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이제 어른이 될게" - 육아휴직 여행기
씸씸이네 가족 헬싱키 여행의 시작은 아빠의 '늦공부'가 발단이 되었다.
씸씸이 아빠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으면 전혀 어떠한 동력도 얻지 못하는 외골수 성향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그때를 놓치고 남들보다 늦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씸씸이의 집요함도 그런 아빠를 닮아서일까? 이해가 될 때까지 끝까지 왜냐고 물어보는 씸씸이는 자주 아빠와 엄마를 식은땀나게 만들곤 한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석사 학위 과정을 찾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잘하는 공부는 아니더라도 나름 재미있게 공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췌장암 선고와 함께 당시 나의 일상의 행복들은 모두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끝끝내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는 가족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의 배움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멈추게 되었던 학업을 2년여 만에 나는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마무리를 위해서 핀란드 헬싱키에 소재한 대학교 본교에서 약 한 달여 체류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라는 국가 브랜드는 꽤 트랜디해졌다. 내가 이 과정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핀란드라는 나라는 분명 많이 생소한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포탈에 검색해보면 관련된 콘텐츠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아마도 '성장, 일등, 일류'를 부르짖던 나라의 정책 기조가 '복지, 교육, 평등'으로 옮겨 가면서 닮고 싶은 이상형인 나라의 모습도 변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평소 여행을 즐기고 좋아하는 우리 부부이지만 핀란드라는 여행지는 우리에게도 조금은 특별한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심지어 어떤 한국인 가족 여행객 중에서는 지금까지 갔던 해외 여행지 중 '최악'의 여행지였다고 평가를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핀란드는 영국, 프랑스, 미국처럼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많은 곳도 아니고, 일본, 홍콩, 싱가포르처럼 쇼핑으로도 그다지 유명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괌이나 하와이, 태국 같은 휴양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다 보니 파리의 에펠탑이나 런던의 버킹엄 궁전을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밋밋한 도시'일 것이고,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쇼핑몰을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심심한 도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핀란드는 오래 씹은 밥의 단맛과 같은 매력이 있는 여행지였다. 우리 취향을 저격하는 문화 코드를 가진 그런 곳이었다.
무엇보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 중심의 도시 모습이, 평등이 일상인 대표적인 페미닌 국가로서의 모습이, 그리고 실패에 관대한 그들의 여유로움을 일상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씸씸이와 함께 살고 싶은 그런 이상적인 모습의 도시였다.
한 달여 가까이 머물렀던 헬싱키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