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by 브론치

시계가 자정을 알리기 30분 전. 대기실에 누워 막 선잠이 들려던 찰나, 정적을 깨고 출동 벨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이 놀란 탓인지 심박수는 순식간에 120회/분까지 수직 상승했다.

“구급 출동, 구급 출동!”

구급차 시트에 몸을 던지듯 앉아, 아직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급하게 핸드폰을 켰다. 지령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70대 노인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걷고 있다는 신고.’ 내용만 봐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단순 외상 건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흐릿한 눈망울을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종종걸음으로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가가 말을 건넸다.

“어르신, 잠시만 멈춰보세요. 얼굴에 피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어르신은 무언가 대답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 그… 베, 베, 베, 베… 고, 고, 고, 고… 파, 파, 파, 파…”

얼굴 근육까지 경련하듯 떨며 힘겹게 내뱉는 말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찰떡같이 알아채기 위해, 파편처럼 흩어진 음절들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가 하고 싶었을 문장을 대신 완성해 보았다.

“배가 고파서 나오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제 말이 맞나요?”

그는 내 말이 맞다는 듯, 떨리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며 부자연스럽게 긍정의 표시를 했다. 대화의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이어가야 할지 감을 잡았다.

“선생님, 이마가 2cm 정도 찢어지셨어요. 혹시 댁으로 가시다가 넘어지신 건가요? 짧게 대답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상태를 보며 머릿속에 스친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딱 한 가지 질문만 던지는 방식이었다.

“혹시, 파킨슨 약 복용 중이신가요?”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더 글로리 드라마 속 연진이가 된 것 같았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버님, 이마 찢어진 곳을 좀 꿰매야 할 것 같은데, 병원 같이 가주실 보호자분 계실까요? 휴대폰 주시면 제가 대신 전화해 볼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르신은 갑자기 손사래를 치셨다. 보호자는 올 사람이 없다는 뜻을 온몸으로 강하게 피력하시는 듯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그러시나 싶어 재차 설득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완강했다. 하지만 보호자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요청했다.

어르신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려 애쓰셨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휴대폰을 꺼내 아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공허하게 이어졌고,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시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연락 두절된 보호자와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힘든 환자라니….’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이번 출동이 해결책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응급실에 진료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치료 후에 곧장 귀가하셔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여긴 응급의료기관인데 치료가 끝난 분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단순 열상이면 응급도 아닌데, 내일 보호자 동반해서 오셔도 되지 않나요?”

병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에 더 따져 묻지 못했다. 나는 다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휴대폰 저장 목록을 훑었다. 저장된 번호는 단 세 개뿐이었다. 그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기 전, 어르신께 누구인지 여쭈었다.

“어르신, 여기 ‘김명신’이라고 저장된 분은 누구세요?”

어르신이 다시 힘겹게 입을 떼셨다.

“ㅅ… ㅅ… 센…… 터, 터, 터, 터… 보… 오, 오, 오, 오… 호, 호, 호… 사, 사, 사, 사…”

얼굴 근육이 경련하듯 떨리며 간신히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나는 수능 영어 듣기 평가 때보다 더 무겁게 집중하며 그 말을 해석해 되물었다.

“센터 요양보호사님 말씀이신가요? 맞나요?”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요양보호사라면 병원 동행을 부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아, 선생님. 밤늦게 정말 죄송합니다만, 혹시 김태촌 어르신이…….”

나는 자초지종을 구구절절 설명한 뒤, 숨을 죽이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그 어르신 저희 센터 나오시는 분은 맞는데, 전 차 타실 때만 도와드리는 사람이라 지금 당장 동행해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 어르신이 일주일 정도 센터에 안 나오셨거든요. 치매 증상이 있으셔서 아드님께 매번 연락을 드려봤는데, 아예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무심하게 돌아온 대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벌써 현장에서만 한 시간째, 구급차는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공허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무전기 너머로는 여기저기서 응급 환자가 쏟아진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빨리 결론을 내려야 했지만, 상황은 꽉 막힌 골목길처럼 답보 상태였다.

이대로 어르신을 두고 간다면, 분명 또 좀비처럼 거리로 나와 정처 없이 배회하다 어디선가 고꾸라질 것이 뻔했다. 치매라는 질병은 '나오지 마시라'는 간곡한 주의조차 의식 속에 숨은 본능 뒤로 지워버리니까. 고구마 열 개를 한꺼번에 삼킨 듯 가슴이 꽉 막혀왔다. 마지막 희망으로 관할 구청의 문을 두드렸다. 신호음 끝에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OO구청 주무관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무관님, 혹시 구청 차원에서 운영하는 병원 동행 서비스 같은 게 있을까요? 주간에는 있는 걸로 아는데 야간에는 어떤지 해서요.”

책자를 뒤적이는 짧은 기다림조차 초조함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구청마저 답이 없다면 나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보니 현재 구청에서 야간에 운영하는 건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밖에 없네요.”

어처구니없는 답변에 헛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친절하게 대답하려는 주무관을 더 괴롭힐 수도 없기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대안을 쥐어짜 보았지만, 결국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아버님,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모셔다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아, 저 아까 그 센터 보호사인데요. 센터장님께 여쭤보니 내일 오전에 직접 방문해서 어르신 모시고 병원에 가시겠대요. 오늘 밤만 집에서 주무시라고 잘 타이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내일 누군가의 관심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어르신께 다시 한번 단단히 일렀다.

“어르신, 내일 센터에서 사람이 올 거래요. 그러니까 오늘은 절대 나오지 말고 푹 주무셔야 해요. 아시겠죠?”

어르신은 힘겹게 내 말에 동의한다는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다.

어르신을 무사히 댁에 모셔다 드리고 소방서로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고령화라는 파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깊게 우리 삶을 덮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오늘 같은 밤이 앞으로 나의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뒷목이 살짝 뻐근해졌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점점 헐거워지는 요즘이다. 이러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각자의 섬에서 예비 좀비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목적지도, 의지도 잃은 채 밤거리를 배회하던 저 어르신의 모습이 자꾸 잔상처럼 남았다. 어쩌면 먼 미래에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내 모습’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쓴웃음이 났다. 사회적 온기가 식어버린 도시가 정처 없이 떠도는 노인들, 그러니까 '몸만 움직이는 좀비들'로 가득 차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살짝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