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바람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던,
시칠리아에서가 그랬다.
여행 중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지브리(Ghibli)“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이자,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큰 뜻을 품은 단어.
시칠리아의 바람은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다.
세상을 바꿀 만큼 거세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
습하지 않아 가볍고, 따뜻한 바람이었다.
그 시작은 효정이의 초대장이었다.
〈더티 서티 파티에 초대합니다〉
효정이는 오래전부터 이 여행을 꿈꿔왔다.
그런데 왜 하필 시칠리아였을까.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고
시칠리아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당시 작가는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상태였지만
외로운 예술가로서의 삶을 걷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칠리아로 떠난다.
다가올 인상의 변화를 예감하며,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그리고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이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던 까닭일까.
효정이는 오래 꿈꿔왔던 서른 번째 생일을 ‘예언의 장면’처럼 만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호들갑 떤다고 여길 수 있지만,
‘오래 준비해온 대답’의 대답이었다.
'흠.. 너무 멀긴 한데 가야겠지? 그래 가야지'
당시 나는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기에
갑자기 건네받은 초대장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시칠리아는 또 어디야 ㅡ
신혼여행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그보다 다섯 달 뒤에 있을
친구 생일파티를 더 먼저 계획하게 되다니,
스스로도 웃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게 나 같았다.
“이런 일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있겠어?”
그리고 2025년 9월 23일에 떠나는 인천–로마행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그 순간, 여행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2024년 9월이었고,
아직 2025년 휴가도 안나왔을 때였지만
나는 회사에 말했다.
“저 내년에 시칠리아 가요.”
그러자 예상대로 질문이 쏟아졌다.
“시칠리아? 거기가 어디야? 거긴 왜?”
"뭐하는 친군데?"
“유럽까지 생일파티를 가?”
"유럽은 30번째 생일을 중요하게 여겨? 환갑처럼?"
“신랑이랑 같이 가는 거야?”
“신랑이 보내줘?”
그 질문들이 이상하리만큼 재미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가 신랑 없이,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낯설고도 먼 시칠리아로 떠난다는 상황이
신기했나보다.
‘왜 하필 시칠리아야?’
회사에서 들었던 질문, 처음 초대장을 받고 친구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대답에는 친구의 초대 외에도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유'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
20대.
나도 어쩌면 그 이십대의 끝,
이십대의 마지막 여름을
어디 먼 곳에서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따뜻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시칠리아는 그런 감정에 어울리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