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의를 참았을까

도시정의

by 밝은 마음

나는 한때 불이익에 더 민감한 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동안 불의는 참고 불이익은 못 참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겪는 모습을 봐도 그게 내 일이 아니면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내 몫이 줄어들거나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면 쉽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의감이라기보다 계산에 가까운 태도였다. 세상이 공정한지 아닌지보다 내가 손해 보는지가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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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순수함, 그리고 철없던 자신감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20대 나는 나름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세상은 옳고 그른 일로 나뉜다고 믿었고, 부당한 일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정의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꺼냈지만, 그 순수함이 때로는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앞서 나가는 철없는 자신감도 분명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의 나는, 불의를 외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30대와 40대, 현실이 기준을 바꿔 놓다

30대와 40대를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책임이 생기고 현실을 이해하게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어느새 불의를 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신 불이익에는 훨씬 민감해졌다. 자본주의 속성상 손해를 보지 않는 일이 중요해졌고 내 몫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기준도 자연스럽게 현실 쪽으로 기울어졌다.


나이가 들자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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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이가 조금 더 들면서 생각이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참지 못하던 불이익을 이제는 어느 정도 넘길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들이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겪는 모습을 보면 괜히 발걸음이 멈췄다. 그 일이 내 일이 아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불이익을 계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도시는 점점 메마른 곳이 된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한 일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가 건강해진다.


결국 불이익과 불의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 종이를 어느 쪽으로 넘기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태도도 도시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순수했던 20대를 지나 현실적인 30~40대를 거쳤고, 이제는 다시 조금 다른 질문을 하고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손해에는 조금 무뎌지고, 부당함에는 다시 예민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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