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쪽에 경찰차들이 반듯하게 줄을 서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붉고 푸른 경광등을 켜고 마치 칼날처럼 길게 세워져 있다. 구급차는 그 행렬의 끝에 칼자루처럼 차를 붙인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부터 저 멀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여러 명이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소리였다.
현장은 엉망이었다. 대여섯 명의 남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경찰들은 이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지 못하게 뜯어말리느라 안간힘을 썼다. 각을 멋지게 잡고 서 있는 경찰차와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민중의 지팡이는 그 무리 속에서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팔랑이며 끌려다녔다. 이들이 힘이 없는 게 아니다. 나라가 이들의 양 어깨에 법과 책임이라는 무거운 추를 달아놓아 움직임을 제한해 두었을 뿐이다.
술집에서 싸움이 붙은 모양인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인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들의 싸움에는 대단한 이유도, 결론도 없었다. 그저 술기운에 입 밖으로 내뱉는 오물 같은 고함뿐이었다. 이제 겨우 스무 해를 살아낸 가벼운 몸뚱이들은 서로의 멱살을 흔들며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센 포식자인 양 허세를 부렸다.
"죽여버린다고! 내가 누군지 알아?"
찢어지는 고함 사이로 침방울이 튀었다. 경찰관의 제복을 붙잡고 늘어지는 그들의 손은 희고 매끄러웠다. 고생이라곤 모르는, 제 감정 하나 못 이겨 바들바들 떨리는 나약한 손이었다. 그 손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존심을 확인받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구급차 문이 열리고 대원들이 거즈를 꺼낼 때까지도, 그들은 코피 한 방울에 온 세상을 잃은 듯 비명을 질러댔다. 어깨가 살짝 부딪혔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다 살 것처럼 구는 그들의 눈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경찰관 팔에 매달려 팔랑거리는 20대들의 가벼운 손질을 보니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저들의 주먹은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일 뿐이었다.
밤새 이어진 소란이 가라앉을 무렵,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다시 출동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니라 기름때와 쇳가루가 자욱한 작은 공업소였다.
현장에는 어젯밤의 소란과는 다른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고함 소리 대신, 무거운 신음을 삼킨 한 남자가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50대 가장, 그의 작업복 소매 끝에서는 붉은 피가 계속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라인더 작업 중에 검지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 나간 처참한 사고였다.
응급처치를 위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잘린 상처보다 더 눈에 띈 건 그 손에 새겨진 훈장들이었다. 투박하고 갈라진 손등, 그리고 이미 예전에 잃은 듯한 또 다른 손가락의 뭉툭한 흔적들. 그것은 문신보다 더 깊게 새겨진, 한 가족의 생계를 지탱해 온 사투의 기록이었다.
"선생님, 많이 아프시죠?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나의 말에도 그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대신 잘린 손가락을 멍하니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또 하나 날아갔네…. 내일까지 납기 맞춰야 해서 작업 더 해야 하는데. 어차피 손가락에는 미련 없어요. 꼭 병원에 가야 하나요? 작업 끝내고 가도 될 것 같은데.”
“선생님, 지금 당장 가서 수술받으셔야 해요. 손이 재산인데 포기하지 마세요.”
그는 떨리는 반대쪽 손으로 주머니 속 낡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액정에는 가족사진이 선명했다.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는 차마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집사람이 알면 놀랄 텐데…. 다 늙어서 또 다쳤다고 주책 떤다고 할 텐데…."
자신의 잘린 손가락보다 가족의 마음이 아플까 봐 더 걱정하는 남자. 그는 진짜 사나이였다. 어젯밤 경찰차 앞에서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리며 가벼운 자존심을 내세우던 청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무거운 사랑의 무게였다.
구급차 뒷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울리는 중에도, 그는 훈장 가득한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에는 고통이 아니라,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삶의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