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까먹기 전에 써보는 지난 9월 무계획 제주 여행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200
2019년 9월
평일에 제주도 가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내가 바로 평일에 제주도를 가는 행운아가 됐다. 갑작스럽게 내일 하루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듣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 급하게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9월 초 제주로 늦은 휴가를 다녀오긴 했지만 링링과 함께한 휴가였기에 제주를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때 일은 언젠가 글을 써보기로 하겠다, 정말 잊지못할 비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제주로.
새벽 비행기를 처음 타는 건 아니었지만 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진짜 없었다. 더군다나 추석 연휴가 끝난 바로 직후여서 그런지 사람이 더 없었다. 덕분이 시끄럽지 않은 평화로운 비행을 즐길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두근한데 해가 뜨는 모습까지 보니 더 설레였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드는 순간 왜 인지 울컥하기도 했다. 새벽 감성이란.
새벽 비행기를 타면 좋은게 해가 뜰 때의 그 따스한 빛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햇살과 야자수의 조화는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러한 풍경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이제 어디로 갈지 슬슬 생각하기 시작한다. 늘 항상 제주도에 계획 없이 오지만 특히 당일치기는 더 계획이 없다. 잠을 자야할 곳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게 무계획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차는 안 빌리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일단 버스 타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어느 지역에 가는 버스가 가장 빠른지 스캔을 한다. 이날은 성산포 가는 버스가 10분 내로 도착한다고 했기에 성산항을 먼저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한숨 자고 나면 어느새 성산항 근처다. 어디를 갈까 또 한번 고민을 하는 지점이다.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를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세화나 종달리로 갈 것인가. 생각해보니 우도에 안 간지 어느덧 1년 정도 되어서 오늘은 우도 입도를 하기로 했다.
성산항 터미널로 가서 가장 빠른 배편을 확인한다. 5분만 일찍 결정했어도 타이밍 좋게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20분 정도 기다렸다. 남는게 시간이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다. 배 한 켠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사진도 몇 장 찍어본다. 내 자신이 한량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뭐 한량 맞으니까...^^...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같이 배를 탔다. 문득 세월호 생각이 났다. 그 참사가 아니었더라면 그 친구들은 이 아이들처럼 이렇게 웃으면서 추억을 쌓았겠지. 그리고 그날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외삼촌도 기억해본다. 그 참사가 없었더라면... 삼촌이 돌아가셨지만 특집 방송을 7개나 만들어야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마음의 짐을 거두지 못한 채 그를 기리며 우도로 떠났다.
'다정한 파도고 싶었지만 니가 바다인 건 왜 몰랐을까' 라는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저런 멋진 말을 쓰는 사람이 참 멋있어 보인다. 나도 분명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고작 여행기 하나 쓰는데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사진만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잘 마무리 할 수 있겠지. 하핫.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도착이다. 이제 어디를 가야할지 또 생각을 해본다. 우도를 한바퀴도는 버스투어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탈지, 아니면 그냥 무작정 걸을지 결정을 해야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는 반납하러 같은 장소에 또 와야하기 때문에 즐겨타지 않는다.) 보통은 버스 표를 사둔 뒤 타고 싶을 때는 타고 걷고싶으면 걷고 그러는데 오늘은 천천히 우도를 느끼고 싶었기에 버스 표를 사지 않기로 했다. 후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선택이 베스트 선택이겠거니- 라고 생각해본다.
배에서 내리기 시작하면 각종 호객행위를 당하는데 열심히 귀 닫고 파워 워킹을 해본다. 다들 참 열심히 산다.
우도에서의 계획을 급하게 세워본다. 하우목동항으로 내렸으니 천진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기.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아침을 먹고 아니면 그냥 걷기. 서빈백사에서 사진 찍기. 아 엄청난 계획이다.
서빈백사, 요즘은 산호해변이라고 부른다고 했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해변이다. 맑은 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래밭 위에 가만히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살 것인지, 이제 새로운 시즌 들어가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일은 계속 할 수 있을지 뭐 이런 거창한 생각도 하다가 당장 배 타고 나가서 어디를 갈지, 뭐를 먹을지 이런 자잘한 생각도 해본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만히 앉아서 1~2시간을 순삭하다보면 슬슬 걷고 싶어진다. 그러면 또 걸으면 된다.
엄마는 서해에 있는 작은 섬에서 자랐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차로 15분이면 충분한 아주 작은 섬이다. (방금 검색해봤는데 우도보다 더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반정도를 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라 1년에 한 번 정도만 갈 수 있었는데 유독 우도에 오면 그곳이 생각이 많이 난다. 다 함께 갔던 해수욕장, 망둥어 낚시, 하나밖에 없는 문방구 겸 슈퍼마켓, 길 걷다가 따먹은 참외, 저녁 예배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매미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던 것, 고기 반찬 없다고 칭얼대던 것까지. 젊었던 엄마와 아빠도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도. 외삼촌들 이모들 모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일하던 작가 중에 해녀학교를 다니는게 목표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음? 해녀학교 가서 뭐해?' 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멋있는 것 같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도전해볼 엄두도 나지 않지만 바다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다. 자연에 나를 맡긴다는 것, 강하지만 유연해야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지금도 해녀학교 입학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며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스럽다. 나도 그녀처럼 인생의 목표를 가져야겠다.
천천히 그러나 올곧게 걸어가라고 그날 제주가 나한테 말을 했다. 그게 어떻게 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맡기를 바랄 뿐이다.
윤슬을 바라보다보면 저 반짝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된다. 반짝였던 나의 과거, 반짝일 나의 미래까지. 그냥 빛의 반사일 뿐인데 참 많은 의미와 생각을 갖고 산다. 결정은 늘 즉흥적으로 내리지만 생각은 늘 복잡하다. 윤슬을 바라보며 이소라님의 <신청곡>을 많이 들었다. 아마 나에게 위로가 필요했었나보다. 그래도 그날의 공기, 파도, 냄새, 음악 모두가 위로가 되어주었다.
혼자 여행을 하면 내 사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거울을 이용했다. 이 사진 찍고 스스로 좀 뿌듯했다.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같다고나 할까. 사진도 잘 나와서 더 만족스럽다. 한동안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도 썼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나. 언젠가 이 사진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고 찍을 때 생각했다.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많이 앞서간다. 하핫.
걷다가 배가 고파서 망고쥬스 하나 시원하게 먹고 성산포로 가는 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어디로 갈지 생각해본다. 성산항에서 갈치조림을 먹고 움직일 것이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망고쥬스 덕분인지 일단 배가 별로 고프지 않기 때문에 버스 시간을 보고 판단하기로 한다.
아니 그나저나 글쓰는데 엄청 오래걸렸는데 막상 우도에서 한게 뭐 없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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