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대교마을 주민의 동네 관찰기
거제도에는 육지(통영)로 이어진 다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구) 거제대교라고 불리고, 다른 하나는 신 거제대교라고 불린다.
거제대교 아래에는 처음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던 동네답게
예전에 꽤나 이름을 날렸던 것 같은 구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실제로도 조선 시대 때는 육지와 가장 가까웠던 거제면에 지방 행정을 총괄하던 기관인
거제현 관아가 위치해 있었고, 둔덕면은 육지로 이어진 대교가 처음 만들어졌기에
대교마을에는 사상 첫 버스 정류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아주 활발한 상업·물류적 교류 지역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홍등가도 존재해 번창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니까.
여하튼 해당 거제대교는 740미터밖에 안 되는 짧은 다리라 어릴 적에는 대교마을을 통영이라고 헷갈려했는데
이 마을이 거제도 부속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건 고등학생이나 되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교로 향하는 길에는 아빠의 옛 직장이 있어서, 그때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초창기를 재연시켜 주는 정겨운 동네로 나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 20년 전의 모습에서조차, “와, 이 동네는 정말 옛날 동네다. 문명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뭐 하고 살까?” 하고 생각하던 이 동네에 우리 가족은 2024년부터 전원생활을 목적으로 정착하게 되어
해당 동네를 우리의 나와바리라고 여기며 살기 시작한 지 일여 년 남짓.
(사실 우리 가족이 정착한 동네는 해당 대교마을과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더 더 더 더 시골 동네이긴 하다.)
오늘에서야 발견한 신기한 점은 ‘대교마을’이라고 검색하면 어디에도 이 동네가 검색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동네의 오피셜 주소는 거제시 둔덕면 덕호리였지만 아무도 덕호마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가게 상호들도 전부 ‘대교○○’, "-- 대교점" 임을 미루어 보아 이 마을의 지명은 대교마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거제 사람들 중에서도 토박이가 아니면 “대교마을”이라 하면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소외된, 그래도 정겨운 옛스러움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동네,
대교마을에 정을 붙이게 된 건 나에게 그리 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교마을은 주변 거주 지역들 중에선 가장 번화가였기 때문에,
가끔 장도 열리고 유일한 병원인 정형외과는 모든 과목을 진료하고,
식자재마트 같은 큰 슈퍼마켓도 두 개나 있고,
나름 프랜차이즈 치킨·피자 집도 있고, 그 외 몇몇 중식당, 한식당, 카페들 그리고 붕어빵 맛집까지 있는,
꼼딱 꼼딱 없는 게 없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런 동네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또 나에게 흥미로운 관찰 대상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대교마을 주민들이 존재했다.
첫 번째 주요 관찰 지구로는 내가 아주 아주 사랑하게 된 카페 ‘읻다’.
일단 이곳은 가게 이름부터가 언어유희 놀이하기 최적화된 곳이다.
누군가가 갑자기 전화해서
“양현, 어디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카페 읻다!”라고 대답하고
상대방은 “그러니까 카페 어디?”라고 되물으면
나는 “읻다 카페!!”
하는 ‘1루수가 누구야’ 같은 상황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는 일단 뒤로 미루고.
내가 카페 ‘읻다’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커피 맛이 훌륭하다.
이런 시골에서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내는 집이 있다니 색다른데? 싶은 커피 맛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인테리어,
그리고 그 감성이 허무하게 의자 각 다리에 긁힘 방지용 테니스공이 끼워져 있어
그것이 마치 그곳의 감성을 죽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고객님들은 그 정도 촌스러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코웃음 치는 정도로 더 독보적이다.
10~15회 정도 방문했던 데이터를 토대로 그 카페 주 이용 고객층의 묘사부터 시작해야겠다.
인테리어만 보자면, 20~40대가 주로 이용할 것 같은 밝고 귀여운 분위기의 카페인데 이 귀여운 시골마을 아기자기 보태니컬 풍의 카페 주 이용 연령층은 40~70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온 주부들의 이용 시간은 오전 10~1시,
오후 1~4시는 오전에 전업으로 밭일 또는 어업을 하시는 자급자족 또는 1차 생산업 분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러 오시는 것 같아 보였다.
보통 경상도 카페에선 이 정도 연령대가 주로 계신 곳에선 내부 소음이 조금 심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스테레오타입의 절정일 것으로 예상된 이 카페는 의외로 항상 점잖고 조용해 소복소복하고, 그게 이상하게 내부 분위기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게 연출되곤 했다.
대부분이 소곤소곤 대화하셨고, 그렇지 않으면 일절 대화 않고
급한 일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커피만 후루룩 들이키곤 “고마 일어납시다~”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셨다.
그래서 테이블 회전율이 상당했는데,
나는 보통 하릴없이 여유롭게 책 읽으러 가서 3시간씩 앉아 있으니
눈앞에서 30분 간격으로 멤버들이 교체되는 까닭에
다양한 동네 분들의 일상의 한 장면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방대한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아주 흥미로운 장소였다.
친한 동생 여린이를 데리고 방문했던 날이 기억이 난다.
친한 친구들을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데려가면서 그곳의 흥미로운 특징들을 마구 주입시켜
그들의 시각까지 나와 동기화되게 만든 다음 같은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걸 좋아하니,
그날도 어김없이 이 카페 ‘읻다’와 대교마을이라는 마을에 기대감을 잔뜩 심어 놓았다.
카페에 들어서서 펼쳐진 내부 풍경은, 카페 중앙에 위치한 아주 코지해 보이는 소파 양쪽에 6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 남성분들이 오늘 카페 입장 드레스 코드가 있었나? 싶게 여섯 분 모두가 체크 셔츠를 입곤
양쪽에 세 분씩 다닥다닥 앉아 계셨고, 각자 앞에는 여름 시즌 메뉴인 팥 스무디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모두 팥 스무니 마시기에 전념하여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대화 일절 않고 각자의 휴대폰을 주시하고 계신
이장 모임 st 일행이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두 테이블 정도 주부 네 분, 남녀 섞인 50대 팀 정도 있었다.
나무 폴딩 통유리에 회전축이 중앙에 위치한 출입문과 가게 앞뒤로 난 유리 통창에선
따사로운 햇볕이 들어오던 날이었다.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주문을 마치고 내부 분위기를 파악하며 사진을 찍고 있던 여린이에게
‘어때? 진짜 독보적이지?’ 하는 눈빛을 주고받던 와중,
일체형 출입문이 열리는 풍경종이 딸랑딸랑 울렸다.
오며 가는 사람들과 카페 전체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은 우리는
자연스레 새로 들어오신 손님들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새로 들어오신 손님은 두 분.
초록색 빅 폴로 PK 셔츠의 흰색 카라깃에 풀을 먹인 듯 빳빳이 올리시고,
무스로 앞머리를 넘긴 데다가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멋쟁이 어르신이 아들분과 가게를 방문하셨다.
그분들이 주문 계산을 채 마치기 전에 소파에 앉아 계시던 이장모임 일행 중 한 분이
“어이!! ○씨!!!” 하며 멋쟁이 아저씨를 반갑게 부르셨고, 멋쟁이 아저씨는 “어!!!! 형님들!!!” 하며 일행에게 반가움이 한껏 담긴 발걸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한 분 한 분께 쾌활하게 악수를 청하시곤,
그 좁디좁아 보이는 소파에 굳이 엉덩이 반쪽을 들이밀며 등을 형님 어깨에 완전히 기대 아슬아슬하게 걸쳐 눕듯이 앉으셨다.
한편,
계산을 안 하고 쏜살같이 달려가신 아버지 탓에 계산대 앞에서 머쓱해진 아들분과 카페 사장님 내외 분의 멋쩍은 웃음이 찰나 펼쳐졌고, 계산을 홀로 끝마친 아들분은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혼자 창가에 있는 다른 테이블에 앉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 따로 오신 분들인가?’라는 생각이 들 즈음, 아들분이 곧 받아 든 두 잔의 커피가 ‘아, 일행이 맞구나’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고, 아들은 아버지가 계신 테이블로 커피를 가져다 드리는 대신 본인이 착석한 테이블 앞 주인 없는 자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올려놓고 홀로 바닷가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셨다.
반대쪽에선 그렇게나 반갑고 호쾌하게 인사하며 아들을 버리고 다른 일행에 조인한 멋쟁이 아저씨께선 활발하게 서로의 안부를 걸걸하게 묻고 일상 공유를 카페 사람들이 다 들리게 5분 남짓 한 이후엔 더 이상의 대화거리를 찾기 힘들었는지, 조용히 빨간 가죽 지갑형 케이스 휴대폰을 열어 원 멤버들처럼 휴대폰을 불편한 자세로 하기 시작하셨다.
카페에서는 여전히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유리창을 통해 따사로운 햇살과 그 햇살에 반사된 윤슬이 반짝거리는 잔잔한 파도가 보이던 여름날.
아들분이 가져다 놓은 주인 없는 자리에서 모락모락 김 나던 커피가 점차 식어 갈 즈음, 한참 동안 일절 대화 없이 반쪽 궁둥이로만 힘겹게 앉아 있었던 게 힘드셨던 멋쟁이 아저씨는 멋쩍게 체크 남방 일행분들께
“내가 아들이랑 와서 ㅎㅎ”
하시며 좋은 시간을 보내시라고 인사하신 뒤 세 발자국 뒤에 있는, 아들이 있는 테이블로 가셨다.
다들 “응, 그래그래~” 하고 아쉽지 않게 보내 준 체크 남방셔츠 아저씨들과 부자 내외의 테이블에서는 그 이후로도 각자 휴대폰을 하느라 조용한 정적만이 흘렀다.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구경하던 여린이와 나는 다시 눈을 마주치며, 조용한 카페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튀는 손님이 되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으면서 “하여튼 간에 재밌는 동네이지 않니?” 하며 웃던, 그런 동네다, 그 동네는.
PS.
이 모든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느라 주문한 커피에는 거의 입도 대지 않아 새것이었던 나의 음료와 상반되게, 더운 여름날인데도 불구하고 내 속도에 맞추겠다는 일념으로 뜨거운 말차 라테를 주문한 여린이는 본인의 바닥난, 채 다 녹지 않은 말차 가루 잔여물만이 남겨진 잔을 수줍어하며 두 번째 음료를 주문하러 카운터로 천연덕스럽게 뛰어가던. 이질적인 동네의 요상한 카페에 수상하게도 잘 어우러지는 여린이와 함께였어서 기억에 남는, 즐거운 대교마을 탐구 영역의 날이었다.
다음 편은
대교마을의 요가숲 사람들에 대한
관찰 일지를 작성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