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희생자, 환상의 피해자, 죄의식에 갇힌 나.
현실(reality)은 얼마나 리얼(Real)할까?
_ 삐딱하게 보기
현실은 얼마나 단단할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전쟁이 일어나면 그 단단해 보이던 현실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덮쳤을 때처럼.
내가 알고 있던 현실이 갑자기 무너질 때, 현실은 생각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깨달음이 들 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 기회가 생긴다.
K-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그 드라마에서 믿었고 의지 했던 절친이
알고 보니 주인공의 모든 것을 야금야금 빼앗은 배신자 였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목격한 순간
그만 그녀는 그 절친과 바람피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비운에 처한다
그런데 다행이도 주인공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
두번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받는다.
그리고
배신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며 용기 있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는다.
복수가 가능했던 이유는
주인공이 자신의 배신자들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데 있다.
주인공 자신의 시각이 변화하자
타인에 휘둘리는 삶이 스스로 당당한 주체적 삶으로 바뀐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에게
내가 사는 현실은
내가 처한 환상의 프레임에서 바라본 것이 불과하다.
타인에 의지하려는 환상의 프레임을 바꾸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타임 슬립의 기능은
환상의 프레임 바꿔보기라 하면 좋지 않을까?
지젝의 말처럼 일종의 시차(parallax view)를 노린 것이다.
각도를 다르게 보는 시차는 삐딱하게 보기의 다른 이름이다.
재미있게도 '시차'나'삐딱하게 보기'나
슬라보예 지젝이 쓴 책들의 제목이다.
지젝의 말처럼 현실(reality)은 '리얼( the Real)'이 아니다.
이 말은 저주일까, 축복일까?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에는 축복이다.
제 2의 인생을 살 기회를 주므로,
프레임을 바꾸는 기회
바로 시각의 반전이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매력포인트다.
프레임 전환을
기독교에서는 '회심(메타노이아)'이라 부르고
불교에서는'깨달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인공은 친구와 남편의 배신을 체험하고
두번째 삶을 선물받자
그들에 의지하려 했던
자기 용망의 불편한 진실과 용감하게 대면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시각이 놀랍도록 바뀐다.
이때 기존 현실과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첫 번째 삶에서도 다르게 살 잠재성이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자기가 믿던 현실을 완고 하게 지키려는 고집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현실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로 부터의 초월은 망상이며 도피다.
우리가 살 곳은 오로지 이현실이다.
지젝의 말대로 현실 바깥에
'리얼'이 았는 것은 아니다.
리얼은 언제나 현실 안에 있다.
우리 현실에는 늘 틈새가 있다.
삐딱하게 볼 때
현실에서 불합리함이 보인다.
믿었던 절친이 배신자였던 것 처럼
현실 속 틈의 방식으로 '리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