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엄마, 글 쓰기 시작하다.

해야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자아정체성 찾아 삼만리(3)

by 서사임당

변화는 유일한 상수다.


그동안 스스로 엄마라는 틀에 갇혀 있던 나는 그런 나를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데미안 이라는 책 속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처럼,


과연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1. 책을 읽다.




화가 나고 답답하면 책을 읽었다. 그냥 집안일이 끝나고 아이들이 자는 평화의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도 눈이 번쩍 떠진 날에도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나는 원래 문학소녀는 아니었다. 읽어야 해야 해서 읽곤 했던 내가, 스스로 책을 찾은 이유는 일종의 도피였다.


지난 가을에서 겨울로 가던 시간, 나는 혼자 걷기 시작했고 또 운동을 시작했고 내가 조금 자유로워지는 만큼 남편은 힘들어했다. 일과 육아의 병행. 그것은 엄마인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인 그도 늘 피곤했고, 쉬고 싶어 했고,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에겐 낚시와 회식, 친구들과의 술자리라는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잠시나마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것일 뿐 그 활동이 끝나는 순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싸움이 잦아졌다. 언성을 높이는 날도 그냥 말을 하지 않는 날도 서로에게 이기적이라며 답답해하는 날도 늘었다. 결혼한 지 8년, 내가 왜 이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하는 본질적이고 쓸모 없는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에코백에 책을 한 두권 챙겨서 친구가 새로 오픈한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종교가 없던 내가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처음 갔을 때 레아 라는 세례명을 받았을 때 그냥 좋았던 이유는 이 구절에 있었다. 이 남자와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지만 우리는 처음과 같을 수 없구나. 영원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와 같은 회의가 수도 없이 밀려왔다. 매일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딱 지난 겨울이 그러했다. 그런 때에 좋아하는 언니가 추천해 준 책은 스님의 주례사였다. 이 책은 비교적 일찍 결혼하는 내게 대학선배 H가 결혼 전에 선물해 준 책이었다. 책장에서 꺼내어 읽었다. 법륜스님은 결국 결혼을 안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보다 했다. 나도 사악한 인간인가 이 사람 덕을 보려고 결혼을 했구나. 다 내 업보요.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억지로 바꾸려 하지말라는 말씀이 계속 머릿 속을 떠다녔다. 그리고 하버드의 리더들이 어떻게 성공하는지 알아보려 집어든 하버드 강의 노트에서도, 화술과 관련한 말센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등의 책에서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도 궤를 같이 하는 듯하는 이론이 있었다.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은 바꿀 수 있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다.

내일은 예측할 수 없지만 오늘을 잘 살 수 있다.

날씨는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기분은 바꿀 수 있다.

삶의 길이를 늘일 수는 없지만 삶의 폭을 확대할 수는 있다.

외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활짝 웃을 수는 있다.

타인을 조종할 수 없지만 각각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하오린, 하버드 강의 노트 중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나 자신 뿐이다.

늘 지나치지 말고 겸손하자.

상대를 인정하자.


그것이 남편이든, 아이든,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든


부부에게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상대를 인정을 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 지는 길이다. 그러니 그의 사랑에 목 메지 말고 스스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 더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스님의 주례사를 폈을 때만해도 여전히 나는 옳은 말씀에 심리적으로 반발했다. 하지만 별 다른 목적없이 꺼내든 다른 책에서 앞으로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이 싫은 날 모든 것의 자유를 꿈꾸며 혼자 걷고 좋아하는 공간에 가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 그러면서 무언가 스스로 깨닫고 배우는 것, 그것은 내게 카이로스였다.





카이로스(kairos)

누구에게나 주어진 물리적 시간 외에 존재하는 어떤 운명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빛나게 만드는 시간

성공한다는 것, 세상을 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카이로스를 갖느냐의 문제이다. p.145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 이 시간을 최고로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과 성취를 느끼며 하루 하루를 밀도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나의 카르페디엠이다. p.149


유대열, 나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2. 책을 읽고 기록하고 또 나누기



책을 읽고 나누는 일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든 대학 후배 K가 지속적으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며 남긴 독서 후기를 보고 그런 발전의 시간을 매주 갖다니, 막연하게 부럽고 나도 하고 싶지만 안되겠지? 그냥 그들이 읽던 책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따라 읽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건 하면 되는거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새 학기의 시작은 어수선했고, 재택 근무로 새롭게 만난 선생님들도 어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료가 있지 않을까 하며 오후 티타임에서 '우리 매월 정기적으로 책 읽고 이야기 하면 어때요? 그냥 읽고 싶은 아무 책이나 하고 싶은 아무나 자유롭게 와서, 아무 이야기든 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데에는 무모한 단체 메세지를 보낼 용기면 충분했다.


나와 3년을 함께 보낸 L선생님. 1학년 갓 입학한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만나 3년을 같이 키우며, 내 맞은 편에 앉으셔서 나의 삶, 나의 가치관, 나의 교육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주신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다행히 전근을 가시지 않으셔서 한 학교에 있지만 다른 연구실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매일 같이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와 복도에서 우연히 볼까 말까한 사이는 너무도 달랐다. 실은 선생님과 같이 책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서 쪽지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30년 경력의 국어 선생님의 아우라는 다르다. 함께 하면 재밌는 다양한 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좋은 책 추천도 받을 수 있다. 점심시간 부리나케 찾았던 도서관 업무를 담당하셔서 나의 무모한 도전, 1년 100권의 책 읽기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또 독후감대회에 나가볼 것도 권유해주셨다. (아쉽게도 독후감대회는 시간 없다는 핑계로 도전을 하지 못했다.) 대신 도서관에는 5월에 추천하는 책으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대한 나의 인터뷰가 실리게 되었고, 책은 읽고 나면 신나게 느낀 점을 떠들며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그녀가 섭외되었고, 중앙 교무실의 다양한 연령층의 선생님들께서도 함께 하시게 되었다. 띠릭 띠릭 메세지 알림을 확인하니 같은 전공의 20대 선생님 두 분도 함께 하신다고 했다. 그렇게 결성된 아무모임. 매월 2권의 책을 읽고 만나 벌써 6권의 다양한 책들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독서 모임을 해보니 내가 관심 없던 새로운 영역으로 독서의 폭이 넓어졌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책을 읽고 이해했을 때의 쾌감,

그것은 내가 이전보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3. 그냥 글을 써보기


나는 오랜동안 SNS 기록을 꾸준히 남겨왔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나의 역사라는 것은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내가 나의 역사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막연히 해왔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그 순간 일어나는 그 다양한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과 함께 두서없는 생각을 정돈하려 애쓰며 문장으로 써내려 갔다. (몇 번의 퇴고를 통해 문장을 정돈하지만 글이 매끄럽거나 잘 쓴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대학 시절에는 한창 싸이월드 감성에 취해 프리스타일의 Y와 같은 배경음악과 함께 지금은 꺼내어 읽어볼 수 조차 없는 그런 감성의 글을 남기곤 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페이스북으로 갈아타 시시콜콜 연애사를 남겼다. 아이를 낳고는 카카오스토리에 첫째 아이 커가는 이야기와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문장 호흡이 긴 생각을 담은 글은 블로그에 남기며 기록을 해두곤 했는데 긴 글을 쓰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 생활 속에 해야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블로그를 관두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 출산 이후에는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으로 옮겨가 육아에서 나를 찾는 기록을 남기곤 했는데, 생각을 담는 글에 대한 갈망이 일어, 이렇게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여 다시 나를 찾는 도전과 그 기록을 써내려간다.



그냥 마음대로 써내려 갈 때와 달리 지금은 많은 책을 꾸준히 읽으며 나의 기록을 남기다보니 한 줄 한 줄 군더더기 많고 부족한 내 글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이러한 브런치 작가가 되는 무모한 도전들이 쌓여 매일 달라지는 내가 되리라.


책 읽는 엄마에서 글을 쓰는 엄마로, 그리고 언젠가는 에세이를 출간하는 그런 엄마가 되기를



반 년이 넘는 고민 끝에 주문한 원목 6인용 테이블을 기다린지 3주째이다. 다음주면 아마도 배송이 될 것 같은데, 그 테이블 위에서 아이들과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그런 나의 모습을 그려보니 갑자기 미소가 지어진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책으로 인한 변화,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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