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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티 Sep 27. 2023

아이가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다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요 며칠은 육아를 하면서 처음으로 깊은 수렁에 빠졌었다. 이 깊은 수렁에서 다시 빠져나와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울감이 내 삶 전체를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산후우울증이 오는 걸까 싶은 마음에 맘카페에 산후우울증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잠을 자보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봤다. 그래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왜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도 딱 무엇 때문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아이는 내 일상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기를 낳고 내 삶이 바뀔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180도 아니 360도 바뀔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나는 생각보다 육아에 적응이 쉽게 안 되는 나 자신을 종종 탓했다.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코로나 초기에 격리 기간보다 훨씬 더 많이) 집에만 있어야 될 줄은 몰랐다. 나갈 일을 만들 수도 없었다. 나가자마자 아기 걱정이 되어 1시간도 안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먼저 엄마가 되신 분들이 왜 그리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애쓰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 자신을 잊을 만큼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결국 나 자신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도 가늠이 안 되는 채로 육아 일상은 이어졌다. 매일 똑같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동안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해왔던 건 이렇게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 속에 있는 지금의 나는 바라던 곳에 도착해 갈 길을 잃은 모습이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내 마음이 힘든 것은 별개일까. 너무 예쁜 내 아이와 일상을 버텨낼 힘이 도무지 나지 않는 나 자신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5년이라는 임용고시 기간과 힘든 교사 생활도 웃으며 버텨왔던 나인데.. 어쩌면 나는 내 아이를 키우는 것을 내 자신이 이렇게 버거워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는 일상이 이어지자 대체로 밝게 지내던 내 일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입맛이 없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잠이 줄었다. 이런 상태가 더 이어지면 안 될 텐데.. 어서 내 상태가 회복되길 바랐다.


다행히 지난 몇 년간의 수험생활과 일병행으로 다져진 멘탈 훈련이 어딜 가진 않았는지 일주일도 안되어 마음이 많이 회복되긴 했다. 힘든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이리 힘들어했던 건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은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었고, 실패해도 다시 돌이켜 계속 도전하다 보면 결국 이뤄내는 나 자신이 있었다. 나는 노력해서 성공을 이끌어내는 그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내가 마음먹고 해내고 싶다고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자연임신을 계획하자마자 아기가 들어서길 바랐지만 아기는 10개월 뒤에 찾아와 주었다.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육아하는 계획을 세웠었지만, 우리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호흡 때문에 일주일간 입원해 있었다. 작게 태어난 아기에게 모유를 주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모유수유를 중단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 예상과 계획을 계속해서 빗나가는 일들로 인해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힘겨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마음이 연약해지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다른 엄마들과 비교되기도 쉬워서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괜히 지난날을 이전 책장을 넘겨보듯 계속 넘겨보기도 했다. 아기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 일들로 그렇게 몇 일간을 혼자서 괴로워했다. 괴로움의 대상조차 없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일부러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나를 버티게 해 주고 정신 차리게 해 준 건 역시 늘 해오던 일상 루틴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먹고 젖병 설거지 하고 아기 우유 주고 기저귀 갈고.. 이런 일상들이 나를 제대로 살아가고 있게 해 준 것이다. 아이 때문에 힘든 것 같았지만 도리어 아이는 내게 힘을 주고 나를 숨 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민과 근심에서 빠져나와 나를 순수하고 꾸밈없는 일상의 세계에서 살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내 마음대로 하나도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다. 좀처럼 성장이 없었던 나의 삶에 너란 충격은 나를 좀 더 멀리 높이 날아가게 해 주었다. 이번 시간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육아를 대하는 자세다. 앞으로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아이도 예쁘지만 그 아이의 엄마인 나 자신도 예쁘게 대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원망하지 않고, 이만큼이나 잘 지내왔음에 감사하려고 한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내 아이의 어떤 점을 보란 듯이 자랑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을 배울 때, 분명 내 아이도 나중에 겸손한 아이로 자라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이번 일주일간의 시간을 통해 절실하게 느꼈다. 앞으로도 나를 성장시킬 아이의 모습이 기대되고 설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힘들었던 사람 맞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마음도 성장통을 겪고 나면 아픈 만큼 쑥 자라나 보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육아를 하는 내가 있을 것이다.


오늘 밤은 어제 보다 조금 더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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