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동자

경혜공주의 모성애와 보육 현장의 정직한 신뢰에 대하여

by 아이조아임기순

최근 1,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록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비운의 왕녀 경혜공주의 삶이 화면에 펼쳐질 때마다 내 가슴 한구석은 묘하게 일렁였다. 가장 고귀한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노비로 추락해 거친 삼베옷을 입어야 했던 그녀. 서슬 퍼런 세조의 의심과 감시의 눈초리 아래서도 그녀가 끝내 살아남는 고통을 택한 이유는 오직 자식의 생명과 앞날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 숭고한 인내의 역사를 지켜보며, 나는 오래전 내 일터를 휘저어 놓았던 ‘검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2015년 초,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만 2세 반 아동 학대 사건은 평화롭던 보육 현장에 폭탄을 던졌다.

교사가 아이의 뺨을 때려 그 작은 몸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충격적인 장면은 연일 뉴스를 도배했고, 국민의 분노는 산불처럼 번졌다. 시장통이든 카페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비난의 독설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말도 못 하는 어린애한테 어떻게 저런 몹쓸 짓을 할 수 있어? 뉴스 봤어? 저럴 거면 왜 그 일을 해!”


천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던 세상의 곱던 시선은 순식간에 우리를 악마처럼 몰아갔다. 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 믿으며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원장’이라는 직함을, 숨기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기까지 했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서, 그동안 가족처럼 믿고 맡긴다던 우리 학부모들의 눈빛에서도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차가운 의심이 서려 있음이 보였다.


해 9월, 정부는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학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대안으로 전국 어린집 CCTV 설치 의무화 정책을 펼쳤다. 보육실 천장마다 박힌 ‘검은 눈동자’는 현장에 거센 태풍을 몰고 왔다. 그 검은 눈동자가 두려워서 일을 하기가 어렵다며 보육인들 마음도 술렁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고 우리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생각에 불만이 없지 않았으나, 거듭되는 숙고 끝에 이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진정 떳떳하다면 차가운 렌즈는 오히려 나의 진실함을 증명해 줄 도구이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작 나를 지치게 만든 시련은 따로 있었다.


국가의 감시와 세상의 의심 앞에서 흔들리는 교사들을 설득하는 일은 눈물겨운 사투였다.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원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퇴직 선언이 비명처럼 이어졌다. 자신의 딸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감옥에 갈까 무섭다며 당장 그만두게 해달라는 한교사 부모의 애원 앞에 나는 밤잠을 설쳐야 했다. "CCTV가 무서워 더는 일할 수 없다"며 끝내 등을 돌리던 교사의 뒷모습을 볼 때면 무력감과 함께 나 역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나야 할 이유와 남아야 할 이유 사이에서 번민했지만, 결국 내 마음은 남는 쪽으로 기울었다. 늘 어린이집을 찾는 어머니들께 "걱정 마세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 주겠습니다"라고 약속하며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진정 엄마의 마음이라면 세상이 나를 의심하고 감시한다고 해서, 혹은 동료가 떠난다고 해서 이 일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법이다. 다행히도 "원장님, 우리가 다 떠나면 이 아이들은 누가 보나요?"라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자리를 지켜준 교사들이 있었다.


가끔은 “검은 눈동자에는 목소리가 담기지 않기에 아이를 안고 뒹구는 모습도 자칫 학대처럼 보일까 봐 몸을 사리게 된다”는 교사의 아픈 이야기도 듣는다.

자존감은 무너지고 문득문득 불안이 엄습하는 날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떠나지 않고 더 정직해지려 노력하며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그 숭고한 책임감은 역사 속 이름 없는 스승들이 그러했듯,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남편을 앗아간 원수 같은 세조에게 자식을 맡기고 비구니의 길을 택했던 경혜공주의 결단과 닮아 있다. 그것은 결코 비굴함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한 처절하고도 숭고한 사랑이었다.


보육 또한 비굴함보다는 스스로의 양심을 따를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역사가 그들의 정당함을 증명하듯, 내가 지켜온 보육의 시간도 결국 ‘옳은 것이 승리한다’는 진리를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그때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나의 선택이 얼마나 당당했는지 이제는 확신한다. 감시의 눈인 CCTV 설치도, 그것이 두려워 떠나는 일도 모두 정답은 아니었다. 차가운 렌즈는 사후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도구일 뿐, 아이와 교사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온도’를 차갑게 동결시키고 따뜻한 훈육마저 망설이게 하기 때문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rt1lm8rt1lm8rt1l.png

정으로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면, 교사의 손길이 한 아이의 빛깔에 온전히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검은 눈동자의 위력에 휩쓸리지 않고 당당히 자리를 지켜낸 우리들이 있기에, 우리의 보육은 그 어떤 직업보다 숭고하고 위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보육실의 CCTV에서 무엇을 보려 하는가? 단순히 사고의 순간을 포착할 차가운 증거만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경혜공주와 이름 없는 스승들이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지켜냈던 생명을 향한 정직한 신뢰를 보려 하는가. 진정한 보육은 아이들의 고유한 빛깔이 멍들지 않도록 한 명 한 명 깊게 눈맞춤 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진정한 보육의 정답이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감시의 렌즈가 아니라, 아이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품어주는 따뜻한 ‘정책의 큰 눈’이다.

작가의 이전글하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