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둘 워킹맘의 자아정체성 찾아 삼만리 (2) 걷기의 시작
우선 인생을 바꾸는 책을 만나는 일은 대단한 일이었다. 좋은 느낌과 변화를 가져오는 잘 읽어지는 편안하고 쉬운 책을 발견한 기분 좋은 경험
그리고 또 하나의 우연같은 필연은 같은 연구실 내 앞에 앉아 있는 20대 동료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년 9월에서 10월로 가는 이른 가을이었다. 추석이 다가오니 명절휴가비가 월급에 보태어져 나왔고, 그녀는 걸음을 측정하는 핏빗(fit bit)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신문물을 사는데 그 중 일부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일 후 그녀의 손목에는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까만 시계같은 것이 채워져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와 부러운 활력으로 넘쳐났다. 핏빗,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호기심이 생겼고, 힘들게 걷는 것이 왜 저리도 즐거워보일까 궁금했다. 만사 귀찮아 퇴근 후엔 단짠 콤보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그녀는 그해 가을 1일 1만보 100일 챌린지를 시작했다.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곧 내게 설렘이었고 매번 세우고 지키지 못하기를 반복했던 결심을 대결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도전이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15만원이 넘는 핏빗을 투자할만한 여력이 없어 가성비가 높은 미밴드를 구입했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너만 할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만보를 채우려 걷고 뛰고 춤을 추고 난리였다.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단지 기계에 10000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 그것을 연속적으로 해내고 싶을 뿐이었다. 걸으면 살이 빠진다고 했는데 과연 걷는다고 살이 빠질까? 반신반의하면서 그래도 걸어보자 했다. 살은 안빠져도 나의 도전의 기록은 쌓일테니까 나도 100일을 걸으면 뭐든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가볍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의욕적인 떨림으로 시작했다.
"just give it a try"
10월 말, 그렇게 나는 걷기 시작했다.
다시 세운 작은 목표는 하루 1만보이다. 학교에 걷기 열품을 가져온 보라의 fit bit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저렴한 미밴드를 샀다. 배송 온 첫날 1358걸음을 시작으로 (엄청 좌절하고) 이번주부터 나도 열심히 걷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주변에서 매월 결심을 왜 이렇게 자주 하냐고 묻는데 그건 바로 몇 일 못가서 결심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10월말 나흘동안 9시쯤 시계에서 목표 달성 알람이 울렸고 뿌듯함을 느꼈다. 수고했어 오늘도 하면서 박수 쳐주고 싶은 매일 밤 나와 함께 걸어주는 남자, 지원(아들)은 고맙고 든든하다. 봄 되면 우리 둘이 자전거 타자. 윤서 데리고 먼저 귀가하여 해도 해도 끝없는 가사 노동에 힘쓴 여보(남편)에게도 감사의 말과 함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며, 곧 같이 걷자. 오빠도.
- 2019년 10월 31일 일기에서
이 글을 쓰는 현재 2020년 7월 28일. 겨울 방학을 했던 2019년 12월 28일을 기준으로 연속 214일이 지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웠던 겨울에서 봄으로 오던 시간에 나를 지켜준 것은 묵묵히 걸었던 두 다리였다. 봄에 알게 된 챌린져스라는 앱에 만보 걷기 도전을 통해 3800원의 상금을 받았고, 친구의 추천으로 다운로드한 AIA vitality라는 앱에서는 3,000원 통신요금 할인(총 33,000원)을 11회나 받았고 앞으로도 몇 번의 더 큰 리워드를 받을 예정이다. 처음 걷기 시작한 때와 비교해 10kg에 이르는 역대급 체중감량을 했다.(체지방 감량 수치는 더욱 어마하다. 최근에는 근육량이 많이 올라 8kg 정도 감량 수준이나 더 건강하게 보인다.)
그러나 더워지던 6월쯤 나도 모르게 잘 묶어두었던 마음이 풀렸다. 통신요금 할인에 눈이 멀어 잠시 미밴드의 걸음수 측정이 앱에 반영되지 않아 화가 났다. 여러 가자 도전을 병행하니 의지 과부화로 더위를 식혀줄 심야 맥주행은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약 1/2개월 간의 방황의 시간동안 마음껏 쉬고 먹고 살찌며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만보 도전을 하겠다는 지원에게 잠시 빌려 준 미밴드가 분실되어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걸음을 채우던 날들은 더 길어지자 어깨 한 쪽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도전이 지겨워질 쯤 동료들 사이에서 운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그간 코로나로 영업 중단했던 헬스며 발레며 필라테스를 하나 둘 다시 가기 시작했고 그 중 눈에 띄게 근육을 만들어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나, 그리하여 7월부터 다시 마음을 단단히 하고 미라클 모닝을을 꿈꾸며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7월의 정근 수당을 바탕으로 큰 마음을 먹고 나의 만보 도전을 도와줄 애플워치도 구입하였다. 몇 개월 지속해서 착용하다보니 미밴드와 애플워치 같은 물질 기계에 내가 예속되는 듯한 느낌도 내가 감시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도전을 달성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알아서 축하해주는 이들(기계)의 알림은 진심으로 반갑고 또 고마웠다. 더불어 걷기와 운동 그 자체의 즐거움을 높여줄 무선 이어폰까지 구입했다. 보통 이런 것을 투자라고 한다. 처음에 3만원 못하는 미밴드를 살 때도 주저했던 내가 걷는 것이 좋아져 변화하는 내 모습이 대견해 스스로 더 잘 걷기 위해 이렇게 비싼 것들을 겁 없이 구매했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소비,
나를 위한 투자
그것은 계속 이어졌고 나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걸어서 10,000보를 채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는 요즘 아침 일찍 뛰고 자전거를 타고 근력 운동까지 추가하여 온 몸 가득 흠뻑 땀 흘리고 있다.
처음에 숫자에 연연해 매일 불편했던 마음도 어느새 오후가 되면 자연스레 10,000보가 채워져 그렇게 걷는 것은 나의 생활이자 삶이 되었다. 그리고 꾸준히 걷는 것은 35,000원 가량의 금전적인 리워드 외에도 내게 훨씬 더 많은 동기부여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나를 찾는 그 첫 번째 시작은 이렇게 걷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무런 도구 없이 큰 금액 들이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나를 위한 도전은 바로 걷기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 비록 만보를 채우지 않을지라도 오늘 천천히 걸어보기를 바란다.
걷는 것 말고 나는 또 어떤 도전을 했을까?
제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