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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티 Sep 18. 2023

엄마가 되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육아는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전 날 새벽에 쌓인 젖병을 씻고, 집안 곳곳에 있는 아기 물건들을 한데 모으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쓸어 담고.. 그렇게 엄마의 하루는 시작된다.


아기를 달래고 먹이고 재우다 보면 잘 차려먹겠다고 애쓴 식탁 위의 내 음식들이 다 식어버린다. 이제는 좀 먹어보자 하고 자리에 앉으면 시계는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킨다. 그렇게 나의 오후는 아이와 나의 일상이 뒤엉켜 어지럽게 지나간다. 그나마 이런 육아의 시간을 함께 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는 커피다. 그런데 이 마저도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꺼내온 순간 으앙 하고 울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다시 아까 내 점심처럼 그렇게 식탁 위에서 잊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몸은 힘들지만 내 마음은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바뀐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글감이 된다. 아이를 돌보는 순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기에 내 머리와 마음속에 하나하나 새겨 넣고 싶어 진다. 그래서 좀처럼 쉬이 없어지지 않는 이 마음을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아이와 나와의 추억을 글로써 간직하기 위해. 이렇게 해야 이 소중한 순간순간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별거 없는 하루인데도 아이와 나만의 수많은 에피소드가 쌓인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먹었고, 그래서인지 낮잠을 조금 덜 잤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 뻗는 모습이 마치 고양이가 펀치 하는 듯한 모습이다. 엄마 쉬라고 밤잠은 조금 쉽게 자준다. 이렇게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들도 우리에게 와서는 특별해진다. 이 시간들을 기록하며 글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하디 평범한 엄마도 쓸 수 있는 것이구나를 실감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일상은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고, 내가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자랑하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아이가 오늘도 얼마나 잘 크고 있고,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다. 아이가 없었을 때 내 일상 글은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 쥐어짜 내야 하는 것이었다면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 나의 글은 도처에 글감이 널려있으며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고 더하지 않아도 선명하게 빛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엄마가 되어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다. 아이가 있기 전에는 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가 되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그 감성을 글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그래서 다들 블로그에 육아일기도 쓰고, 인스타그램에 글도 쓰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엄마들은 모두 작가가 된다.


누가 작가라고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 작가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좋은 글을 써낼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와의 일상을 풍성하게 기록해 낼 내가 기대가 된다. 그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 버릴 아이가 벌써 그립다. 그렇게 나는 내 옷에서 나는 뽀송뽀송한 아기냄새를 맡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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