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순환 일탈에도 평온이 유지되는 이유
오늘은 아이가 이모를 따라 포항으로 떠난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서로 조금 그립고 각자 많이 행복했다. 매일 아이들끼리 티격거리고 시끌시끌하던 집에 딸 아이 하나 뿐이니 정말 큰 일이 없었다. 딸아이는 오빠가 살짝 보고 싶기도 한 것 같지만 혼자 사랑을 독차지 하니 더 많이 웃고 꺄르륵거린다.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고 여유가 가득해지니 큰 소리를 낼 필요도 그럴 일도 없다. 신혼이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수요일에 나는 정말 오랫만에 애정하는 청춘들과 만나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 날 먹은 것들로 인해 다음 날 뒤끝은 안 좋았지만 그 젊은 기운을 만나면 편안하고 재밌다. 더불어 엄마라는 타이틀로부터 일시적으로라도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일종의 해방감을 가져왔다. 시덥잖은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농담,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도 되는 청춘들이 주는 에너지가 뭐랄까 아직 나도 청춘이라고 망각하게 한다.
‘축음기’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어릴 때 카요톱텐에서 가수들 노래하면 언니가 시킨대로 카세트에 공테이프 넣어 녹음하고 가수랑 제목 써놔야했던 이야기,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의 CD 플레이어에 이어폰 하나씩 나눠서 조성모의 새 앨범 들었던 이야기, 대학가서 아이리버 mp3를 갖고 들으면서 정독실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고작 30대 중반인 나에게 아이들이 엄청난 과거 속 역사를 듣는 듯 놀라워했다. 나 그렇게 옛날 사람 아닌데...
늘 청춘이고 싶다. 생각이 늙지 않고 사고가 유연했으면 좋겠다. 졸업한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선생님 여전하세요라고 칭찬해주면 좋겠다.
수요일 나의 자유로운 일탈 후 목요일 저녁에는 좋아하는 식당의 뜨끈한 곰탕을 한 그릇씩 비우고 집에 돌아와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평화(제철 과일을 좀 깎고 미숫가루를 타서 얼음 넣어 한 잔 두 사람 먹도록 챙겨주고 나는 설거지를 해치우고 곧 이어 남편은 빨래를 널고, 내가 아이와 샤워하는 동안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고 곧이어 아이가 먼저 잠들면 난 책을 좀 읽고 글을 좀 쓰고 남편은 밖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밤)를 만끽했다.
어제는 제자들이 찾아와 같이 저녁을 먹었고 같은 시간 남편은 가장 편안해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우리가 있던 바로 근처 쭈꾸미집이길래 딸 아이와 같이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 이거 먹고 빨리 들어갈께”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이가 먼저 자는데 감감무소식이었던 남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오늘 밤 나를 찾지마”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오늘 같이 못 만난 다른 친구 한 녀석이 시비를 걸어서 혼내주러 진해에 가겠다는 거였다. 쭈꾸미집에서부터 소주를 곁들이는게 분명했고 지금 혀가 꼬였는데 무슨 진해를 어떻게 가냐니까 대리기사님을 불렀다고 했다. 깔깔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넓어진 마음으로 진해가서 잘 혼내주고 오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님댁에 새로 구입해서 배송와 있는 텔레비젼을 설치해드리고 큰 아이를 데리러 포항에 가기로 미리 계획되어 있었는데 왜 화가 나지 않는 것인지, 내 아량이 넓어진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남편과 친구들의 지난 밤 그 무모함 속에 아마도 그들의 청춘도 본 것이 아닐까? 서른 아홉의 그들의 마음에도 언제고 열아홉 청춘이 살아 있는데, 지난 밤 알코올 속에서 그 청춘들이 꿈틀거렸나보다. 아침 운동을 끝내고 전화를 해보니 숙취에 아침 해장국을 한그릇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해빙의 기적인지 남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인지 난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 현관문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런 별안간의 일탈로 예정없던 외박을 하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 잘 놀고 왔어?”
“어... 아... 죽겠네, 빨리 가자 포항”
내 일탈이 있었던 다음 날 내가 더 협력적이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남편도 오늘 충분히 더 열심히 가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한번씩 돌아가며 청춘을 만끽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막연히 청춘을 돌려달라 한탄할 것이 아니라 언제고 우리 안에 있는 청춘을 꺼내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