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돌로미티 여행

노인들의 산행

by 김승찬

1. 여행준비


나이가 들면서 여행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어딜 가던지 무엇을 빼먹을까 봐 머리를 굴리며 다녔다면, 요즈음은 으뜸가지 않으면 버금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설렁설렁 다닌다고 할까?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굼떠진 몸은 좋게 말하면 한 군데서 더 깊은 음미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시간도 많고 다른데 쓸 돈도 줄었으니 한 군데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여름엔 예전부터 벼르던 돌로미티를 여행하기로 하였다. 돌로미티는 알프스 산맥의 일부로 남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석회암 산맥을 말한다. 지역으로 보면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남티롤 (Sudtirol)에 속한다. 실제로 이탈리아가 된 것은 일차세계대전 이후로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고유어인 라딘어 까지 세 가지 말과 문화가 섞여있다 한다. 정통을 추구하는 골수 하이커들은 알타비아 1 (Alta Via 1 - 문자 그대로 옛길 1번)을 따라 종주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에 걸맞게 대표적인 곳 몇 곳만 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여기서 하이킹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역시 돌로미티의 맛을 볼 수 있는 짧은 트레일들을 여기저기서 걸어보기로 하였다.


돌로미티는 십여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 다른 풍광을 지니고 있다 한다. 각 지역들은 모두 골짜기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자연히 둘러싸고 있는 산들과 호수들을 즐길 수 있다 한다. 집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상의한 결과, 우리는 두 군데 지역을 골라 각각 베이스로 삼기로 하였다. 하나는 세 봉우리 트레치메 (Tre Cime di Lavaredo)로 널리 알려진 드라이지넨 (Drei Zinnen)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5 개 마을들이 흩어져 있는데, 마침 섹스텐 (Sexten 이탈리아어로는 세스토 Sesto)에 있는 버그호텔 (Berghotel)에서 가이드가 이끄는 하이킹과, 아침과 저녁을 (하프보드 Half Board) 제공하는 패키지가 있는 걸 알아냈다. 그밖에 머무는 동안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공공 교통 카드와, 지역에 있는 케이블카 와 스키리프트를 이용하는 카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한다. 또 다른 지역으로는 비교적 널리 알려 있는 발가르데나 (Val Gardena)를 골랐다. 여기도 모든 숙소에서 공공 교통 카드를 준다 하니, 케이블카 티켓만 사면 어디든지 가 볼 수 있다 한다. 발가르데나는 무엇보다 정보가 널려 있는 점이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6 개월정도나 남았는데도 잘 알려진 숙소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뒤에 들으니 1 년 전에 매진된 다한다) 결국 지역에서 운영하는 관광안내 https://www.valgardena.it 를 이용하기로 했다. 몇 군데 오퍼가 온 중에, 오티세이 (Ortisei 독일어로 St. Ulrich 상트울리히)에 있는 가니알바 (Garni Alba)로 정했다. 후일담이지만 가격대비 탁월한 선택이었다. 위치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날짜는 8 월 3 일부터 10 일 까지 7 박은 섹스텐에서, 그리고 10 일부터 13 일 까지 3 박은 오티세이에서 보내기로 하였다.


2. 섹스텐 버그호텔 (8 월 3 일)


지난 1 주일 동안 보냈던 오스트리아 살츠카머구트 (Salzkammergut)를 뒤로하고 , 이탈리아 섹스텐으로 향했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을 거의 하루 꼬박 보내야 (10 여 시간) 한다니, 마침 우리 일행 4 명이기도 하여 택시를 고용했다. 안락한 8 인승 밴으로 약 4 시간에 걸쳐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관통했다. 호텔은 자그마한 마을 모스 (Moos)에서 가장 눈에 띄는 언덕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텔로비에서 준비된 두툼한 패키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교통카드, 스키패스, 그리고 20여 장의 하이킹 지도가 있었고, 또 호텔 시설 이용에 대한 안내도 들어있었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 이전에 하이킹에 대한 가이드 안내가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로 각각 30 분씩 주어진다고 하였다. 당황스러워서 우리는 두 언어 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더니, 두 가지 안내 발표뒤에 주인이 직접 영어로 설명하겠다고 했다. 특이하게 식사할 자리는 1 주일 내내 식당 안에 똑같은 자리로 지정이 되어있다 하였다. 점심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고 해서 어쩔까 하고 있는데, 마침 매일 오후 3 시에서 5 시 사이에 디저트가 제공된다 하여 우리 일행은 케이크 몇 조각과 차로 점심을 때우기로 하였다.


버그호텔에서 바라보는 모스 마을과 크로다로사 산


호텔은 엘모산을 뒤로 그리고 수많은 석회암 산봉우리들을 앞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봉우리 이름들이 숫자로 되어 있는데, 겨울에 해가 지나가는 시간을 나타낸다 한다. 호텔에는 옥외 수영장과 월풀이 있어, 여기저기 쉬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 호텔 사우나는 규모도 크고 제법 고급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남녀 공용이고, 또 게다가 많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에서처럼 수영복은 착용 금지라니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한번 용감하게 들어가 보았는데, 두 노인네 커플이 느긋하게 전라로 있는 걸 보고 얼른 꼬리빼는 강아지처럼 물러닜다. 그래서 있는 내내 수영장과 거기 붙어있는 사우나와 월풀만 이용했다. 패키지에 마사지가 포함되어 있어, 마지막 날 전라로 있어보기는 했지만. 아무튼 매일 수영장에서 둘러싸고 있는 기괴한 봉우리들을 쳐다보며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저녁 먹기 전에 호텔주인으로부터 하이킹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대략 월요일부터 단계적으로 난이도가 증가한다 하였다. 우리는 월 화 수 3 일만 참가하기로 하였다. 목 금은 이 지역 명소중 하나인 브라이에스 호수 (Lago di Braies)와 또한 우리의 이번 여행 목표 중 하나인 돌로미티의 상징 트레치메 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드라이지넨 지역에서 운행하는 셔틀을 예매하였다. 이 셔틀서비스는 운전 주차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정말 유용하다 하겠다.


3. 섹스텐 하이킹 (8 월 4 - 6 일)


첫날인 월요일 아침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인 엘리자베스가 인사와 간단한 일정소개를 해주었다. 일행은 열다섯 정도--우리 한국사람 넷과 이탈리아인들 대여섯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하이킹 내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로 바꾸어 가며 안내를 했다. 첫 번째 하이킹은 호텔을 중심으로 왕복 약 10 킬로미터 정도로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카펠라 넬보코(capella nel boco 문자 그대로 숲 속의 교회)였다. 이 숲 속에 숨어 있는 교회는 무솔리니가 이끌던 파시스트 시절 강제로 이탈리아어만 사용해야 할 때 몰래 독일어로 예배를 보던 곳이라 한다. 이곳으로 가는 트레일은 센티에로 델라 메디타지오네 (sentiero della meditazione 명상의 길)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떠들썩하며 지나갔지만 그래도 그 뜻을 새겨 보았다. 군데 둔데 이곳 티롤지방의 특징인 목각들이 흩어져있고, 우리 가이드 엘리자베스는 여기저기 버섯이며 꽃나무 등 식생들을 가리켰다.


섹스텐 명상의 길 트레일 표시


둘째 날은 한 단계 난이도가 격상된 13 킬로미터 길이에 고도변화도 600 미터 이상되는 트레일을 걸었다. 일단 모스에서 버스를 타고 발피스칼리나 계곡 (val fiscalina 독일어로 Fischleintal)으로 가서, 코스토니 디 크로다로사 (Costani di Croda Rosa 붉은 봉우리 산, 독일어로 Rotwandkopfe) 하이킹을 시작했다. 한참 오르다 보면 1차 세계대전 전쟁터였던 이곳을 보존한 야외박물관 (Museo all'aperto 독일어로 Freilichtmuseum 영어로 Open-Air Museum)을 만난다. 여기저기 트레일을 따라 흩어져 있는 유적지와 사진들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열악한 환경과 추위 속에서 뜻 없는 전쟁의 희생이 되었다는 역사의 잔재를 느낄 수 있었다.



발피스칼리나 계곡 야외박물관에 있는 1 차 세계대전당시 눈 덮인 언덕에서 오스트리아 병정들이 대포를 끌고 가는 사진


오르막 트레일에서는 트레치메하이킹에서 유명한 로카텔리 산장이 (Rifugio Locatelli) 멀리 아스라이 보였다. 1차 대전 때 쓰던 참호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산 중턱에 있는 크로다로사 산장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내리막은 숲길로 따가운 햇살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셋째 날은 호텔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 도비아코에서 하이킹을 시작했다. 트레킹은 약 16 킬로미터에 고도 변화는 약 900 미터였다. 두어 시간 후에 소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실베스터암이라 불리는 초원지대였다. 다음에는 가파르고 좁은 길들로 산 등성이를 타고 걸었다. 이 산등성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이룬다. 이제는 두나라가 다 유럽연합 소속인지라 말뚝과 철사줄로 표시된 국경이 큰 의미가 없다 한다. 우리는 두 나라를 번갈아가며 걸었다. 하지만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때는 여기에 350 개가 넘는 진지들이 있었다 한다. 가이드 엘리자베스는 웃으며 아직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남아있는 진지들을 살 수 있다 설명했다. 실제로 몇 개는 개인들이 사서 여름 임시거처로 쓰고 있다 한다. 문제는 물과 전기인데 어떻게들 유지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솔리니 파시스트 시절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에 설치했던 진지


하이킹 시작한 지 3 시간쯤 되니 우리의 목표인 판혼 (Pfannhorn) 정상 2663 미터를 나타내는 십자가가 보였다. 구름이 낀 탓에 기대했던 트레치메는 보이지 않았다. 장대한 돌로미티 산맥을 보면서 막연히 구름너머의 트레치메를 상상해 보았다. 조금 휴식을 취한 뒤 하산하면서 보너헡 산장 (Rigugio Bonnerhutte)에서 맥주 한잔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였다. 상당히 체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산행이었지만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초목지의 가축들 그리고 또 다른 역사를 배웠다는 점에서 흡족한 하루였다. 호텔에 돌아와 사우나하고 수영하고 와인과 함께하는 저녁 또한 나른한 몸에 주는 기쁨이었다.



판혼 정상을 나타내는 십자가



판혼에서 바라보는 구름 덮인 돌로미티 산맥



4. 브라이에스 호수 (Lago di Braies, 독일어로 Pragser Wildsee, 8 월 7 일)


아침 식사 후 모스마을 버스정류장에서 9 시 셔틀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브라이에스 호수에 도착했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가운데서도 이 아름다운 모습을 여럿과 나눌 수 있게 한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재삼 갖게 해 주었다. 호수 주변 바위에도 비치에도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풍광을 즐기고 있었고 호수에는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둘레길 서편에서 바라보는 브라이에스호수


우리는 일단 호수 주변을 걷기로 하였다. 안내책자에 쓰여있는 대로 입구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걷기로 하였다. 해의 높이에 따라 산그림자가 드리우며 미묘하게 호수의 빛깔을 바꾸는 것이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볼 때마다 경치가 틀리니 자제하지 않으면 수없이 애꿎게 사진만 찍게 되는 것 같았다. 중간정도에 커다란 돌들이 흩어져 있는 계곡을 만났다. 비엘라산장 방향 표시가 있는데 2 시간이라는 표시만 보고 다시 호수 둘레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방향의 트레일은 높낮이 변화가 좀 있지만 쉽게 걸을 수 있었다. 오후는 호수를 쳐다보며 느긋하게 쉬면서 보냈다. 오후 3 시 셔틀버스로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계획된 트레치메 하이킹 준비하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5. 트레치메 하이킹 (8 월 8 일)


호텔에서 전날 준비해 준 조식팩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7 시 30 분 셔틀버스에 올랐다. 대여섯 군데 들려서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만석이였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맑음으로 되어 있었다. 해서 우리는 트레킹 방향을 시계방향으로 정했다. 그러면 오전에 트레치메 북쪽 편을 걸어서, 직접 내려 쬐는 햇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치메 하이킹에서 가장 많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바로 그늘이 없다는 것이기에, 그전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지적했었다. 트레치메 사인이 보이기 시작하니 길에는 그쪽 방향으로 자동차들 교통량이 늘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지나는데 여기부터 로컬셔틀을 타려는 사람들 줄이 백 미터도 넘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하이킹 시작점인 아우론조 산장 (Rifugio Auronzo) 바로 밑이 종점이었다. 다시 한번 직접 운전하지 않고 셔틀버스를 이용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일단 몸을 추스르고 하이킹을 시작했다. 처음 트레일은 일단 높낮이 변화가 별로 없는 초목지대로 여기저기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되면서 메조 고개 (Forcella Col di Mezzo)를 지나며 거의 직각으로 방향이 바뀌며 골짜기와 건너편 장대한 석회암 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오른편으로는 트레치메의 북서쪽 면이 보였다.



트레치메 북서면


그렇게 트레치메의 북서면을 따라 걷다가 보면, 커다란 바위들 사이로 나지막한 나무들이 흩어져있고, 오른쪽으로는 조그만 호수들이 보이며, 왼쪽으로는 랑암 (Langalm) 산장을 끼고 쭉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여기부터는 길도 흩어진 돌조각들로 덮여있고, 높낮이변화도 제법 있게 되었다. 우리 옆으로 뛰어가다시피 걷는 젊은이들을 보며, 다시 한번 늙어가는 몸을 느끼게 되었다. 한창 가면서 내리막길로 쭉 가다 보니 넓은 터가 나타나는데, 거의 빼곡히 잔돌들로 만든 글자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물론 한글도 있었다. 글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했겠지만, 이런 치기가 도를 지나치면 이곳 자체를 즐기러 온 근본을 잊게 될 것 같다는 꼰대 같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되었다. 트레치메 반대편에서부터 뻗어 난 트레일들을 만나서는, 다시 가파른 스위치백을 지나 로카텔리 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보는 트레치메는 바로 우리 머릿속에 있던 그 모습이었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보는 트레치메 북면



산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그룹으로 온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고 있었고, 혼자온 사람들 또한 기쁨과 피곤함이 섞여 잔뜩 상기된 모습들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도 왁자지껄하며 점심과 함께 서로의 감상들을 나열하였다. 식사 후 로카텔리 산장 뒤편에 있는 작은 교회를 지나 세스토암봉 (Sasso di Sesto)으로 향했다. 가파른 데다, 굴러다니는 돌들이 많아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금방 사람들이 파놓은 굴들이 서너 개 있는 곳에 도착했다. 굴 안에서 쳐다보는 트레치메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하였다.



사소디세스토 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트레치메


돌아오는 길은 트레치메 동쪽으로 나있는 여러 갈래길을 이용했다. 산장사이사이 짐을 옮기는 노새와 함께 길을 나누어가며 걷기도 했다.



노새와 하이커들이 나누어 걷는 트레일


트레치메와 거의 같은 평행선 동쪽 끝에 있는 라바레도 산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계속 남쪽으로 걷다 보면, 길이 서쪽으로 휘는데, 거기에서 남쪽으로 난 샛길에 들면, 돌들과 어우러져 있는 목초지가 나타나며, '쓰러진 천사'의 탑을 볼 수 있다. 이는 여기서 사라져 간 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라 한다. 절벽 끝에서는 멀리 산타 카타리나 호수 (Lago di Santa Catarina)가 거센 산세의 끝자락에 부드럽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트레치메에서 내려다보는 산타카타리나 호수



다시 메인트레일로 돌아와 서쪽으로 가다 보면 산타마리아 채플이 보이고 그러다 보면 출발점인 아우론조 산장에 다다르게 된다. 약 10 여 킬로미터 길이에 높낮이 변화도 400 여 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시로 쉬면서 경치를 즐기다 보니 거의 6 시간정도 걸린 것 같았다. 산장에서 음료수 마시고 쉬다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6. 섹스텐에서 휴식 (8 월 9 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식사하고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니 섹스텐 마을이 나타났다. 교회에도 들어가 보고 시청 (Rathaus) 에도 들어가 보며 자그마한 마을을 둘러보며 한 시간쯤 보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마을인 이니헨 (Innichen 이탈리아어로는 산 칸디도 San Candido) 에서 내렸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바란치 산 (Monte Baranci) 케이블카를 탔다. 많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펀밥 (Funbob)이라 불리는 밥슬레드 트랙 위로 개조된 밥슬레드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한 바퀴 돌 수 있는 짧은 트레일을 골라 여유자적하게 걸으며 군데 둔데 대형 목각으로 만들어 놓은 동화 속 장면들을 즐겼다. 하산 후에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돌아가며 한 시간씩 마사지받고 짐정리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정신없이 보내다 보며 건성으로 보았던 호텔 안내를 다시 보니 하이킹 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엘모 산 해맞이는 관심은 있었지만 하이킹 일정과 겹쳐 못했고 그 밖에도 크나이프 (kneip)이라고 맨발로 시냇물을 걷는 것도 흥미로워 보였다. 그리고 하이킹 가이드를 다시 보니 열 군데는 더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요가프로그램도 있었다. 언제 다시 기회가 될지는 몰라도 다시 와보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7. 오티세이 (8 월 10 일)


호텔에 부탁한 택시로 9 시쯤 떠나, 두 시간 정도 산길을 따라 달리니 오티세이 숙소인 가니알바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터널도 지나고, 하이웨이도 지나고, 아찔하게 가파른 절벽길도 지나며, 운전수 여자분이 군데군데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키우사 (Chiusa 독일어로 Klausen 클라우센)에서는, 절벽 위 커다란 건물을 가리키며, 수도사 한 명이 살고 있는 수도원이라 웃으며 말했다. 숙소는 오티세이 시내 큰길에서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야 했다. 숙소에서는 우리 숙박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교통카드앱을 우리 각각 전화기로 보내 주었다. 짐을 맡기고 바로 몇 분 걷지 않으니 라시에사 (Rasciesa) 푸니큘라 스테이션이 나타났다. 우리는 3 일짜리 가르데나 카드 (Gardena Card)를 샀다. 이 카드를 이용하면 , 이 지역 발가르데나 에 있는 18 개 케이블카, 푸니큘라,(funicular), 그리고 스키리프트를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 탈 수 있다. 3 개 이상만 타면 본전을 찾을 수 있다 한다.


푸니큘라는 10분 정도 걸려 우리를 바이타레시에사 (Baita Resciesa) 로 데려다주었다. 일단 스테이션 바로 옆에 있는 레시에사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산장부터 서쪽으로 뻗어있는 목초지 위로 군데군데 키 작은 나무들이 깔려있는 비교적 평탄한 트레일로 올라섰다. 산 남쪽 기슭에 있는 오티세이 마을 건너편 알페디시우지 (Alpe di Siusi 독일어로 자이저암 Seiseralm) 초원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사소룽고 (Sassolungo)가 문자 그대로 긴 바위라는 이름을 실감케 하였다.



알페디시우시위로 솟아나 뻗어있는 사소룽고



산 능선에 다다르니 이 지역 발가르데나에서 자주 보이는 예수가 처절하게 매어달려 있는 십자가가 보였다. 숨을 고르고 산중턱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하니 이번엔 침식된 산이 이룬 목초지 건너 창백한 빛의 바위산들이 아늑하게 펼쳐 보였다.



라시에사 능선 정상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라시에사 능선과 멀리 보이는 돌로미티산맥


다시 레시아사 산장에 도착해 쉬었다가, 푸니큘라 타고 내려온 후,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숙소 주인이 추천해 준 식당에서 해결하고, 오티세이 시내를 구경했다. 전형적인 알프스 산간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시내 중심에서부터 가파른 언덕을 따라 세체다로 향하는 지붕 덮인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있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8. 세체다 (Seceda, 8 월 11 일)


유명하기에 언제나 인파가 북 쩍 거 린다는 세체다로 가기 위해서, 일단 세체다 베이스 스테이션에서 푸르네스 (Furnes)까지 커다란 곤돌라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작은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정상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베이스스테이션까지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아 인파가 몰리기 전에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3 일 짜리 가르데나 카드까지 있으니 매표소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정상에서는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치이면서 다녀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깎아지른 우틀두틀한 능선을 따라 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으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우리도 발걸음을 띠기가 힘들었다.



세체다 능선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이곳 농부들에게 피해도 많이 준다 하여, 가장 유명한 사진 찍는 곳까지 가는 트레일에서는 통행료를 받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남들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끼여 사진도 찍은 후, 북동쪽 사면을 비스듬히 질러 하이킹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트레일들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1 시간쯤 걸으니 긴 바위라는 뜻의 피에라롱지아 (Pieralongia)가 길쭉히 솟아있고 거기를 오르려는 사람들도 줄을 서 있었다



피에라 롱지아


조금 오르막으로 가다가, 그다음은 쭉 내리막으로 걸었다. 이러다 보니 피렌체 산장 (Rifugio Firenze)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풀 뜯고 있는 망아지와 노새들을 만났다. 이 산장은 제법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있었다.



피렌체 산장 근처에서 풀 뜯어먹고 있는 당나귀


점심식사 후에 다시 트레일로 나가 30 분 정도 걷고 나서 콜라이저 (Col Raiser) 케이블카를 타고 산크리스트나 (San Christina)로 내려왔다. 마을구경하면서 큰길까지 내려와 350번 버스를 타고 다시 오티세이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곤돌라를 타고 알페디시우시로 향했다. 넓은 알페디시우시 초원 위로 움막들이 흩어져있고 그것을 압도하는 사소룽고는 평화스러움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알페디시우시와 그 위를 압도하고 있는 사소룽고


다시 조그만 스키리프트를 타고 알페디시우시 초원으로 내려갔다. 계산해 보니 하이킹을 하려면 적어도 2 시간은 걸릴걸 같았다. 해서 긴 하이킹은 포기하고 전망 좋은 곳까지만 짧게 걸었지만 평온한 느낌은 어디서나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9. 사소룽고 (8 월 12 일)


아침 먹고 오티세이 시내로 내려가 350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마침 빈자리가 생겨 여자들 보고 앉으라 했는데 아마 머리 허연 동양사람들이 네 명이나 타서 그런지 우리 남자들 둘 한테도 이탈리안들이 자리를 양보했다. 얼른 고맙다 말하고 자리에 앉으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사우스코리아라 했더니 엄지를 추켜올린다. 버스는 발가르데나의 주요 마을인 오티세이와 산크리스티나 그리고 셀바 를 관통한다. 한 시간쯤 뒤에 피즈세터 (Piz Seteur)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곤돌라를 타고 다음 스테이션에서 내렸다. 십여분 걸으니 그란파라디소 (Gran Paradiso) 스테이션이 나타났다. 여기서 스키리프트를 타는데 자전거를 먼저 리프트로 보내고 그다음 리프트로 사람들이 타는 것이 무척 신기해 보였다. 알고 보니 여기가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찾는 곳이라 한다.



그란파라디소 스키리프트에서 자전거 싣는 모습


다음에 내린 곳은 빈첸자 산장 (Rifugio Vincenza) 이였다. 여기서부터 사소룽고 동쪽면을 바라보며 30 여분을 걸어 포르첼라 사소룽고 (Forcella Sassolungo)에 도착했다. 반대편 쪽으로는 거대한 암반들이 형성한 셀라그룹 (Sella Group) 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셀라그룹 서쪽면


머리 위로는 생긴 것 때문에 관짝 (Coffin )이라 불리는 케이블카가 지나고 있었다. 타고 내리는 것도 신기했다. 두 사람이 떨어져 서 있다가 한 사람이 먼저 떠밀려 타고 두 번째 사람이 뛰어올라 문을 잠가야 했다. 어색한 동작 때문인지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외줄에 매어있다는 사실도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포르첼라 사소룽고 케이블카


도착한 곳은 해발 2685 미터에 있는 토니 데메츠 산장 (Rifugio Toni Demetz)이었다. 여기서 반대편 아래쪽을 보니 돌들도 많고 경사도 심하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갈 데는 아닌 것 같았다.



토니데메츠 산장 반대편


이 정도로 만족하고 다시 관속으로 들어가 파소셀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티세이로 돌아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숙소에 들어가 돌아갈 짐을 정리했다. 저녁은 오티세이 시내에서 피자와 맥주로 뒤풀이하며 이번 여행을 복기했다.


10. 여행 끝내기 (8 월 13일)


아침 먹고 같이 여행했던 친구 부부와 작별 인사를 한 뒤 택시를 불러 타고 뮌헨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기 위해 키우사로 갔다. 그다음 4 시간쯤 달려 뮌헨에 도착하여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쉴 호텔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도 탈없이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