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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Sep 13. 2023

장 파투 조이 (1930)

빈티지 향수 리뷰

들어가며


장 파투, 라고 말하면 그게 뭐야? 라고 말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창시자는 거의 90년 전인 1936년에 죽었고, 향수로서 브랜드는 사라졌으며, 원래 패션 하우스였던 브랜드는 이름을 "장 파투"에서 "파투"로 바뀌었고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매우 떨어진다. 한국에 입점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며 이 브랜드 자체가 현재 그리 잘나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 하우스에서 칼 라거펠트, 장 폴 고티에,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등이 일했었던 만큼 매우 오랫동안 패션의 첨단을 달렸고, 비슷하게 향수 역시 1925년에서 2016이라는 91년의 세월동안 프래그런티카에 등록된 향수는 57개밖에 내지 않았지만 (플랭커, 재출시 등을 모두 빼면 32개 정도 된다) 그 중에 기라성같이 역사에 발자취를 낸 향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라성같은 향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향수는 바로 조이일 것이다.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중고 장터같은 곳에서 장 파투 향수라고 검색할 경우 조이만 뜨는 경우가 있다. Joy는 종종 기쁨이나 행복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베토벤의 "Ode to Joy"가 "환희의 송가"라고 번역되는 것을 보면 이 향수 역시 단순한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조금 더 순수하고 강렬한 환희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향수 리뷰


내게는 조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1972년에서 1986년 사이에 만들어진, 7.5ml 향수이다. 다른 조이의 경우 빈티지인 것은 확실하나 언제 만들어진지 불확실해서 이번 리뷰에서는 제외했다. 빈티지 조이의 경우 상자를 통해 (숫자 3개/4개면 1950~1972년 이전, 7개면 1972~1986년, 숫자와 알파벳이 섞인 7개면 1986~1997년 사이) 만들어진 연도를 추측 가능한데, 이건 상자 없이 본품만 왔기 때문이다. 뚜껑 모양이나 바닥에 있는 바카라 크리스탈 로고로 어림짐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더 확실한 연도측정을 위해 이 리뷰에서는 제외했다.


가진 빈티지 조이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추측하는 방법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raidersofthelostscent.blogspot.com/2018/02/how-to-recognize-jean-patou-fragrances.html

개인 소장중인 빈티지 장 파투 조이 퍼퓸 엑스트레


장 파투 조이 퍼퓸 엑스트레(1972~1986)


조이는 처음에 매우 반짝이는 느낌을 주는 장미와 자스민으로 시작하는데, 이 두개가 서로 섞여서 장미와 자스민이 따로따로 있기보다는 어떤 존재하지 않는 꽃을 표현하는 느낌이다. 앞의 반짝이는 느낌은 아마도 소량의 알데하이드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1분 후 향에 라일락을 연상시키는 가볍고 부드러운 향긋함도 느껴졌고, 2분 후에는 아까 전만 하더라도 결합해 있던 장미와 자스민이 각각 장미 특유의 향과 자스민의 인돌릭한 향을 내기 시작한다. 4분 후, 손목에서 조금 떨어져서 향을 맡으면 애니멀릭한 시벳향이 느껴지지만 가까이 가면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밝은, 갓 피어나는 것 같은 꽃향이 다시금 서로 조화롭게 모여서 느껴진다. 6분 후, 멀리서는 시벳과 약간 우디한 샌달우드도 느껴지는데, 가까이 가면 그 모든 밝은 플로럴함과 함께 다소 프루티한, 복숭아나 자두향 같은 향도 느껴진다. 7분 후, 자스민의 인돌릭함은 점점 강해지지만 그럼에도 아직 향 자체는 달콤하고 밝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으며, 8분 후에는 장미가 다소 장미 비누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장미 비누같은 밝고 맑은 장미를 누가 엘리베이터에 비슷한 향을 내는 디퓨저로 설치한 다음부터 그닥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고, 효과 자체는 더욱 향을 깨끗하고 해맑게 해준다. 18분 후, 위에서 나열한 모든 요소들이 조합적으로 짜여지며 지금도 흔히 느낄 수 있는 그저 가볍고 밝은 꽃향이 아닌, 그를 뛰어넘는 클래식하고 우아함을 보여준다. 이 때가 사실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28분 후, 가까이에서도 애니멀릭한 머스키함이 느껴지고, 머스크와 플로럴의 조합이 2시간 21분 후에도 점점 이어지는데, 그 이후에는 꽃향이 점점 꼬릿해지면서 머스키한 애니멀릭함에 녹아들며 향을 빈티지스러운 꼬릿한 영역으로 가져가고 끝난다. 12시간 후에도 계속 향이 났다.



장 파투 조이에 대하여


장 파투 조이는 1930년, 대공황 직후에 만들어졌다. 1929년 대공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절망했고 사회 분위기는 어두웠다. 이럴 때,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탄생한 조이는 당시 장 파투와 친했던 작가이자 기자이고 사교계 인사였던 엘사 맥스웰이 고안해낸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날개돋힌듯이 팔렸다. 조이 1온스마다 10,600 송이의 자스민과 336송이의 센티폴리아 장미가 들어가 있었으니 비싼 것은 당연했는데, 이 고가의 향수는 옷이나 가구, 보석 등에 더 이상 사치할 수 없었던 부자들에게 현재 우리가 불황때 립스틱 등 화장품이 유행하는 현상에서 이해할 수 있듯 "작은 럭셔리"로 보여졌고 이 때문에 더욱 유행했던 것 같다.



2000년에 조이는 향수계의 오스카에 비견되곤 하는, 향수 협회가 주관하는 FiFi 상에서 샤넬 No.5를 제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향수 상을 받았다. 비록 현재에 와서는 이 향수를 그렇게 많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국에는 많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이 향이야말로 20세기의 모든 것-이 향이 태어난 1930년 이전부터, 태어난 다음 70년동안-을 포괄하는 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재클린 케네디, 비비안 리 등 매우 유명한 사람들이 사랑했던 장 파투의 조이는 엄청난 문화적 상징이었고, 프랑스의 문화적 유산 중 하나였다. 실제 어떤 특정 꽃이나 꽃다발이 아닌, 추상적인 "꽃"이라는 아이디어 그 자체를 표현하려 했다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장 파투 조이는 단종되었는데, LVMH 그룹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망해가고 있던 장 파투 브랜드를 단종시키면서 아예 장 파투의 모든 향수를 단종시켜버렸다. 나는 디올의 많은 향수들을 좋아하지만,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을 디올에서 별로 특징이라곤 없고 적당하며 "무난한" 향수에 똑같은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없애버린 것은 크나큰 잘못이고 용서할 수 없을 만큼의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끝맺으며


나는 장 파투 브랜드의 많은 향수들을 소장중이다. 조이, 1000(역시 매우 유명한 향수고, 오스만투스 향을 처음으로 서양에서 대중화시킨 향수다), 수블림, 콜로니, 모멍트 수프림, 파투 뿌르 옴므 등을 가지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조이보다는 1000을 더 좋아하고, 조이의 애니멀릭한 꼬릿함이 내게 과도하게 발향될 때가 있어 조금 어려워하는 향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를 뿌리면 적어도 초반에는 뭔가, 정말로, 아기의 웃음소리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환희가 느껴져서,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그 순박한 아름다움이 세련되고 근사하며 청아한 분위기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거칠고 문신으로 뒤덮혀 있고 편한 옷차림인 경우에도 너무너무 잘 어울리고, 성별도 그렇게까지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 정말로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마동석씨가 조이를 써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에게나 잠깐이라도 환희를 느낄 시간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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