊고 있었다. 


시계방 쪽으로 돌아서 출근할 일이 있었다. 가게의 불이 꺼져 있고, 문에는 하얀색 마름모 종이가 붙어 있었다. 상중喪中.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종이는 떨어졌지만, 한동안 시계방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문이 열려 있었다. 다가가 안을 살폈다. 나보다 약간 나이 많은 여자가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 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부를 물었다. 췌장암이었다고 했다. 시답잖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가게에 나왔다. 아래 선반에서 노인의 술병을 잠깐 꺼냈다가, 다시 선반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도무지 어떻게 취급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년이 지났다. 


한 번, 가게에 처음 온 사람에게 노인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바텐더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해서였다. 그 사람은 술병을 보여 달라고 한 다음 그런 것은 이런 날 맛있게 마셔주는 게 최고의 위령이라고 말했다. 최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역시 영업 중에는 마시지 않아야 되는 게 아닐까요, 하고 말했더니 그 사람은 자신이라도 그 술을 꼭 마셔 보고 싶다고 했다. 아주 탐을 내는 눈치였다. 눈빛을 보아하니 그 날 마시는 것은 역시 위령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 마음이 바뀌었다. 손님의 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노인의 술병을 도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다음부터는 노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바의 사람들은 흘러다니고, 바텐더는 그것을 지켜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 점이 어렵기 짝이 없다. 노인이 하던 시계점 자리엔 평범한 밥집이 들어와 있고, 관련된 사람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그 때 노인의 딸로 추정되던 사람의 연락처라도 물어볼 것을 하고 후회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이 술병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병은 아직도 가게 선반 깊숙한 곳에 있다. 

언제 이 술병을 떠나보내게 될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헤더 사진 :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임페리얼 시리즈. 아무튼 임페리얼을 들고 온 손님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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