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를 드디어 돌렸어요

2023.08.04 네이버블로그글 펌

by 김냥뇽


내일 아침에 돌려야지.


오늘 퇴근하고 돌려야지


내일 아침에


오늘 퇴근 후


내일


오늘




4일간을 조만간의 나에게 미루었던 청소기를 드디어 돌렸어요.






오늘 방바닥에서 마음껏 구불러 다니기 위해 (사실 이미 한참 구불러 다니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보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생각이 들어) 드디어 청소기를 돌렸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조만간의 나에게 일을 미룬 건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미루어 둔 태스크를 끝내고 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실까요?






저는 미루어 둔 태스크를 진행시킬 때, 한 가지씩 하지 못 합니다.


미루어둔 모든 걸 한꺼번에 진행하죠.


그렇지만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고 오히려, 바보 멍청이 같아요.


방금도, 청소기 돌리기 직전에, 운동을 가기 위해 양치질을 하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어금니에 물려 논 상태로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입안에선 대홍수가 나고, 침이 줄 줄 흘러내릴 뻔했지만 간신히 입을 옹 다물고 청소를 했어요.




청소를 끝낸 뒤 칫솔을 무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죠. 아니면 반대 거나.




그렇지만, 지난 4일간 청소기 돌릴 거야,라는 변명으로 바닥에 구불쳐 놓은 것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예를 들면, 젤네일 떼놓은 잔해들, 쇼핑 후 정리하다 튕겨져 굴러다니던 고정용 핀 등등.








흐린 눈으로 오랜 기간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두운 환경을 조성해 놓는다는 점이죠.


시력이 괜찮은데, 흐린 눈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환경적으로 흐리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을 조성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시로 부산에 살고 있는 대학교6학년 동생이 떠오르네요.


그 친구의 어둠 사랑은 상상 초월입니다. 아마 무서움을 많이 타는 친구라 생각해본 적은 없긴 할 텐데


나는 자연인이다로 산에 들어가서 살아도 반딧불이 하나 찾지 않고 잘 살 친구입니다.




허나, 밝은 환경을 조성해 놓았는데 흐린 눈을 하는 경우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뉩니다.


변태이거나


아니면 정신력이 강력한 경우죠.


아니면 시력이 안 좋거나.


밝은 환경에서, 눈에 훤히 다 보이게 해 논 잔해들을 지나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 잔해를 정말 보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흐리게 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은


정말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실행력 또한 강하죠. 하지만 실행력이 그렇게나 좋은 사람들은


아마 그다지도 오랜 기간 일을 미루지도 않을 겁니다.


고로, 변태이거나 시력이 안 좋거나 이겠네요.




변태는 가까이하면 안 됩니다.







지금 운동을 가려고 레깅스를 신었습니다.


저번주에 비세례를 거나하게 맞고 세탁한 뒤 처음 입는 거죠.


네. 이번 주에 이틀에 한번 가려고 한 헬스장을 목요일저녁에나 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번주에 색 구분은 물론이거니와 소재도 상관없이 마구 세탁기를 돌렸기에


검은색 레깅스에 흰색으로 추정되는 먼지들이 덕지덕지 마구마구 더불어 있어요.


하지만 전 이 또한 흐리게 볼 것입니다.


왜냐, 이 레깅스는 오늘내일 입으면 또 빨래통에 들어가 빨릴 것 이기 때문이죠.




제가 레깅스를 두 번 입고 빤다는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두부류로 나뉩니다.




으악 더러워 한번만 입어도 땀 베이잖아 vs. 그렇게 자주 빨아?




전자의 경우 룰루레몬 레깅스이기 때문에, 소재보호를 위하여 자주 빨지 않는다는 말로 대치하면 됩니다.


후자의 경우엔, 제가 전자의 말을 내뱉곤 합니다. 모순적이죠.


저는 항상 그 사이 어딘가를 추구합니다. 이중적 일 수 있게 말이에요.




또 다른 예론,


극 P성향사람들은 저를 J라고 보고, J 친구들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죠.


전자의 경우엔 으쓱하는 면이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엔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저 딴엔 J 성향 사람들이 P 성향보다 더 우월하다 생각을 하는 나를 마주하곤 합니다.


사실 크게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이렇게 중간에서 그 어느 그룹에도 확실하게 끼이지 못하는 삶을 연명하며 살아온 지도 어연 25년 차.


이젠 익숙합니다.


하지만 가끔 외롭기도 해요.






이 지독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보스턴에


헐렁 벌렁하지만 또 나름 할 걸 하긴 하는 김양현은.


허르렁 부르러렁 헬렐레 칠렐레 팔렐레 그룹에서도,


독하고 착실한, 야물딱그룹에도 환영받지 못해요.


이런 나 는 개똥벌레입니다.







운동 가기 전에 청소기 돌릴 때 이만큼의 생각을 혼자서 했어요.


혼자 낄낄대기도 했지요.


재밌진 않지만.


요즘 노잼 시기라 어쩔 수가 없네요.




여하튼.


이젠 진짜 운동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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