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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Jan 06. 2024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사람과 자연과 나

최근에 어떤 분과 대화하다가, 장미 향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튀르키예에서 나오는 장미 향료가 이번에 너무 비싸져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왜 이리 비싸졌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었다. 나는 거기에 아마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튀르키예에서 도로가 뒤틀릴 정도의 대지진이 일어나서 그러는 것일 거라고 답했다. 찾아보니 2023년 2월이었다. 5만 7백여명이 죽고 10만 7천여명이 다쳤으며 1573만명의 삶에 영향을 끼쳤고 34만 5천채의 집이 무너졌다. 특히 농촌, 농업, 어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튀르키예 농업 생산의 20%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 당연히, 장미농장들도 영향을 받고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도, 나중에 장미를 수확했을 때 그걸 실어서 운반할 도로도, 향료 추출 공장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3월에는 홍수가 있었다. 지금 영향을 받았다, 라고 얌전하게 써놔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도로가 갈라지고 심지어 철도가 엿가락처럼 휘었다.


향수에 대해 심취하다 보면 (나도 마찬가지고) 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연의 축복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잊게 된다. 나는 책은 물론이고 여기서도 향수 산업은 필연적으로 환경과 사회변화에 의해 여러모로 좌지우지된다고 계속 말했다. 멸종위기의 동식물, 기후변화로 인한 산지 축소와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 독재정권의 설립과 전쟁 등, 나의 일상, 내가 칙 하고 손목에 뿌리는 향기나는 물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이 결국에는 그 향기나는 물을 만드는 데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서, 향수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그라스를 들어보자.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서는 많은 농가가 장미, 자스민, 라벤더, 튜베로즈 등 향수에 쓰이는 여러 꽃을 키웠다. 디올도 여기 농가에서 계약을 맺고 있고, 샤넬은 아예 샤넬 소유의 밭이 있고, 이 외에도 유수의 기업들이 꽃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 등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료와 가격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몇몇 농가들은 농사를 접고 땅을 팔고, 그 곳엔 골프장이나 리조트가 세워지고 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견해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럼으로서 우리는 한때 거기서 생산되었던 고품질의 그라스산 향료 및 그걸 키워내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조금 더 잃은 것은 확실하다.


또 다른 예시로는 기후위기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바닐라가 있는데, 매우 노동집약적이고 품이 많이 드는 원료라 애초에 굉장히 비싸다. 바닐라는 일종의 난초인데, 본래 멕시코에서만 자랐기에 그곳의 특정 벌 하나가 꽃을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재 바닐라 산지인 타히티나 레위니옹 섬, 마다가스카르에는 이 벌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1년에 하루만 피는 바닐라 꽃을 6시간 내에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수정해야 한다. 아래 영상에서 보면 이쑤시개로 섬세하게 수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Ol6HPJY3U

바닐라꽃을 수정하는 영상.

그렇기 때문에 바닐라 꽃이 피었는지 24시간동안 계속 확인해야 하고, 피면 최대한 빨리 6시간 내에 그것을 수정할 사람이 필요하고, 수정이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2~3주 정도 걸려야 볼 수 있다. 이렇기에 비쌀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바닐라는 향료회사들 뿐만 아니라 식료품 회사들도 매우 눈독들이는 재료라는 것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서 온갖 디저트와 빵류에 바닐라가 들어간다. 음료에도 바닐라 시럽, 리큐르 등으로 쓰이며 가향차에도 들어간다. 그러니 안 그래도 비싼 바닐라인데, 식료품 회사와의 경쟁 때문에 가격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매우 귀중한 바닐라는 기후위기 때문에 너무 더워지면 꽃을 잘 맺지 못하게 되어, 바닐라 빈 생산량 자체가 작아지고 바닐라 빈 역시도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너무 더우면 식물도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약해지고, 그런 더위에서 특히 잘 퍼지는 병이 있기 때문에, 바닐라가 병충해에 더욱 취약해지게 된다. 새로 심은 바닐라 난초가 빈을 생산하려면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바로바로 새 식물로 대체할 수도 없다. 거기다, 지구온난화때문에 태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열대 지역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열대기후에서 잘 자라는 바닐라의 특성상 이건 매우 안 좋은 소식이다. 2017년의 경우, 마다가스카르는 허리케인 이너워 때문에 바닐라 농작물 30%가 피해를 입었고 그 해 바닐라는 4배나 더 비싸져서 미국에선 같은 무게의 은만큼 비싸졌다. 솔직히 내가 바닐라 농부였는데 내 농장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다시 바닐라가 열리기까지 3-4년이 걸린다고 하면 난 그냥 바닐라 농사는 접고 다른 거, 예로 커피나 초콜렛 등을 키울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의 농부들 중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로코의 경우는 대표적인 오렌지 블로섬과 네롤리, 페티그레인 산지 중 하나다. 이곳은 최근 기후 패턴이 달라지면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데 2023년의 경우 어떤 지역은 강수량이 평년의 1/3이었다. 때문에 오렌지 블로섬 생산량이 해당 지역에서는 올해 목표치보다 25%가 줄었다. 날씨가 가물면 오렌지나무의 꽃 사이즈가 작아지기 때문에 헥타르당 생산량이 줄고, 네롤리의 경우엔 네롤리에 들어있는 특정 성분의 비율이 바뀌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모로코에서는 9월에 기록적 대지진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여러 분야의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이 망가진 곳에 대고 하지만 내 향수는요? 라고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별 거 아닌 것 같은 사치품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의 노력과 삶과 일상이 담겨져 있고 그게 얼마나 쉬이 무너지는지, 작년과 재작년 여러 재해와 전쟁 등을 겪으면서 계속 느끼는 것 같다. 나하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일들도 사실은 다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모두 평화롭게 평상시 일과를 해내며, 별 일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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