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준비 없이 그곳에서 알아가고 느끼는 여행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 넘어선 때였다. 우리는 여동생의 신혼집에 처음 가 보기로 해서 진해로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진해는 한 번 경유해 지나간 적은 있으나 아이들과 함께 여행해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큰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진해는 어떤 곳이야?”
“응? 진해는 어떤 곳일까? 가서 같이 알아보자.”
“그러면 진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이 뭐야?”
“참 진에 바다 해?, 참바다? 진짜 바다인가? 엄마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
“나는 돌격할 진에 바다 해, 돌격하는 바다 아니야?”
“그럼 한 번 찾아볼까? 유튜브에 진해의 역사라고 검색해서 엄마가 보여줄 테니까 이거 보면서 가자.”
창원시에서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우리가 몰랐던 진해의 역사>라는 콘텐츠를 보았다. 영상 속 차분한 내레이션을 들었다. 진해는 우리나라 해상 관문으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그 가치가 높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최초로 세운 계획도시였다. 임진왜란의 최초의 승전이었던 옥포해전은 바로 진해만에서 치러졌고 진해는 7년의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이순신의 흔적이 많은 곳이었다. 백범 김구가 진해를 방문하여 남긴 친필 시비 역시 이순신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 후 해군 사령부가 들어서 우리나라 해군력의 중심이 되어 지역 주민 70%가 해군 가족이라고 했다. 36만 그루가 넘는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군항제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우리는 그 복잡함이 싫어 한 번도 아이들과 와 본 적이 없었다. 영상을 보면서 아이의 호기심은 더욱 가지를 뻗어가고 있었다.
“엄마 돌격할 진이 아니라, 제압할 진이었어. 바다를 제압하는 곳이 진해야.”
“그렇네. 삼촌이랑 이모집이 어디에 있을지도 궁금해. 해군부대랑 가까울 텐데 가서 더 살펴보자.”
“엄마, 나 그런데 있지. 지금까지 갔던 곳들 중에서 창녕이 제일 좋았어.”
“창녕? 지난 6월에 우포늪이랑 박물관 갔던 곳? 왜 그렇게 생각해?”
“진짜 왕 무덤도 엄청 많았잖아. 그것도 보고 박물관에서 직접 돌로 뭔가 갈아봤지. 옛날에 만들어진 다리도 올라가고 그 위에 6.25 전쟁 기념비에서 참배도 하고, 냉장고 무덤도 보고, 나는 내가 궁금했던 거를 찾아서 보고 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 기억에도 많이 남고. 예전에 가족탕 갔을 때 내가 따오기랑 온천 봤던 것도 신기했는데. 아무튼 난 창녕이 좋아.”
“우와, 그거 다 기억하는 거야? 그 냉장고 무덤은 석빙고야. 엄마는 우리가 우포늪 쪽으로 가다가 지원이가 갑자기 논 옆에 있던 양파 기념비 같은 거 보고 궁금해서 차 세워 달라고 했던 게 가장 신기했어. 덕분에 그 앞에 엄청 큰 옛날 집 있었잖아. 그곳이 창녕에 처음으로 일본에서 양파를 들여오신 창녕 성씨 성낙안 선생님 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잖아. 양파가 우리나라에서 나는 작물이 아니라 ‘서양에서 들여온 파’라는 뜻에서 양파라는 이름이라는 것도 이해했고. 그 집 앞에 세워진 석리 성씨 고가 안내문을 읽으면서 엄마는 이 집안의 비극적인 역사를 더 깊이 찾아봤는데 지원이 덕분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 그리고 여행은 이렇게 모르는 것을 우연히 발견할 때 정말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어.”
“맞아. 엄마 창녕에는 정말 길에 주황 색깔 망에 들어 있던 양파가 더미로 쌓여 있었잖아. 진짜 신기했어. 양파 동네였지.”
“그래~ 우리 통영에는 길에 굴 껍데기가 그렇게 쌓여있는데 창녕은 정말 양파가 유명한 지역이었어.”
“엄마, 그럼 진해는 뭐가 유명한 동네일까?”
마창대교를 지나 오른쪽 우회전, 진해로 빠져드는 길은 온통 방지턱 천국이었다.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낮춘다고 했는데 계속 차는 덜컹덜컹거렸다. 가을이 오고 있어 나뭇잎이 누런 빛으로 색이 바뀌어 가고 있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도로 옆에 길을 따라 설치된 방음벽에는 분홍빛의 벚꽃이 보였다.
‘아, 이 길이 봄에는 분홍의 벚꽃길이겠구나.’
나무 터널 같았던 도로를 지나오니 둥그런 로터리가 보였다. 이순신 장군이 늠름한 자태로 서서 남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북원로터리, 영상에서 보았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동상이라는 설명이 다시금 떠올랐다.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 찾아보니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 4월 28일이었다. 놀라웠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는 몇 개 없는데 이 도시에는 6개 또는 8개의 도로가 이렇게 큰 로터리로 연결되어 신호등이 없이도 차들은 알아서 잘도 다녔다.
“엄마 저기, 이순신 장군이다! 여기는 길이 이상해. 동그랗게 크게 가운데 있는데 케이크 자른 거처럼 되어 있어.”
“그렇지, 계획도시라서 도로가 이렇게 생겼나 봐.”
“엄마, 엄마. 저기 옛날 집 같이 생긴 게 있는데 우체국이라고 되어 있어.”
“엄마, 저 산에 꼭대기에 무슨 탑 같은 게 있어. 멋지다”
“삼촌 이모집 근처에 있는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이 있다는데 우리 나중에 걸으러 나오자.”
어느새 우리는 네비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동생 내외가 데려간 돈카츠 맛집에서 300시간 숙성된 돼지고기로 만든 여러 일본식 돈카츠와 우동을 먹었다. 진해 생태숲에 위치한 보타닉뮤지엄이라는 곳에 가서 걷고 꽃과 나무를 보며, 팔랑거리는 나비에 넋을 잃기도 하고 7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애벌레의 꿈틀거림에 놀라 구경하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를 보며 사진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밥을 먹으니 밤이 깊어버렸다. 아이들은 피곤해 먼저 잠을 청했고 나는 동생 내외와 진해라는 느낌을 처음 느꼈던 그 로터리로 가서 진해문화역사길과 부엉이길을 걸었다. 걷기에 딱 좋은 가을밤이었다. 아이들과 다시 낮에 와서 보고 싶었다.
다음날이 아침이 밝았고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삼촌과 셋이서 손을 잡고 나간 아이들은 어쩌다 진해만까지 가서 바다 위에서 페달 보트를 타고 돌아왔다. 충분한 호기심을 직접 몸으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들,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그런 여행의 기억들이 앞으로의 그들의 삶에 좋은 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리 완벽하게 공부하고 준비해서 떠나지 않고 적당히 모르는 상태에서 ‘왜 그럴까?’, ‘어디일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와 같은 궁금증 때문에 스스로 알게 되는 기쁨이 생기는 여행, 그것이 우리만의 여행법이다.
“엄마, 나 다음에 진해에 또 오고 싶어. 그 골목은 못 가봤거든. 해군부대에 가서 삼촌이 말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그 독도함도 한 번 꼭 보고 싶어.”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감옥에서 쓴 시
우리의 진정한 여행도 우리의 가장 먼 여행도 우리의 최고의 날들도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순간들은 과연 어떨까? 상상만으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