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여행

마늘, 문명, 관조, 행복

by 시월의 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단양이다. 단양 여행이라면 단양팔경이나 패러글라이딩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우리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나와 아내의 목적은 단 하나! 물놀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 아니다. 계곡물은 이미 너무 추워서 즐길 수 없다. 여름 내내 아내가 계곡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아우성을 쳤지만 성수기의 인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어르고 달래서 미뤘다. 그렇게 결국 계곡을 가지 못하고 여름이 지났다. 그러다 리조트 내에 워터파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조금은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거란 생각에 장소를 물색했다. 전국에 워터파크를 운영하는 리조트가 몇 개가 있다. 그 중에 사람이 적을 만한 장소를 고심하다 단양으로 정했다.


그렇게 때늦은 물놀이를 꿈꾸며 단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물놀이는 실패했다.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초가을이지만 꽤 더운 날씨에 주말인 것까지 겹쳐서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장소에 많은 사람이 있으니, 명동거리의 사람들이 제 갈 길 가지 못하고 인파의 방향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유유자적한 물놀이를 기대했던 마음에 금이 갔다.


물놀이의 실패는 허탈했지만 이번 단양여행은 그 감정을 잊을 만큼 좋았다.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대로 즐겼다. 우선 먹거리에 대해 얘기를 먼저 하자면, 단양은 마늘이 유명하다. 단양구경시장 거리를 가면 온통 마늘 천지다. 저기도 마늘, 여기도 마늘. 마늘을 이용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단양 마늘이 왜 그렇게 유명한가 하면, 단양 지방은 지리적으로 석회암 지대와 알칼리성 토양, 황토밭이 많아 마늘 재배에 적합하다. 이런 토양 덕에 마늘의 조직은 단단해지고 저장성은 높아진다. 또, 단양은 내륙의 중산간지에 위치해 일교차가 크고, 기후가 비교적 서늘한 편이다. 이런 한지에서 생산되는 마늘은 단단하고 맛이 강하며 알린(Alliin) 함유량도 높은 특징을 갖는다. 이런 지리적, 기후적 조건으로 단양 마늘은 그 맛을 자랑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맛과 효능이 뛰어난 단양 마늘을 제대로 즐겼다. 마늘떡갈비, 흑마늘소금빵, 마늘김밥. 사실, 마늘순댓국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건 다음을 기약했다. 이번 여행에서 먹은 것 중에 흑마늘소금빵이 특히 뇌리에 남았다. 여태 먹어본 소금빵 중에 단연 최고였다. 흑마늘이어서 그런지 풍미가 더 느껴졌다. 흑마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흑마늘이라는 품종이 있는 게 아니라, 보통의 마늘을 보온 밥솥에 넣고 10~15일간 숙성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흑마늘은 젤리 같은 식감을 가지고, 영양이 더 풍부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단양 여행을 그토록 좋아했던 까닭은 먹거리도 있지만 자연도 한몫했다. 단양은 예부터 수려한 경관으로 문인과 화가에게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 특히, 단양팔경이라 하여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명승지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현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도담삼봉과 석문이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한가운데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곳인데, 조선의 개국공신이라 알려진 정도전이 사랑한 곳이라 한다. 가까이서 보니 과연 정도전이 그토록 사랑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담삼봉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싶어서 거닐던 중 어떤 지점에서 문뜩 멈춰 섰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연유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다. 유유자적 흐르는 남한강과 도담삼봉 뒤로 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게 아닌가. 그 아파트는 분명 읍내를 산책할 때 봤던 고지대에 있던 아파트였다. 그때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잘 지었구나 생각했는데, 도담삼봉에서 바라보니 자연경관을 헤치는 건물이었다. 그 아파트만 없었다면 정도전이 느꼈던 그 감정을 온전히 느꼈을 것 같다. 산과 아파트의 부조화를 바라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현대 사람들은 자연보호를 외치며 플라스틱 빨대와 같은 작은 부분까지 통제한다. 그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정작 자연을 헤치는 일에는 눈감고 있다. 갯벌을 메워 거주지, 경작지 등으로 사용하는 일, 스키나 골프와 같은 취미 활동을 위해 산을 깎는 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일 등. 이런 것들을 보면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건 자연을 망가뜨리는 원인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는 자연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 재활용을 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면서 자연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리화한다.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인가. 결국, 자연을 보호하려면 문명의 이기를 줄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양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는 중에 어릴 때는 '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국내 여행을 꽤 다녔다. 부모님은 그때마다 자연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나에게 아름다움을 종용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운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고 왜 아름답다고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히려 구경이 아니라 뛰어놀고 먹고, 게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그때 당시의 부모님 나이쯤 되니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관조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어릴 때는 잘 모르는 관조의 능력이 생기는 건 아마 현실이 힘들어 자연으로 도피하고 싶어서 일지 모른다. 자연을 음미하는 그 순간만큼은 계속해서 뇌를 굴리는 일을 멈추고 멍하니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선 책임져야 할 일도, 신경 써야 할 일도 많다. 현대 사회는 잠시의 쉼도 잘 허락하지 않는다. 쉬면 도태된다고 세뇌시킨다. 이에 따라 시간을 분초단위로 쪼개가며 산다. 그러다가 지치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나를 아는 이 없는 곳으로 떠나 해방감을 느끼길 원한다. 자연은 그런 나를 품어준다. 그렇게 현실에 지친 어른은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나는 보통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땐 바닷가로 향한다. 드넓은 바다와 그 위로 스러지는 태양, 붉게 물든 하늘과 파도소리에 몸을 맡긴 채 마음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런데 단양의 풍경을 보면서 바닷가를 갔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바다와 같이 탁 트인 것도 아니고 파도소리와 같은 백색소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녹음이 짙은 산과 초록의 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냄새와 조명이 아늑하게 깔린 거리, 선선한 바람은 마음을 몽글하게 만들었다. 단양의 길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꼈다. 아내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예전에는 행복이 대단한 성취와 부유한 삶에서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이렇게 걷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 소소함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동의한다. 나도 예전에는 부유함과 야망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유함과 야망을 좇는 삶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산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렵게 그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뒤따르는 불안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행복은 오는 게 아니라 찾는 것임을 알게 됐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의 행복, 햇살이 반짝이는 푸른 하늘을 볼 때의 행복,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행복,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때의 행복. 사실 이런 행복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임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뒤늦게 행복을 발견한다. 그래서일까. 행복은 과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미래가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 위안한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 행복을 가져다 줄 미래의 특정 시점을 알지 못한 채, 과거의 행복에 대한 회상과 미래의 행복에 대한 염원을 되풀이하며 현재에서 아등거린다.

행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행복은 현재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다. 삶이 불행한 게 아니라 단지 행복을 찾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양 여정은 늘 곁에 숨어 있던 행복을 찾은 순간의 집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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