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성징,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둘 워킹맘의 자아정체성 찾아 삼만리(1)

by 서사임당

나는 스물 일곱에 결혼을 했고,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아이 둘을 낳았고, 서른 다섯이 된 지금은 그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둘째 아이 두 돌전에 복직을 해서 지금 6살이 되었으니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게 된지도 어느덧 4년차이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서는 인근에 살고 계시지만 정말 법정전염병과 같은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손자 양육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출산과 육아라는 큰 산을 넘으며 나는 많이 단단해졌다. 늘 남편에게 의지하며 뒤에 머무르고 싶었는데 항상 내가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가정의 주체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여성의 제 3차 성징인 것인가?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내게 없었던 새로운 기능이 분기별로 업데이트 되어졌다. 예전보다 내가 해야하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엄마로서 내 역할이 너무 커지다보니 그 속에 그 자체로서의 나는 계속 작아지는 것 같아 시간이 갈수록 삶의 갈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엄마가 되니 또 내 아이에겐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내 삶이 예전과 달라졌다하여 직장에서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생기는 것은 끔직이도 싫고, 그냥 나 그 자체로서 온전히 살고도 싶고, 또 가끔은 그냥 사랑받는 여자이고도 싶고, 복잡해지는 삶과 같이 머릿 속도 엉망징창이었다. 머릿 속보다 몸은 더 엉망이었다. 만성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역시, 믹스커피였다. 아침 출근 직후엔 그래도 아메리카노였고, 공강이 오면 자연스럽게 믹스를 찾아 카페인 충전을 해댔고 달콤한 것과 짭짤한 것을 번갈아 먹으며 한 번씩 끓어오르는 짜증을 풀었다. 그 시기 카페인과 알코올은 내 삶의 위로이자 안식이었다. 삶이 이렇게 피곤한데, 오늘 하루도 이렇게 치열한데 우리 오늘도 참 수고했으니 외식하거나 시켜먹어야 할까봐 하는 날들은 늘어갔고 한 사람은 집을 치우고 설거지, 빨래를 또 한 사람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면 자정이 다 되어서야 남편과 나란히 앉게 된다. 그제서야 좋아하는 예능 프로를 찾아 보면서 한 캔씩 마시는 맥주는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격려와 응원이라 생각한 그런 날들이 쌓여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 그렇게 3년여 삶이 똑같았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우리에겐 늘 시간이 부족하고 늘 피곤했다. 피곤하니 예민하고 매사 신경과민이었다. 늦게 잠드는 아이들로 인해 하루 24시간 중에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모두가 잠든 후의 조용한 새벽뿐이었다. 하루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시니 새벽에도 말똥말똥했고 새벽에 책을 읽어보니 너무 평화로운 것이 때마침 구입한 마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어릴 때 상상했던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내가 그린 삶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벽만 이렇게 내가 원하는대로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매일 아침은 또 전쟁이었고 지옥이었으므로, 그래도 나는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심야독서에 빠져들었다. (본래는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매일 1권의 책을 읽고 생각 나누기를 하고 싶었는데 되려 아이들 수면 시간을 늦추고 내 삶의 피로도를 높여서 엄마의 책읽기라는 이름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재웠다.) 그러다 좋은 책들을 여러 권 만났는데 한결같이 변화가 유일한 상수라고들 말했다. 책을 읽는 목적 또한 변화와 성장이었으므로 변화하지 않으면 나는 그냥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의 인생을 바꾸는 책, 마녀 체력.

운동을 해야지. 좋은 몸, 건강한 체력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기에 나는 이 책을 만난 여름 이후 들썩거리던 엉덩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고, 그리고 지금은 운동과 독서, 외국어 공부까지 병행하며 나로서의 시간을 늘려가며 분명 그 때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좋은 글은 쉽고 재밌어야 하고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변화와 시도를 하게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모든 생각을 만족하게 하는 책이다. 모든 엄마들에게 아니 여성들에게 추천한다. 이영미 작가님의 마녀체력)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세상에 정답은 없다. 할 일은 지금 내가 처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하나하나 실용적으로 찾아가며 앞서가는 사람의 장점이나 경험을 부분적으로 참고하는 것이다.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경계하며, 더디더라도 분명히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담대한 낙관주의를 갖고서 말이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읽고
2019.7.9. 나의 메모장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영어회화 강의를 들으며 걷고 근력운동을 하고 예약된 치과 치료를 한 후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점심을 챙겨먹었다. 곧 있을 오후 일정을 앞두고 만화영화에 심취한 아이들 옆에서 그 변화를 기록을 끄적여본다.



나의 변화가 곧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 수 있기를 바라며, 훗날 젊었던 엄마의 고군분투 스스로를 지키고 바로 세우려던 노력이 얼마나 작은 사소한 것이고 또 그것이 꾸준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이며 그 영향은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차분히 써내려 가야겠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