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티 Oct 11. 2023

육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강박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아기가 100일쯤 되어가니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 매일 보내는 일상에도 이제는 나름대로 적응이 되었고, 매일 루틴처럼 무언가를 하다 보니 나름 육아에 자신감도 생기는 중이다. 이러다가 또 금새 이유식 할 때가 오면 다시 방황하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육아의 호시절일 지금을 즐겨보려고 한다.


지금 이런 시간이 오기 전까지 3개월 동안 나는 얼마나 숱한 고민 속에 살아왔던가. 이제는 정말 기억도 잘 안나는 고민들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하며 오늘도 그 시간을 꿋꿋이 이겨낸 나에게 칭찬을 보낸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이런 책 제목도 서점에서 본 것 같은데 이 말은 예전부터 내가 너무 힘들 때 내가 내 자신에게 해왔던 말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기까지 나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왔던 것 같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내가 고등학생 때로 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3 1학기까지. 2학기부터 무너져 내린 내 멘탈 덕분에 나는 가고 싶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나는 오히려 수능이 끝나자 마음이 정말 정말 후련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시기였지만 정말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엄마의 깊어진 우울증이 맏딸인 나에게도 어느새 옮아 그 시절 나는 엄마와 함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고 바로 병원에 가거나 그런 시대가 아니었으니 아마도 우울증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내게 고등학생 시절은 내 인생의 암흑기 정도로 기억될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우울과 함께 나에게 찾아왔던 건 다름 아닌 강박이었다. 전교 1등을 하려면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원치 않았던 강박 증세를 얻고 말았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들이 강박이란 것은 나중에 더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에 그때 당시에 나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같은 강박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도 많이 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임용고시 준비 중에도 강박은 계속되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한두 개 정도는 강박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에 강박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강박으로 인한 불안이라는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해왔다. 대상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더 불안했고, 시험을 치르고, 떨어지는 수험생 생활이 반복되자 다시 고3 때로 돌아간 것과 같이 내 마음 상태는 정말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접한 유튜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강의와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의 힘으로 점점 나 자신이 나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강박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불안을 다루기 시작하니 일상이 이전보다 조금 더 편해졌다. 그 편안함이 지속되자 시험 준비도 이전보다 수월해졌고, 이제 시험을 치는 그 순간에도 불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해에 나는 시험에 합격했고 드디어 나를 괴롭히던 강박들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종종 육아를 하는 요즘도 내 뜻대로 되어야 하고, 주어진 틀대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힘들 때가 있다. 아기가 몇 개월에는 얼마 정도 먹어야 하고, 통잠을 몇 시간을 자야 하며, 키와 몸무게는 얼만큼 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내 자신이 휘둘리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도 그동안 내가 인생을 통해 쌓아 온 내공이 있으니 이런 시간들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이전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나와 아기를 믿어주기로 했다. 어떤 강박이 나를 괴롭히려 달려들어도 나는 나의 소신을, 나의 육아 방식을 믿고, 우리 아기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믿기로 결정했다.


강박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려다 보니 생기는 마음의 어려움인 것 같다. 강박으로 인해 힘들다는 건 그만큼 내가 노력했고 모든 일에 진심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잘하려는 마음으로 인해 나 자신과 아기를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지금까지 해 본 결과 육아는 열심히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앞으로는 아기와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이전보다는 힘을 좀 더 빼고 육아에 임하고 싶다. 잘하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마다 오늘의 글을 생각하며 그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나의 자아와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내가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마음속에서 넌 영원히 하나뿐인 나의 아기일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