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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카시

#디카시

by 벼리영

고목의 내력


마르지 않는 꽃병이지

나를 찾지 않아도 너희를 품고 사는


언제나 파릇파릇하게 빛나기를


싱싱한 하늘처럼

그저 그것만


_벼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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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구절초



그 산기슭 구절초가 하얗게 폈던 계절

아버진 구름다리 건너 가 버리셨다


엄마는

밀랍 인형처럼 말문을 닫으셨지


스치는 바람에도 듬성듬성 빠져버린

쉰다섯 여인네의 공그르던 세월이


벼리고 벼린 무쇠 가슴

녹여내고 있었지


고통과 힘겨루다

이겨낸 당신여서

거칠고 숱한 상처

강했던 당신이어서


밟혀도 다시 일어선 들꽃인 줄 알았다


때론 여린 가슴이 숨 쉬고 있는 것을,

소녀 시절, 지난 삶을 그리워도 했단 것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상처투성 가슴도


누군가의 위로가 그립고 그리웠을,

당신도 엄마 품이 그립고 그리웠을,


엄마의,


아픔을 만진다


상처가 만져진다


당신은 여든여섯 나이테를 껴안고


할머니 무덤에서 눈물로 손질하다


아픈 딸, 발 주무르며

그렁그렁 우신다


내 죽음 목전인 날, 구절초 피는 계절 보고픔에 목이 메어 당신을 손질할 때


그 곁에 묻힐 수 있을까


엄마 닮은 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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