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나 #4

둘째가 전한 메시지

by 하양

때로는 가장 어린 아이가 가장 지혜로운 말을 한다



#둘째의 가출


둘째도 핸드폰에 매달려 산 지 꽤 됐다.

개학이 코 앞인데 숙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제까지 할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얘까지 왜 이러나 싶어 조바심이 생긴다.


"친구들 다 학원 다니고 공부하는데 뭐 하고 있니?"


비교를 하고 말았다.


즉각적이고 과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내가 이 집에서 사라지면 되? 알았다고! 나가겠다고!"


동전을 챙겨 현관문으로 향하는 둘째를 보며 못 견디게 화가 났다. 동전을 뺐었다. 그래도 문을 열고 나갔다.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너 나가면 엄마 죽는다고!"


아이는 나갔고 아빠가 쫓아갔지만 사라졌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데... 가출에 자살협박까지.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싶었다.



# 30분의 기적


다행히 둘째는 30분 안에 들어왔다.


"정말 죽을까 걱정되서 들어왔더니 엄마는 핸드폰이나 보고 있냐고!"


나는 그 새 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형아도 공부 포기했는데

너까지 그런 거 같아 속상했다고.."


그러자 둘째가 말했다.


"형아가 공부 포기했는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형은 2년 넘게 기댈 사람 하나 없이, 그나마 학원이라도 가는 게 엄청 노력하는 거라고."


"형도 포기 안 하는데 왜 엄마가 포기한 거라 생각해?

나도 형을 좋아하지 않지만, 형한테는 아무도 없잖아."


"게임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엄마가 좀 잘해주다 형이 뭐라 한다고 그렇게 바로 그만두면 어떻게"


"아무리 형이 성질내도 엄마가 참고 넘기면 형도 좀씩 달라지겠지."



# 10살 아이의 지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누군가 이 아이를 통해 나에게 들으라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먼저 바뀌고 버텨야 아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10살짜리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형에 대한 이해, 엄마에 대한 조언, 가족에 대한 사랑


어른인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는 이미 보고 있었다.



# 아이들은 다 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안다.


엄마가 언제 진짜 화내는지

엄마가 언제 형식적으로 관심 보이는지

엄마가 언제 포기하려 하는지


어른들이 복잡하게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걸,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지혜를 나누어준다.



# 다른 관점에서 본 아이


내가 본 큰 아들

- 게임만 하는 아이

- 공부 포기한 아이

- 성질만 내는 아이

- 가족에게 피해 주는 아이


둘째가 본 형

- 극도로 예민한 아이

- 기댈 사람 없는 아이

- 힘들지만 노력하는 아이

- 포기 안 하고 버티는 아이


똑같은 아이를 보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고,

둘째는 그 마음을 봤다.


나는 결과만 봤고, 둘째는 과정을 봤다.


나는 지금만 봤고, 둘째는 가능성을 봤다.



## 엄마의 패턴


"엄마는 좀 잘해주다 형이 뭐라 하면 금방 포기해."


맞다. 나는 늘 그랬다.


조금 노력해보다가 거부 반응을 보이면 금새 낙담했다.


"그래, 너 맘대로 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니?"


"이제 지쳤다"


한동안 무관심하다가, 갑자기 관심을 보이고, 또 관두고


이런 패턴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더 닫게 만들었다



#일관성의 중요성


회사에서는 일 하다 중간에 어려움이 생겼다고 해서

"안 돼. 포기할래"하기 어렵다.


다른 방법을 찾고, 팀원들과 의논해서 어떻게든 해낸다.


그런데 왜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회사 일은 결과가 명확하고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까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언제 좋아질지 모르고,

노력해도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 쉽게 실망했다.


정작 진짜 중요한 건 아이와의 관계인데



# 다른 관점


그날 이후로 둘째를 다르게 보게 됐다.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아니라,

때로는 엄마에게 지혜를 주는 존재로.


큰 애도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제를 드러내주는 거울 같은 존재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나이나 역할에 상관없이, 때로는 가장 어린 가족이

가장 중요한 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 작은 실천들


그 다음 날부터:


*아침: 깨울 때 짜증내지 않기 (성질내도 참기)

*점심: 맛있는 거 해주기/시켜주기 (무시해도 계속하기)

*저녁: 하루 어땠는지 물어보기 (대답 안 해도 물어보기)


"엄마 갑자기 왜 이래? 또 무슨 꿍꿍이야?"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도 계속 하니

조금씩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바뀌고 버텨야 아이가 달라질 수 있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자.


아이가 포기하기 전에 내가 먼저 포기하지 말자.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고 성질나도 꾸준히 하자.


이 깨달음은 정말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 "엄마 사이코패스야"**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완벽하지 않은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사춘기아들과나 #완벽하지않은엄마 #형제 #지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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