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엄마를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깊어지는 눈가의 주름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매년 5월 8일 되면 습관적으로 부르던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니 은혜”처럼 추상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바로 어제,
"새벽에 우리 애기 울음소리 때문에 서너번은 깨"라는 피곤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사촌언니를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이정도로 희생적이었을까 묻고싶었다.
최근에는 아이들한테 희생하며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이 담긴 일본 만화영화 「늑대아이」를 봤다. 주인공 하나가 성장해서 곁을 떠나는 아들한테 "하지만 난 아직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라며 외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글썽거렸다. 문득 나보다 티비 드라마나 등산에 더 관심있어하는 보는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집을 떠나면 엄마도 이렇게 슬퍼할까 궁금하다.
난 그 흔한 “당연히 어머니는 공경해야하고 우리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었어”라는 말을 하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철없는 27살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나는 모성애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한테 쌓인 불만을 털어놓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우리 엄마에 대해 꾸밈없이 나의 생각을 쓰고 싶을 뿐이다. 난 그저 살면서 한번쯤은 엄마에 대해, 엄마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보편적인 희생”에 대해 얘기를 하고싶었다.
아니, 사실 “보편적인 희생”에 대한 에피소드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엄마는 말수는 많지는 않으며 가시돋친 말을 하곤했다.
칭찬에 인색하고 "자식 다 소용없다"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첫 월급날, 나는 생크림 케잌 사왔을 때 엄마의 첫 마디가 "생크림 별론데"라며 말을 툭 던졌다.
미국 교환학생 갔었을 때 자주 영상통화하며 애정표현하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GOD의 “어머님께”라는 곡에서처럼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같은 가슴 찡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도 엄마에 대해 나는 꼭 쓰고싶었다. 기억 속을 더듬어 꺼내보기로 했다.
몇 년전, 나는 엄마한테 "나한테 관심없다"며 서운함을 표현했을 때 엄마의 화난 표정을 잊지못한다. 또 몇 달전에는 내가 고열로 며칠 앓았을 때 엄마가 너무 걱정한 나머지 유럽여행 다 취소하고 나보다 더 몸이 아파서 앓아 누웠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인지 낮잠 자다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와 수학공부해야한다고 횡설수설하던 나를 안아주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생 때 자기 전 엄마 무릎위에 머리를 기대며 눈감고 누워 황선미작가의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어주곤했다. 암탉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엄마의 무릎위로 눈물을 뚝뚝 흐르며 스르륵 잠이 들 때가 있었다. 그토록 행복한 잠은 없었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엄마의 27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퉁퉁한 몸매를 갖게 된 것은 내 탓으로 돌린 엄마. 여자임을 포기한 30년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글로써 증명하고 싶었다.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어떤 고립된 물리계 시스템의 에너지는 그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 총량은 항상 보존된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우리 엄마의 희생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변했는지 쓰고 싶었다. 단언컨대, 아마 추운 겨울날의 모닥불보다 따뜻하거나, 지구 어디에 있든 항상 보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보다 위대한 형태로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