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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티 Sep 30. 2023

나의 부모님에게 나의 자녀를 안겨드린다는 것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기나긴 추석 연휴가 흘러가고 있다. 올해는 아기가 아직 100일이 안되어 친정인 포항엔 차로 가기엔 멀어 가지 못하고 양산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와주셨다. 어딜 가는 일정이 아닌데도 평소 우리 셋만 있던 집에 사람들이 오니 평소와 다른 일상에 에너지가 점점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역시 명절은 북적북적해야 제맛이다.


이젠 드디어 손주를 품에 안겨드릴 수 있는 효도를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기만 했던 추석이었다. 이전에 남편과 나 둘이서 6년간 12번의 명절 동안 친정과 시댁을 오갈 때면 알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손주인 우리 아들 덕분에 오히려 부모님들 곁에 더 머물고 싶어졌다. 손주를 봐주시기도 하지만 우리 아들 자랑을 맘껏 할 수 있는 분들이기도 하니 할 이야기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양가 부모님들 모두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운 드라마가 된다. 아이가 오늘 뭘 먹었는지 뭐 하고 노는지 얼마나 잤는지는 부모님들에겐 핫이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아이가 생기면 가족들 사이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가 되었으니.


아이가 없을 때는 명절 때 양가에 가도 좌불안석일 때가 많았다. 다행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핑곗거리가 있어서 아이 이야기는 많이들 안 하시긴 했지만 내심 기다리고 계시는 눈빛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아기를 가지고 싶은데 그 자리는 언제 잡힐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 사이도 아이가 없을 때는 서로 불편할 게 없었다. 명절은 그저 쉬는 날. 편히 쉬다가 다시 출근을 하면 되니 마음의 불편함만 조금 이겨내면 몸은 한 없이 편한 그런 연휴였다.


그때는 아이가 없어서 몰랐지만 이제는 있으니 이전과 달리 보이는 게 많다. 분명 몸이 힘들 명절이 왜 이리도 기다려지는지. 우리네 부모님들은 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생하며 방문할 자녀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지. 출가한 자녀들이 그들의 식구들을 데리고 모인 그 자리를 부모님들이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시는지를.


아이를 낳고 보니 효도가 다른데 있는 게 아니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단순히 손주만을 원하신 게 아니다. 그 손주를 통해 부모로서 성장할 자신의 자녀인 우리들을 바라보길 원했고 자녀 육아를 통해 부모인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길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손주가 이렇게 예쁠지 몰랐다고 하신다. 아기는 다 똑같이 예쁠 줄 알았는데 손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신다. 이제 어딜 가서 다른 아기들을 봐도 우리 은율이 만큼 예쁜 아기는 없다고 하시니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시어머니도 손주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자랑을 하나 불편할 때도 있으셨다지만 지금은 돈을 내고 친구들에게 손주 자랑을 하신다고 한다. 손주가 생겨보니 매일매일이 더 기쁘다고 하신다.


없을 때는 몰랐던, 있고 보니 알게 된 것들이 많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것은 내 자녀, 내 손주이다. 앞으로도 새롭게 알아갈 우리의 시간과 추억들이 기대가 된다. 더 빨리 이런 시간을 맞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기의 울음과 웃음소리 속에서 그런 생각들은 아스라이 잊혀간다.


앞으로의 명절은 불편함 보다 편안함으로 가득하게 될 일만 남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서 이번 명절을 보내면서도 참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는 명절이 두렵지 않고 기다려질 수 있게 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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