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좋은 시 하나가 미치는 영향
겨울이 겨울의 색을 더해가던 무렵이었다. 방학을 앞두고는 다들 안색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학기말 평가에 성적 마무리, 생기부 마감과 업무 정리와 문서 이관, 내신 서류, 교원 평가 등등 3월도 그렇지만 몰아치는 학기말도 숨 막히게 바쁜 시기였다. 그럼에도 교무실에서는 커피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모두가 아꼈고 또 지켰다. 어찌 보면 업무의 연장인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때도 있었고 사적인 이야기와 자신의 철학을 공유할 때도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상황이라 그런지 여러 측면에서 동료애를 많이 느끼게 하는 선배 선생님 K, 그 겨울 그녀는 집 정리를 하면서 이 코팅된 시를 발견했다며 선물로 우리에게 이것을 전해 주었다. 자신의 자녀 교육관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고 늘 마음에 새기는 시라고 하였다. 그렇게 읽게 된 시 하나가 내 삶에 큰 파장을 던졌다.
부모로서 해 줄 단 세가지
...
내가 부모로서 해 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잠자고 마음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된다.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것을
뼛 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코팅된 시의 일부는 여기까지였다. 조용히 시를 읽으면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 치 앞만 보면서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에 아이가 한 뼘씩 두 뼘씩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보다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주어진 단계에 주어진 과제를 잘 수행하는지 살피고 되도록 틀리지 않기를, 가급적 보통의 범주에서 평범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었다. 틀에 가둘 생각은 없었지만 좁은 내 생각의 틀 안에서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시인은 인생이라는 넓고 긴 안목에서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대하며 부모로서 자신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결국 그 답을 찾아 잘 정돈할 수 있었다. 부러웠다.
내가 받은 문장은 여기까지였지만 아마도 더 이어진 글이 있을 것 같아 찾아보았더니 생각이 통하는 듯한 문장이 나왔다. 나를 위해서 나를 찾고, 나를 세우고 나로서 나답게 사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끊임없이 배우고 즐겁게 일하며 이상한 생각을 자주 하는 생각이 늙지 않는 어른이 되는 나의 꿈, 나 하나 이렇게 꿈꾸는 대로 바르게 살아가는 것도 벅찬데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시인이 쓴 다음 문장은 이것이었다. 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리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가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내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나는 늘 교육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교사였으나, 나만의 교육철학과 신념은 부족했다. 잘 정돈된 시인의 생각을 여러 번 손으로 따라 써 보았다. 필사한 글처럼 생각도 닮아가고 싶었다. 2020년 12월 27일에 이 시를 따라쓰면서 남긴 문장을 기록한다.
‘시인이 말하는 세 가지는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고 순간 되는 것도 아니다.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필사를 하며 마음을 정돈하고자 했지만 문장을 한 번 읽고 따라 쓸수록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마음에 무겁게 와 닿았다.’
이 시는 엄마로서 부모로서 내가 쫒아야 할 방향이었다.
빠른 속도로 대단한 성과를 내는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여 다그치고 조급해하다 후회하지 않기를, 자신만의 속도로 다양하고 폭넓게 세상을 경험하고 고유한 색과 빛을 내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기를, 믿음과 여유를 갖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부모가 되기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그 과정에 끊임없이 아이에게 배워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하루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좋은 친구가 되고 닮고 싶은 인생 선배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고 싶은 한 가지를 더 덧붙여본다. 삶에 낭만을 추구할 것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다음 페이지에 끄적여 둔 메모를 기록한다.
자녀교육에 관하여
1.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 : 간섭의 최소화, 개인의 자유와 선택 존중
2. 안 되는 건 안된다고 새겨주는 일 : 약자를 괴롭히는 것, 물자를 낭비하는 것, 거짓에 동조하는 것, 예의 없는 것
3. 평생 가는 좋은 습관 물려주는 일 : 휴대폰 사용을 최대한 늦추는 것, 약속한 게임 시간을 지키는 것, 한글과 수 꾸준히 다지는 것(복습), 매일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기 (문자 또는 그림, 음성), 글을 쓰는 것, 시를 읽는 것, 생각을 정리하는 것,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
4. 삶에 낭만을 추구하는 일 : 사진과 영상 속에 나만의 인생을 담는 것, 좋은 취미를 갖는 것, 좋은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 편지를 쓰는 것,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 정성들인 소중한 것을 의미있게 나누는 것, 매일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자신의 발음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신만이 특화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는 것
최근 내게 가장 인상적이고 또 가장 큰 영감을 준 텍스트는 102세의 김형석 명예교수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였다.
Q: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A: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습니다.
Q: 일과 공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A: “꼭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하는 거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100년의 인생이 갖는 연륜과 경험이 알려주는 가장 좋은 습관은 공부였다. 이 공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 알 것도 같다. 항상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부모가 되는 단 한 가지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