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단잠

아이의 시간을 빼앗아 어른의 안락을 사려 하는 이들에게

by 아이조아임기순

“원장님, 큰일 났어요! 어떡하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오후, 교사가 당혹감이 역력한 얼굴로 원장실로 들어왔다. 절대 낮잠을 재우지 말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음에도, 아이가 오늘도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며 걱정을 한다.


교사는 아이의 쏟아지는 잠을 달아나게 하려고 끊임없이 말을 붙이고, 손에 좋아하는 놀잇감을 쥐여주며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스르륵 눈이 감기다가도 교사가 건네는 교구에 잠시 눈을 번쩍 떴지만, 금세 눈꺼풀은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얼른 다른 교구를 제시해 보지만 잠시뿐이었다. 새 교구를 건네받은 아이의 손은 어느새 힘없이 풀렸고, 교구는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교사는 어머니의 당부가 떠올라 다시 아이를 안고 흔들며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교사의 품으로 파고들며 끝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원장님, 저 정말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애썼거든요. 쏟아지는 잠 앞에서 버티다 제 품에 안겨오는 아이를 보니, 안쓰럽고 미안해서 더는 못 깨우겠더라고요.”


자신의 노력을 알아달라는 호소이자, 아이를 향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나는 왜 교사가 이토록 불안해하며 내게 해명하려 하는지 그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작년에도 낮잠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아이가 밤에 늦게 자니 엄마의 개인 시간이 없고, 일을 하러 다닐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엄마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우리는 아이의 기본 욕구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아이의 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갈등과 미안함은 반복되었고, 결국 그 어머니는 낮잠을 재우지 않는 어린이집을 찾았다며 우리 곁을 떠나갔다.


교사들에게 아이의 퇴소는 단순히 인원 한 명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어린이집 이미지에 피해를 주었다는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는다고 한다.


“선생님, 너무 걱정 말아요.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일해야 하는지…. 제가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낙담한 교사를 위로하며 나는 먼저 현관으로 향했다. 어떤 말로 어머니의 생각을 돌릴 수 있을지, 아이의 낮잠은 기본 욕구이자 권리라는 것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전할지 마음을 되뇌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신발장 앞에 서 있는 내내 현관 너머로 들려올 발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한참 후, 땅거미가 짙게 깔릴 무렵 어머니가 도착했다. 나는 미리 가다듬은 마음으로 정중히 대화를 청했다. “어머니, 오늘도 고생 많으셨지요? 잠시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 좀 하실까요?”

순간 어머니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자마자 “너 오늘도 또 잤어?”라며 아이를 노려보더니, 바쁘다는 짧은 인사말만 남긴 채 돌아섰다. 아이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나가는 등 뒤로 꾸지람이 날아들었다. “자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잤어! 오늘 밤엔 도대체 몇 시에 잘 거니!”


끌려가듯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내가 준비했던 따뜻한 조언들은 갈 곳을 잃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 못 한 이야기들이 마음속에서 꿈틀댔다. 전화를 걸려니 바쁘다던 엄마의 화를 더 돋울까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나 또한 사람인지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날 선 목소리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속내도 있었다.


자칫 서둘러 말을 꺼냈다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낼까 저어하는 마음이 앞섰다. 깊은 고민 끝에, 차분히 문자로 장문의 글을 써 내려갔다. 어머니의 고단함을 먼저 다독이고, 낮잠은 아이의 당연한 권리이니 함께 답을 찾아가자는 진심을 담았다.


어느덧 마당에 어둠이 깊어졌다. 나는 어깨가 축 처진 교사의 팔짱을 끼고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선생님, 일단 제가 어머니께 정성을 담아 문자를 보냈으니 어머니 마음도 달라지실 거예요.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결국 이해해 주시겠지요.


이 일은 선생님만의 문제도, 그 아이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보육 현장에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고 모든 아이의 일이니 함께 풀어가요.”


나는 당당하게 교사를 다독였지만, 헤어지고 나니 알 수 없는 고독이 밀려왔다. 문자를 보낸 뒤 어머니의 반응이 못내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긍정적인 답신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번처럼 원을 떠나버리는 건 아닐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검은 휴대폰 액정 속에는 답신을 기다리는 초라한 내 얼굴만 비치고 있었다. 아이와 교사를 지켜주겠노라 큰소리쳐놓고, 정작 내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원장인 나의 비겁함이라니.


하기야 문자 한 통으로 끝날 일이었다면 이토록 걱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밤 기어이 종이 위에 손편지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차가운 액정 속 글자보다, 한 자 한 자 눌러쓴 손편지가 더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아이에게 낮잠은 단순히 졸음을 쫓는 시간이 아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몸을 키워가는 영양소를 생성하는 시간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약을 먹는 시간'이다. 어른들의 일정에 맞추려고 아이의 생체리듬을 저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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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의 편리에 맞추려 만들어진 벽이 가끔 우리를 답답하게 하지만, 우리는 그 벽을 어루만지며 조심히 허물어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의 시간을 빼앗아 어른들의 안락을 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깊어가는 밤, 마음속으로 나직이 물어본다. 오늘 밤 그 아이는 꿈속에서라도, 어른들이 빼앗아 간 그 단잠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