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님 엄마다.

아이의 독립출판 프로젝트, 작가라고 불린다는 것은

by 서사임당


“어율곡 작가님, 글 쓰셔야죠. 독자님들께서 오늘의 글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호칭으로 불리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지위와 역할, 기분이 달라진다. 학교에서 보통 나는 서부장님 또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데 유독 교장 선생님께서만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신다.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내가 다양한 아직은 별 쓸모없어 보이는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음을 아시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 부르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그렇게 아무런 작품 결과물이 없는데도 작가님이라 불리니 진짜 작가님인 것도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참 바빠서 브런치 접속도 하지 않던 날에는 가시방석 같기도 했다. 이런저런 기분을 오가게 했던 호칭, ‘작가님’



나는 요즘 집에서 큰아이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보통 저녁을 먹고 난 후 함께 하는 식탁이나 소파 등의 공간에서 아이를 부를 때 그렇게 콧소리를 내며 아이를 찾는다. 작품 활동을 하자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바깥에서 많이 놀고 온 날이거나 화, 목 방과 후 배드민턴 수업을 들은 날, 금, 토 정해진 게임을 하는 날 등 매일 갖가지 이유로 작품 활동을 하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안식(텔레비젼 시청)을 먼저 찾고자 한다. 결국 인간은 욕구가 의지보다 먼저인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매일 하루가 가기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아이의 작품을 업로드하는 것을 하루 일과의 마무리로 삼았다. 규칙적인 스토리 업로드에 매번 꾸준히 100여 명이 넘는 지인들이 아이의 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소중한 1분 1초가 아이의 글을 보는 데 쓰인다고 생각해보면 이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율곡 작가님 오늘 글 안 쓰면 애독자님께 걱정할 것 같은데?”


“구독자 아니고 애독자가 뭐야? “


“지원이 글 좋아하는 사람들, 매일 읽어본다는 건 너를 좋아하거나 네가 쓴 글들을 좋아하는 거야.”


“내 글을 좋아한다고? 누가?”


“진짜 좋아하는지는 안 물어봤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을 매번 같은 것에 쓴다는 건 그만큼 좋아서거든. 여기 보이는 사람들 다 네 글을 좋아해”


“나 계속 열심히 할 거야.”



처음에는 아이의 기분 좋으라고 구독자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어느덧 한 달이 넘고 50일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 매일 업로드되는 아이의 글을 들여다 봐주는 사람들에게 ‘독자’라는 호칭을 붙이고 아이를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아이가 아직 9살이고 미숙한 것이 많지만 가끔은 꼬마 철학자처럼 울림을 주는 문장을 불러주는 날도 있다. 그 날 하루에 있었던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가장 먼저 알 수 있어 지금의 이 기록은 우리가 나이를 먹었을 때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될지 모른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류성룡이 눈물과 회한으로 ‘징비록’을 남겼듯, 사도세자의 죽음을 겪었던 혜경궁 홍씨가 한과 비애가 담은 ‘한중록’을 남겼듯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남긴다. 다시없을 9살 아이와 서른 중반의 엄마가 묻고 답하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넓혀 갔던 유년 시절의 기록이랄까?


아이는 요즘 글 쓰는 시간을 당연한 일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은 패드 앞에 앉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키보드를 혼자 두드리며 스스로 글을 써보려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책은 읽는 거라고만 생각했을 텐데 직접 쓸 수 있는 작가님이 되면서 생각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 같다. 비록 좋아하는 요리와 생물, 역사 등의 학습 만화 위주의 책들 뿐이지만(자녀 독서 관련하여 읽은 책에서는 절대 비추천하는 독서법이나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을 더 우위에 두고 있다.) 그래도 아이는 요즘 책 속에서 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까?


가까운 도서관에 자주 가서 놀기

잠자리에 들기 전 각자 좋아하는 책 읽기

하루에 한 편의 글쓰기

작고 큰 변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꼬마 철학자와도 같던 날 ㅣ 2021.3.16. @어율곡



아이의 글을 보며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있음을 배운다. 나는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글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늘 잔소리꾼이거나 재촉을 하는 사람이다. 아이는 어디선가 주워 들은 멋진 말을 잘 기억해뒀다가 적절히 써 먹는 때가 늘었다.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된 것일까? 내가 평소 무엇을 틀렸다하여 혼내거나 핀잔을 주지는 않았는데 아이는 스스로 그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 틀려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다니 이제는 누군가를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오늘의 글을 쓰면서 옆에 있는 작가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작가님, 작가님은 왜 글을 쓰시나요?”


“엄마 나 그냥 심심해서 쓰는데? 글 쓰면 재밌어. 일단 내가 손으로 안 쓰니까 쓰는 게 쉽고 내가 한 말이 글자로 남아 있는 게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