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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세문 Jun 12. 2023

달리기를 하며 인생을 공부하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를 하며 느낀 달리기와 인생의 3가지 공통점

2023년 5월 28일 (일)


나는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후반, 체력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10km를 고작 2번 뛴 게 전부.  당시 이랜드에 다니던 친한 친구 재현이의 권유로 뉴발란스 10km 마라톤을 2년 연속 뛰었었다. 한참 야근의 향연 속에서 마라톤의 일자는 빠르게 다가왔고, 올림픽 공원에서 딱 한 번씩 연습을 하고 무슨 깡으로 뛰었나 모르겠다. 그땐 20대라는 젊음에 기대어 10km를 각각 54분, 52분이라는 비교적 좋은 기록으로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단순 기록을 위한 도전이 끝나며 약 5년여동안 나와 달리기는 담을 쌓다시피 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제네바에서 맞은 2021년. 코로나에 지치고, 살이 부쩍 찐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절박함에 러닝앱을 따운 받고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서 뛰기를 재개하였다. 재개라고 말하기에 쑥스러웠지만, 일단 뛰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매었다. 상당히 여러 날을 뛰었었던 것 같은데,  5km라는 거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심한 기복과 함께 Runner's High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 달리기라는 운동은 내 인생에서 지웠다. 그리고 수영이라는 즐거운 운동으로 pivot하였다. (수영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다뤄 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2023년 5월. 뉴욕에 정착한 나는 친한 형인 두선이형이 매주 일요일마다 센트럴 파크를 뛴다는 사실을 듣고, 같이 뛰기로 결심한다. 5월 28일 일요일, 설렘 반, 두려움 반을 안고 뉴욕에서의 첫 러닝을 시작한다. 61번가 East에서 뛰기 시작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쭈욱 달리는 코스였다. 매번 '걷기'를 통해 센트럴 파크를 접하곤 했는데, '달리기'를 통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공원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 깨달은 것은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달리기보다는 파워워킹이나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여기는 십중팔구 달린다. 나도 달리면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나 라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작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라는 책도 생각이 나면서..


결국 이날은 내가 달리기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총 10km를 뛰었는데, 마지막에 멈추지 않았으면 최소 5km는 더 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전의 나와, 2년 전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왜 달랐을까? 나름의 가설을 세워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네 인생과 연결시켜 보았다.

센트럴 파크의 내가 가장 애정하는 도로

1. 가시권 내의 목표

요즘 센트럴 파크를 보면, 가장 남쪽 57번가 즈음하여 100층 이상의 아주 얇은 여러 건물들이 있다. (유현준 교수의 말을 빌리면 다른 빌딩의 공중권을 사서 위로 올렸다고 한다) 뛰어야 하는 목표의 약 반절 정도가 지나면서 (그리고 지침이 시작이 될 때 즈음) 얼핏 얼핏 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때부터는 그 건물들의 가시권 내에서 뛰어가게 된다. 사실상 끝나는 지점에 있는 거나 다름 없는, 목적지와 다름 없는 건물이 가시권 앞에서 보이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전혀 목표점이 보이지 않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낀 듯 하다. 업무를 함에 있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장기적 목표도 중요하지만, 중간 중간 손에 닿을 수 있는 milestone을 멀지 않은 곳에 두고 항상 바라보면 힘든 좌절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헤쳐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처럼, 가시권 내에 보이는 목표가 나의 마인드 컨트롤을 돕지 않았던 것 아닐까 싶다.   

이 건물이 특별히 나에게는 가시권으 목표로 lock in 되었다


2. 같이 뛰는 파트너

마라톤을 보면 페이스메이커라는 게 있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까 의문이 많았는데, 옆에 비슷한 레벨에서 같이 뛰는 두선이 형과 보조를 맞춰서 뛰니 덜 힘들었던 것 아닐까 싶다. 때로는 형이 약간 앞서 나를 리드해주고, 때로는 내가 살짝 앞서 리드를 하며 보조를 맞춰 뛰고, 발의 움직임을 맞춰 리듬을 synch하니 주행이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혼자 뛸 때의 지루함도 보조를 맞추기 위한 여러 보이지 않는 행동들을 통하여 잊을 수 있었고. 뉴욕에서 팀원을 이끌고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 상황과 거시적 관점에서 달리기의 파트너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내가 급하다는 이유로 너무 앞서 나가서 따라오지 못하면 어쩌지에 대한 고민, 내가 일만 맡기고 지속적인 check in을 통한 손발을 맞추기 위한 노력 등 내가 일을 함에 있어서 적용하던 practice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같은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동료와 보조를 잘 맞추고 믿음 (trust)에 기반하여 이끌어주고 따라가는 관계가 중요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3. 어려움 속 평정심 유지

센트럴파크 남쪽에서 쭈욱 올라가다보면, 북쪽 끝에 마의 구간이 하나 있다. 족히 500m 정도되는 오르막이다. 오르막이라는 역풍을 지속적으로 맞으니, 나의 페이스는 하염없이 무너지기를 반복하였다. 평지 또는 내리막에서 유지하던 일정한 호흡 (2번 내쉬고, 2번 들이 마시는)은 여지없이 불안정해졌으며, 다리는 무거워졌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려 하니 더더욱 호흡은 꼬이기 시작하였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속도를 줄이며 호흡을 안정화 시켜야만 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속도를 줄이고 시선은 목표, 뇌는 호흡과 다리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니, 오르막에서의 호흡이 안정화 되었고, 크게 무리 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나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종종 평정심을 잊는 경우가 있다. 평상시에 합리적인 사고를 하다가도 갑작스런 힘든 순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뇌가 백지 상태가 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하고, 뒷짐을 지고 천천히 산책을 하든,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든, 나만의 형태로 잠시 '쉼표'를 찍으며 근본을 생각하며 제 궤도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달리기할때 언덕에서 속도를 줄여 리듬을 되찾은 것과 같이.


결과론적으로 나는 크게 힘이 들지 않게 10km 완주에 성공하였다. 물론, beginner의 luck일 수도 있고, 두선이형이 선물로 준 러닝화의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해온 수영을 통한 폐활량의 증가가 가져온 결과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조건들 속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runner's high'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10km를 뛰어낸 나에게 조그마한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이러한 작은 성공을 하나하나 쌓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달리기에 대한 소회를 마친다.


결국 센트럴 파크를 한바퀴 돌았다 (약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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