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 egg 말고 계란후라이

by 계란후라이


"계란후라이 해줘?"


어릴 적, 이 질문은 내게 가장 익숙하고 따뜻한 말이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프라이팬 위에 계란을 올렸다.
기름이 지글지글, 하얀 흰자가 퍼지고
노른자는 반질반질,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감쌌다.


바삭하게 익은 가장자리,
밥 위에 얹고 간장을 살짝 두르면
노른자가 스며들며 밥알을 감싸던 그 맛.


나는 그것을 ‘계란후라이’라고 불렀다.




미국에 와 레스토랑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주문할 때,

웨이터가 토핑 메뉴를 가리켰다.


"Would you like a fried egg on top?"

[fried egg 토핑 추가하시겠어요?]


"Fried egg."

말만 들어도 미끈한 노른자가 흘러내릴 것 같은 느낌.

"계란후라이"였다면 고민도 없이 시켰을 텐데,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접시 위에 우아하게 올려진 "Fried egg"는

내가 알던 계란후라이와는 다른 음식 같았다.


노른자는 흘러내리고,

흰자는 미끈하게 빛났다.


어딘가 세련된 듯했지만, 익숙한 온기가 없었다.



나는 "Fried egg"가 아닌 "계란후라이"라는 단어 속에서 자랐다.

어순도, 문법도 틀렸지만,

그 단어 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매일 모양이 달라지는,

어딘가 엉성하지만 정겹고 구수한,

나의 계란후라이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속엔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 녹아 있다.


"계란후라이"

그것에는 엄마의 손길이,
부엌의 기름 냄새가,
가족과 함께한 아침 식탁의 풍경이 있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익숙해져야 하는 단어인

"Fried egg"가

감히 덮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덮는다.


추억의 깊이를 숨긴 채,

하얀 탈을 쓴다.


그렇게 나는 희미해져 간다.



어쩌면 나는 두 단어 사이에서

나의 경계를 경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안정감과 불안감 사이에서.


당신에게도 그런 단어가 있지 않은가?
그 단어는 단순한 뜻을 넘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단서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익숙한 단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오늘도 ‘Fried egg’를 주문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계란후라이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