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베기전 '하얀지도'를 함께 닦아내는 보육의 본질
아이들이 둘러앉은 책상 위로 하얀 지도가 그려진다. 찰나의 정적. 라운딩하던 내 발길이 그 자리에서 멈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아이의 당혹스러운 얼굴과 교사의 굳어진 표정이 만드는 팽팽한 기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교사의 입술 끝에 머문다. 마음이 급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교사는 "괜찮아, 우리 같이 닦자"라며 온기를 먼저 건네지만, 상황에 따라 그 온도는 달라지기도 한다.
보육 현장은 늘 폭풍 전야 같다. 아침부터 울고불고 매달리는 아이, 친구를 밀치거나 넘어지는 사고들 사이에서 온종일 복대기다 보면 교사의 인내심도 벼랑 끝에 서기 마련이다. 그날의 분위기와 교사의 컨디션에 따라,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실수가 가끔은 폭탄처럼 터져 보육실 전체를 차갑게 가라앉게 한다
.
“왜 쏟았어? 쏟지 말고 먹으랬지!”
하는 다그침은 사실 아이를 향한 미움이라기보다, 한계에 다다른 교사의 지친 비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의 오랜 경험은 그 팽팽한 기류 끝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미리 내다본다. 교사의 언어가 아이의 마음을 베기 전에, 나는 이 서늘한 기운을 따뜻한 향기로 순환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조바심이 인다. 일이 터진 후 수습하기보다, 터지기 전 분위기를 선제적으로 바꾸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장이라고 해서 불쑥 문을 열 수는 없다. 교사의 권위와 수업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겁먹은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 사이에서 잠시 갈등한다. 보육실 출입문 손잡이에 올려진 손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복도의 공기를 가슴 깊이 끌어들이고 천천히 내쉰다. 교사가 감정이 폭발하여 모두에게 상처로 남기 전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기척을 내며 보육실 안으로 발걸음을 들인다. 성큼성큼 다가가는 위협적인 걸음이 아니라, 타오르는 촛불을 들고 가듯 조심스러운 개입이다.
잔뜩 긴장해 있는 민수를 품으로 살짝 끌어안자 가느다란 떨림이 내 몸으로 전해진다. 나는 민수를 품에 안은 채 교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건넨다.
“선생님, 많이 바쁘시죠? 민수가 우유로 지도를 그렸군요. 이쪽은 제가 민수랑 같이 정리할게요.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 데리고 다음 활동을 계속 진행하시면 됩니다.”
교사의 당혹감을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무언의 배려이자, 보육실의 공기를 온화하게 환기하는 마법 같은 한마디다. 내 품에 얼굴을 묻은 민수와 다시 눈높이를 맞춘다.
“민수야, 괜찮아. 원장 선생님도 어릴 때 우유 진짜 많이 쏟았었어. 이건 닦으면 돼, 그치?”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하던 아이의 얼굴에서 그제야 안도의 눈물 한 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린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괜찮아, 걸레가 어디 있지?” 묻자, 아이는 금세 얼굴이 밝아지며 냉큼 걸레를 가지고 온다. 비록 서툰 손길이지만, 쏟은 우유를 함께 닦아내는 민수의 손길에 리듬감이 인다.
아이들에게 실수란 잘못이 아니라
세상을 배우는 '실습'이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전구가 빛을 내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냈을 뿐이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며 말했듯, 아이들도 쏟아진 우유를 통해 세상을 익히는 중이다. 실수를 실패가 아닌 배움의 과정으로 인정해 줄 때, 아이의 자존감에는 비로소 환하게 불이 켜진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잘못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교육의 본질이 있다. 꾸중으로 아이를 위축시키면 문제를 회피하게 되지만, 함께 닦아내며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하면 그것이 곧 아이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길이 된다.
쏟아진 우유를 다 정리하고 손을 씻는 민수에게 교사가 다가와 수건을 건네준다. 교사 또한 오늘 민수가 그린 하얀 지도 위에서 누군가를 탓하는 법 대신, 아이의 마음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법을 배웠으리라 믿는다.
퇴근길, 노을빛에 마음이 붉게 물든다. 지친 교사의 마음도 보듬고 아이의 작아진 어깨도 펴주어야 하는 원장의 자리. 오늘 책상 위의 우유 지도를 함께 닦아냈듯, 내일은 교사의 마음 한구석에 눌어붙은 감정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조용히 녹여내야겠다.
(맺음말)
여러분의 일상 속에는 오늘, 어떤 하얀 지도가 그려졌나요?
아이의 실수를 배움의 과정으로 바꾸어 준 여러분의 따뚯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