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

비어있음에서 희망을 찾다

by Aarti 아띠

▲ “비어 있음이 어찌 그저 비어있음이랴”


안암역 개운사 근처에 커피숍 ‘레스이즈모어(less is more)’.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기다리는 동안 매장 한 쪽에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붓글씨로 고풍스럽게 쓰여진 “비어 있음이 어찌 그저 비어있음이랴”는 마치 어떠한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글귀 같았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갖고 괜히 ‘있는 척’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어있음이 그저 비어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따져보면 그저 비어있음은 아니지... 질소 80퍼센트, 산소 20퍼센트로 되어있겠지’며 혼자 키득키득 거렸다.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추석 대명절을 맞이하여 아빠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살아온 배경, 성별, 외모 등 모든 것이 다른 우리 부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 웬만한 주제로는 의견 차이로 부딪치는 아빠와 나는 시라는 매개로 끊임없는 대화가 오고갔다. 기형도의 ‘빈집’을 우리는 읽으면서 우리는 마지막 연에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에 주목을 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여러 번 읽어봐도 ‘나’는 문을 잠그고 나갔다. 하지만 아빠는 문을 잠그고 나간 것이 아니라 문을 잠그고 그 안에 스스로 갇힌 것이라고 해석을 했다.


아빠 - “'나'는 ‘사랑’이 되어서 빈집에서 소멸해 버린거야. '나'가 방에서 나가버려 물리적으로 '빈집'으로 만들면 시적 절망이 부족해. 시에서는 너무 논리를 따지면 안 된다고 봐. 만약 너 말대로 '나'가 문을 잠그고 나간거라면, '나'는 어딜 향해 가는건가? 어떻게 되는거야?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는건가?

그리고 실은 마지막 행에서 '사랑'이 집에 있는데 빈집이라고 표현했으니, 그 자체가 모순 아닌가?“


나- "당연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가서 빈집이 된 거 아니야?

그리고 사랑을 잃었지만, '가엾은 사랑'을 뒤로 한 채 집 밖을 나섰지만, 장님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마냥 절망적인 느낌은 안들어. 훌훌 털어버리고 죽음이 아니라 더 높은 곳, 즉 정상으로 향하는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메시지인 것 같아.“


시인 기형도는 ‘나’가 어디를 향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나'가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가 빈 공간, 공허함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인 것 같았다. ‘빈집’에서 죽음에 다다르든, ‘빈집’을 떠나버리든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져 있다. ‘비어있음’은 공허함이 아니라 앞으로의 운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주체성을 의미한다.


▲ 꽉찬 보름달-또는 슈퍼문-을 보면서



잠실 석촌호수에 슈퍼문이 떴다. 미국의 두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프렌즈위드유'의 공동작업이라고 한다. 귀여운 캐릭터 표정의 거대한 흰 달은 호수위에 떡 하니 둥둥 떠 있었다. 그냥 공기로 가득 찬 가벼운 거대한 흰 공 같았다. 전국 각지에서 이 흰 공을 보러 석촌호수로 왔는지, '고작 천쪼가리에 사진 찍는 요란한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처음에는 그닥 큰 감흥이 없어 지나치려다가 슬쩍 다시 보니깐 달은 붉은 색이 되었다. 알고 보니 보라색, 초록색, 파랑색 등 은은하게 색깔이 변해갔다. 그제서야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나도 다른 '요란스러운' 사람들처럼 사진을 찍으며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다녀간 수 천명의 사람들의 소원이 ‘비어있던’ 흰 공에 아름다운 빛깔로 가득 채워가는 것이었다.


▲ 매년 결혼하다


매년 9월 14일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가족의 작은 파티가 열린다. 올해도 역시나 9월 14일은 왔고 부모님 결혼 31주년을 맞이하여 나는 와인과 고구마케잌을 샀다. "결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결혼 축하합니다!" 우리 넷은 초 4개 (긴 초 3개와 짧은 초 1개)에 소원을 빌며 하나씩 촛불을 껐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엄마 아빠 결혼 축하해~"라는 외침에 가족들이 웃으시자 나는 "아니 난 진심이야. 매년 처음 결혼 하는 것처럼 그 처음의 감정을 잊지 않는게 중요한 것 같아."

결혼도 안한 나는 애늙은이스러운 말을 던졌다. 결혼 1주년, 2주년, 3주년 등 보다는 매년 둘만의 결혼식을 축하하면 새롭고 즐겁지 않을까. 1년이라는 순환고리의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다짐하고 소망하는 우리의 행위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속에 꿈과 소망을 하나씩 채워나가기 위해 과거의 후회스러운 기억들을 ‘0’으로 비워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 “비어 있음이 어찌 그저 비어있음이랴”


추석 다음날, 나는 해 뜨기 전에 눈에 떠졌다. 짧은 명절은 뒤로하고 오늘의 할 일을 흰 종이 위에 계획해 나갔다. 새로 펼쳐질 하루, 무궁한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늘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써 내렸다. ‘0’으로 시작하는 오늘, 그 ‘0’의 비어있음은 그저 비어있음이 아닌 것 같다. 나의 꿈 80퍼센트와 소망 20퍼센트로 꽉차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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