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요리는 커녕, 집안일은 평생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 일을 하면, 그런 건 안 해도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집에 주부가 필요하다면 그건 평생 나는 아니고, 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을 시키고 나는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이쿠, 근데 생판 타지로 넘어오니 세탁기 하나 쓸 줄 모르는 가짜 어른은 뭘 해도 다 걸리는 것이었다! 아직도 언니가 두고두고 흑역사로 일컫곤 하는 세제 없이 일주일 물빨래만 했다거나(세탁기에 다 들어있는 줄 알았다), 2년 동안 방에 침대 말고는 다른 가구를 놓지 않았다거나, 소금 소태 파스타라거나...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른 건 나름대로 4년 가까이 자취를 하면서 늘었지만, 요리만큼은... 회사에서 삼시세끼 다 주니까, 하고 외식+회사밥으로 버텼더니 오히려 본가에 살 때보다 더 서툴어져 버렸다.
그러다 코로롱이 왔다. 하하... 아니, 사실은 코로롱 1년까지도 우리 회사는 제조업이니 뭐니 하면서 임산부 말고는 재택을 시켜주지 않아서, 작년 연초에 한 삼사일(귀찮으니까 막내야 가라, 하고) 도입했던 것 외에는 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나게 사장님한테 익명 고충 보내는 날에 서브폰으로 ' 스마트 시대인데 스탭부서는 너무 도태된다. 강제로라도 돌아가면서 재택을 시켜서 할 줄 알게 해줘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와우. 추석 쯤부터 용케 받아들여져서 월 4-5일 가량을 재택하게 됐다.
그렇게 재택 첫날, 아침 김치만두 점심 김치만두 저녁 김치만두를 먹었다. 에어프라이어를 산지 2년 가까이 됐지만 사용도 손에 꼽았어서, 이렇게 소중한 가전제품인지 몰랐다. 맛도 있었다! 다만 이렇게만 살아갈 순 없겠다 싶어서, 그 뒤로는 미리 재택날 전에 식량을 비축했다(주로 빵). 건강에 나쁜건 알지만... 가끔이니까! 일탈이지! 하고 자기만족을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친구와 경주를 놀러갔다. 게스트하우스였는데, 토스트와 계란후라이(셀프)가 무제한이었다. 계란후라이를 잘 못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요리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아주 손쉽게, 그것도 몇 개 먹냐고 물어보더니 두개씩 두 번을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니... 아니... 학교 다닐 땐(이미 10년이 넘었지만) 라면도 잘 못끓이는 친구였는데! 내가 파스타를 해주곤 그랬었는데!
나름대로 꽤나 큰 충격이었다.
여행 후 집에 오는 길에 계란 10구를 사 와서, 틈 나는 대로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작심 삼일이라 다 쓰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렇게 서른 직전에 완성한 생애 첫 계란간장밥! 거의 식당급의 요리를 하는 후배네 놀러가서 얻어먹다가 29.9999세에 완성한 계란간장밥이라며 자랑했다. 뭐, 언젠간 나도 그 친구처럼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 어쨌든 먹고는 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