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거창한 질문은, 사실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란 그리 자주 마주하는 고민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금요일 밤 10시, 우리의 세상은 전혀 다른 종류의 전쟁터로 변모한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뭔데 와서 지랄이야? 나 잘못한 거 없어! 왜 짭새가 오고 난리야!"
맥락도, 논리도 거세된 고함이 밤공기를 찢는다. 경찰관은 그저 '가게 앞에 취객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뿐이다.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우리 구급대도 함께 배정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과 소방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 뒷감당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소리 없는 눈치싸움이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비틀거리는 주취자에게 다가갔다. 욕설을 배경음악 삼아 그의 몸 어디에 상처는 없는지, 활력징후는 정상인지 재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불타는 금요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비루한 현실과 숭고한 업무가 뒤섞인 생존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고, 선생님. 오늘 지인분들이랑 기분 좋게 한잔하셨나 봐요. 누구랑 드셨어요?”
말을 붙임과 동시에 주취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손길로 팔에 혈압계를 감았다. 남자는 자신이 검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그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들릴 듯 말 듯한 넋두리를 안주처럼 씹어댔다.
“아니, 내가 사는 게 퍽퍽해서 술 한잔했어. 자식새끼들은 연락도 없고, 마누라는 날 벌레 보듯 하고... 집구석 들어가기 싫어서 한잔했다, 왜!”
“아이고, 그러셨구나. 어디 몸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하, 마음이 아파. 여기가... 마음이...”
그는 벽에 기댄 채 투박한 주먹으로 가슴팍을 텅텅 두드렸다. 나는 이 취객을 사춘기 소년, 아니 다섯 살짜리 꼬마를 달래듯 등을 토닥였다.
“많이 속상하셨겠네. 그래도 이제 집에 가셔야죠. 날도 추운데 밖에서 잠들면 정말 큰일 나요.”
“그래... 내가 술 먹으려던 건 아닌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서... 미안해, 미안하다.”
순간, 옆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경찰관이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아니, 선생님! 술을 적당히 드셨어야죠. 이렇게 취하시면 어떡합니까? 선생님 한 분 때문에 지금 몇 사람이 고생하는지 아세요?”
“뭐야? 이 새끼가... 술 좀 먹을 수도 있지, 어디서 훈계질이야! 너 몇 살이야? 어린 게 싸가지 없이!”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거의 다 풀어가던 실타래의 난이도가 순식간에 최상급으로 치솟았다. 경찰의 말이 구구절절 옳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현장 활동 시간만 무의미하게 늘릴 뿐이다. 나는 마음속에 다시 '우쭈쭈' 모드를 장착하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에헤이, 선생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요새 경찰한테 화내면 큰일 납니다. 제가 얘기 다 들어드릴 테니까 일단 여기 좀 앉아보세요.”
“내가 이래서 짭새들을 싫어해! 예의가 없어, 예의가!”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경찰관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짭새요? 선생님, 말 잘못하면 모욕죄로 잡혀가요. 짭새가 뭡니까, 짭새가.”
“짭새가 짭새지, 그럼 뭐라고 불러, 이 새끼야! 너 오늘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이름 뭐야? 너 내가 가만 안 둬!”
“OO지구대 OOO 경위입니다. 불만 있으시면 언제든 경찰서 오셔서 정식으로 민원 넣으세요.”
깊은 한숨이 폐부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겁게 밀려 올라왔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잠시 인내심의 배터리를 충전했다. 솔직히 경찰에게 떠넘기고 철수하면 그만인 상황이다. 동료 공무원으로서 좋게 해결해 보려 했건만, 둘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하니 의욕이 수직 하락했다. 그래도 한 번 더 참을 인을 새기며 대화를 시도했다.
“선생님, 댁이 어디세요? 가까우면 저희가 모셔다 드릴게 요. 여기 계속 누워 계시면 신고 또 들어와요. 제가 잘 챙겨드릴 테니 이제 그만 기분 푸시고요.”
“아니, 나 집 가기 싫다고! 웬수 같은 자식 놈에, 마누라 얼굴 보기 싫다니까!”
이미 경찰의 말에 제대로 발동이 걸린 이 58년 개띠 형님은 내 친절조차 고까웠는지, 삿대질을 해대며 소리를 빽 질렀다. 진짜 사느냐 죽느냐 본인 마음대로 하라고 이 엄동설한에 버려두고 싶었지만, 작년에 주취자를 방치했다가 동사하는 바람에 파면당했다는 기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화를 꾹 누르고, 마음속에 '우쭈쭈' 모드를 2단 가속으로 장착해 다시 말을 건넸다.
“아, 맞다. 사모님 계시지... 제가 그걸 몰랐네요. 그럼 근처 찜질방이라도 모셔다 드릴까요? 오늘 하루만 거기서 푹 주무시고 내일 들어가세요. 어떠세요?”
내 제안에 형님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겨우 몸을 가누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 에휴, 그래도 집엔 가야지. 외박하면 그게 더 골치 아파. 혼나...”
천하를 호령할 듯 경찰관에게 삿대질하던 58년 개띠 형님도 결국 마누라가 제일 무서웠던 모양이다. 취기를 빌려 애먼 경찰과 소방에게 생떼를 써보았지만, 귀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커질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순간, 기세등등하던 형님의 뒷모습이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가 팔짱을 끼고 슬쩍 당기자, 그는 못 이기는 척 끌려오며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구급차는 이제 주취자에서 갑자기 '서글픈 58년 개띠 형님'으로 신분이 격하된 그를 구모차(구급 유모차)에 정중히 모시고 집으로 향한다.
금요일 밤은 절정을 지나 자정을 넘기고, 어느덧 새벽의 문턱을 향해 달려간다. 이 시간의 구급차는 낭만과 넋두리, 그 극단적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실어 나른다.
신고 내용은 매번 다채롭지만 결은 비슷하다. “만취한 여자친구 좀 집에 데려다 달라”, “면접 떨어진 친구가 과음하고 길바닥에 누웠는데 감당이 안 된다”, 혹은 ‘별밤’, ‘밤사’, ‘국빈관’, ‘한국관‘, ’ 호박나이트’ 같은 곳에서 터진 치정 싸움까지…. 매주, 매달,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하도 굴러먹다 보니 이들을 대하는 사파의 매뉴얼이 몸에 아로새겨졌다. 상황별 맞춤 대화법부터 달래는 기술, 안전한 귀가 유도법,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토사물을 피하는 법, 구급차에서 소변 받는 법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일까. 어쩌면 대 AI 시대에도 인공지능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굳건한 고용안전성을 갖게 해주는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웃프지만,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혼돈과 알코올로 절여진 새벽, 정적을 깨는 출동 벨 소리가 소방서의 공기를 날카롭게 가른다. 이번엔 취객의 넋두리가 아니다. 진짜 생명이 걸린 심정지 출동이다.
신고 내용은 당혹스러웠다. ‘모텔에서 관계 중이던 5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의식이 없다.’ 기가 찼지만 감정을 섞을 여유는 없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위해 머릿속 매뉴얼을 가동하며 긴장 속에 현장으로 향했다.
모텔 방 안, 머리가 젖은 50대 여성이 사색이 된 채 쓰러진 남자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환자의 안색을 살피는 순간 직감이 왔다. 심장이 멈춘 자 특유의 서늘한 정적. 활력징후를 확인하자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가슴 압박 시작합니다!”
내가 흉부 압박을 시행하는 동안 동료는 능숙하게 심전도 패치를 붙였다. 잠시 후, 제세동기에서 날카로운 분석음이 흘러나왔다. 리듬은 심실세동. 전기충격이 반드시 필요한 위급한 파형이었다.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충전 중…… 위이이이 잉. 제세동을 시행하세요.”
나는 주변을 훑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모두 물러나세요! 환자에게서 손 떼세요! 제세동 합니다!”
‘퍽!’ 짧은 파열음과 함께 남자의 몸이 반사적으로 크게 튀어 올랐다. 다시 2분간의 가슴 압박이 시작됐다. 나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옆에 선 여성에게 물었다.
“정확히 어떻게 쓰러졌는지 보셨습니까?”
“네… 갑자기 제 위에서 관계를 하다가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대로 제 앞으로 고꾸라졌어요.”
“혹시 배우자분 되시나요?”
“아… 아니요. 배우자는 아니고, 그냥… 친구 사이예요.”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친구 사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뉘앙스에 당황했지만, 50대에게도 여자친구는 있을 수 있으니 애써 생각을 밀어내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이분의 친가족분 연락처를 알고 계신 게 있나요?”
“그게… 알긴 아는데… 그게 좀….”
그녀의 말꼬리가 흐려지는 찰나, 다시 2분이 경과했음을 알리는 제세동기의 경고음이 울렸다.
분석 진행 중. 모든 동작을 멈추고 환자에게서 손을 떼세요.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충전 중…… 위이이이 잉.”
또다시 심실세동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두 번째 전기 충격을 가했다. 환자의 상태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위중했다. 나는 복잡하게 꼬인 인적 사항을 정리할 겨를이 없어, 함께 출동한 경찰관에게 환자의 친가족을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내 경찰관이 묻는다.
“신고자분, 혹시 이분 가족 연락처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요. 저희가 직접 연락하겠습니다.”
경찰관의 요청에 여성은 주춤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그게… 번호는 아는데… 혹시 전화하실 때 그냥 혼자 계시다가 쓰러졌다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 상황이 좀 그래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찰나의 정적 후에 경찰관이 상황을 파악한 듯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일단 번호부터 주시죠.”
경찰관이 수첩에 번호를 적는 사이, 제세동기가 다시 분석 시간을 알렸다. 나 역시 늦게나마 현장의 맥락을 눈치 챘다 무미건조한 기계음은 마치 나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환청 같았다.
‘분석 진행 중.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제세동을 할까요, 말까요?’
전기 충격을 가하면 이 남자는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그는 이후에 닥쳐올 가혹한 해명의 시간, 아니 사모님의 극대노 멱살잡이 없이 평온하게 잠들 수 있다. 의식 없는 환자에게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살려 드려요, 말아요? 지금 깨어나시면 사느냐 죽느냐보다 더 무서운 사모님과의 면담을 하셔야 텐데요.’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퍽!’
다시 한번 전기 충격이 가해졌고, 남자의 몸은 허공으로 크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리듬 분석. 기적처럼 맥박이 돌아왔다. 우리는 서둘러 그를 구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이송하는 동안 남자의 의식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진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막힌 상황을 안내하는 일이다. 하지만 도무지 번호를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나는 심장을 살려낸 영웅이었으나,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한 남자의 가정을 박살 내는 저승사자가 될 판이었다. 이 남자가 눈을 떴을 때 마주할 아내의 불호령에 나조차 손이 떨렸다.
아무래도 환자의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면, 조용히 귓속말이라도 하고 전화를 걸어야겠다.
“선생님, 정말… 전화할까요? 아니면 그냥 여기서 다시 눈 감으실래요?”