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귀엽다고, 독특해서 매력적이라고.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미국으로 떠났다.
이곳에서도 내 발음은 나만의 개성이 될 거라 믿었다.
“내가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도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설레었다.
기숙사 첫날,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순간이었다.
문이 닫히려 하길래 자연스럽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Which floor?” [몇 층 갈 거야?]
그러자 옆에 있던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Wait, are you from Australia?”
[잠깐, 너 호주에서 왔어?]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Nah, I'm from New Zealand. Is it my accent?"
[아니, 뉴질랜드! 내 발음 때문에 그래?]
그러자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Oh, I see! Yeah, your accent’s so cool, bro.”
[아 그렇구나! 어 너 액센트 진짜 멋있어]
그 순간, 나는 내가 기대했던 대로
사람들이 내 발음에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거 좋은데?"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어색한 첫 만남도 ‘내 발음 덕분에’
부드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이거 내 개성이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내 억양이 나만의 매력일 거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업 중에 발표할 일이 생겼다.
나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애드-버-티스-먼트 (əd-ˈvɜː-tɪs-mənt)."
그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몇 초 뒤, 들려오는 속삭임과 웃음소리.
뒤에서 킬킬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수업이 끝난 뒤 한 친구가 다가왔다.
“너 그거… 발음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영국식인가? 여긴 다르게 말해?"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완전 이상해. 그런 발음은 처음 들어봤어.”
"애드-버-타이즈-먼트 (ˈæd. vɚ. taɪz.mənt)."
이게 이 나라 말이구나.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내 발음을 신기해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냥 이상하게 본 거였나?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틀린 걸까? 내 발음이 문제인가?"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내가 뉴질랜드 출신이라는 걸 더 이상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그게 자랑스러워야 하는 걸까?
이제는 나도 모르게 미국식으로 말한다.
"애드버타이즈먼트"를 부드럽게 굴리고,
억양을 맞추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교정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그리고 문득,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나일까?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사교하는 내가,
자꾸만 내 목소리를 잃은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거울을 보며 괜히 뉴질랜드 발음을 내본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어색하다.
잘 안 되는 걸 확인하고는,
괜히 우울해진다.
간지러움에 진짜 피부를 벗기고,
나에게 맞지 않는 껍데기를 잠깐 입어본 사이,
아름답던 내 진짜 피부가 사라져 버린 느낌.
쓰라린 속살을 토닥이며...
오늘도 나는 미국 발음을 흉내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